내 인생의 밑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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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야,
꼭 필요할 때 쓰거라!
시아버지의 비상금
“며느리야! 고생이 많은 줄 안다. 그 놈이 심성은 착한데 돈 아껴 쓰는 습관이 없을 것이다.
참고 견디며 남편 버릇 고치는 지혜를 발휘하거라. 그리고 보낸 돈은 그 녀석 모르게 비상금으로 급할 때 써라”

글. 박재옥(서울시 도봉구) 독자

어느새 결혼 53주년이다. 인생무상을 절실히 느낀다. 결혼 초, 시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고, 남편은 고등학교 교사였다. 시아버님지가 살아 계신다면 올해 110세이시고 지금 남편은 78세이다. 나 역시 당연히 할머니가 되었다. 긴 시간을 회상하면 즐거웠던 일, 괴로웠던 일, 잊을 수 없는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음이 감사할 뿐이다.
남편은 딸 둘 밑에 아들로 태어났으니 시부모님께서는 금지옥엽으로 귀하게 기르셨고, 그런 배려 덕분에 남편은 의타심이 많았다. 그것이 지나쳐 결혼 후에도 살림은 뒷전이고 친구들과 술 마시기를 즐겨 하니 가장으로서는 낙제점이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남편의 무절제한 행동이 충청도에 계신 부모님의 귀에 들어간 것인 모양이었다. 한 달에 두어 번씩 집으로 등기우편이 배달되었다. 시아버지가 격려 편지와 함께 우체국 소액환으로 얼마의 생활비를 보내주셨다. 액수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1년 내내 농사지으신 것을 팔아 보내주신 정성과 사랑의 말씀이 눈물을 쏟게 했다. 돌이켜보면 시아버지의 사랑은 이것이 끝이 아니다. 첫 딸을 낳고 시댁에 갔을 때 일이다. 방학을 넘기고 한 달 남짓 더 머무르는데 극진한 산후조리를 받았다. 그때에도 “너는 우리 집 보배다. 맏며느리 자격이 넘친다. 아들 녀석이 응석받이로 커서 버릇이 쉽게 고쳐지지 않겠지만 철들 날이 있을 것이다” 라며 위로해주시는 시부모님이 더없이 고마웠다. 둘째, 셋째 며느리를 보신 후에도 시아버지는 유독 맏며느리인 나를 아껴주셔서 동서 보기가 민망스러웠던 적도 있다.
1970년 남편이 고혈압으로 입원을 한 적이 있었다. 부모님께서 걱정하실까봐 알리지 않았는데 뒤늦게 아시고는 서울 병원으로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부모님을 본 남편은 죄스러웠던지 눈물을 흘렸다. 시아버지는 다시 내게 봉투를 건네시며 병원비에 보태 쓰라며 제법 큰돈을 넣어주셨다. 교사 봉급이 많지 않을 터인데 시아버지께서는 일이 있을 때마다 그렇게 내리사랑을 보여주셨다.
그러던 시아버지께서 교단에 선 지 40년 되던 해에 정년을 코앞에 두고 돌아가셨다. 손자가 둘이 더 태어나고 막내가 결혼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하지만 형제자매들 모두 아버님의 청빈한 일생과 분에 넘치게 베풀어주신 사랑에 감복하고 있다. 부모님께서 타계하신 후로 남편은 술을 끊었다.
벌써 10여 년이 되었다. 늦게 철이 든 남편은 용돈이 생기면 과거 시아버지께서 그러하셨듯이 봉투를 건넨다. 손주며 외손주들에게도 인심 좋은 할아버지가 되었다.
“며느리야, 꼭 필요할 때 쓰거라!” 하신 시아버지의 말씀은 평생 잊히지 않는다. 그 말씀 때문에 나 역시 조금씩 비상금을 마련하여 급한 일이 생기면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성묘 때 대식구 이동에 필요한 차량을 임대하거나 기름값 같은 것은 비상금으로 해결한다. 사랑이 듬뿍 담긴 어른의 말씀이 지금까지 나를 사람답게 살게 하고,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이 가치 있게 쓰는 것인지 가르쳐주셨다. 지금 우리 가족은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