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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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등대가 되어
길을 비추다
재활치료 중인 박성용 씨 그리고 배정심 과장
사람 인(人)자는 혼자서는 살 수 없기에 서로 기대어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이다. 그렇기에 세상이 각박할수록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는 것이 아닐까.

여기 서로에게 희망의 빛을 비추는 사람들이 있다.

글. 차유미 / 사진. 김근호

키다리 아저씨에게 찾아온 불의의 사고
박성용 씨(58)가 일하는 공장에서는 솜을 가공하여 제품으로 만들었다. 하늘하늘 뭉쳐지지 않을 것 같던 실 먼지를 이불솜, 보온 덮개, 커튼용, 차량 시트용 솜 등 다양한 제품으로 가공했다. 박성용 씨는 쓸모없어 보이던 실뭉치가 사람에게 온기를 전하고, 세상을 따뜻하게 데우고, 탑승자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으로 변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자신이 하는 일이 뿌듯했다. 사실 그가 처음부터 이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40여 년 가까이 양복을 만드는 양장사로 자신의 양장점을 운영했다. 그러던 것이 어려운 시절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양장점을 접고 지인의 소개로 솜제조공장에서 일하게 된 것. 느지막하게 시작한 일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쾌활한 성격 덕분에 동료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특히나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키다리 아저씨’로 통할 만큼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공장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아저씨’를 찾았다. 2017년 12월 4일 갑작스러운 사고가 찾아왔다. 완제품을 재단하고 남은 솜을 모아 다시 사용하기 위해 기계에 넣은 것이 잘못된 것인지, 기계가 작동하지 않았고 무리해 작동시키려다 그만. 아차, 하는 순간 왼쪽 팔목을 잃었다.
“현장에서 손가락이 눌리거나 잘리는 경우는 있어도 손목이 상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일이 좀처럼 없는데 집중력이 떨어졌는지, 대형 사고가 일어나서 주변을 많이 놀라게 했습니다.” 키다리 아저씨의 사고는 동료들에게 더 큰 충격이었다. 박성용 씨가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해 있는 동안 매일매일 동료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아이돌 버금가는 인기에 병원에서는 ‘회장님이 입원하셨다’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였다고. 위로를 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동료들에게 박성용 씨는 안전 또 안전을 강조했다. 붕대를 감은 건 박성용 씨였으나 위로를 하는 쪽 역시 박성용 씨였다.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용기
올해로 근로복지공단 근무 14년 차인 배정심 과장에게도 재활보상 관련 일은 처음 맡은 업무였다. 공단의 업무이다보니 일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고객과 대면해야 하는 일에 설렘과 두려움이 왜 없었겠는가. 그런 두려움 속에 처음 만난 고객이 바로 박성용 씨였다. “병원을 통해서 연락이 왔어요. 보조기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데 재활치료를 중단하고자 한다고……. 서류를 보니 요양 기간이며 재활 서비스 등 저희가 드릴 수 있는 게 많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만나자고 졸랐어요.”
배정심 과장은 보조기에 대한 안내 서류를 챙겨 들고 병원을 찾았다. 박성용 씨와 그의 아내는 그녀를 웃으면 맞았다. 사고가 난 지 채 2개월이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직장에 복귀하고 싶다는 의사를 강하게 표현했다. 배정심 과장은 보조기에 대해 설명한 후 왜 이렇게 빨리 복귀하려고 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내가 이대로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아서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배정심 과장은 오히려 고민이 사라졌다. 그녀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업들에 대해 설명하고 공단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다. 박성용 씨는 배정심 과장의 단계별 코디네이션에 따라 집중 치료와 심리 상담을 병행하고 있다. 12주간의 재활치료가 끝나면 작업 훈련 테스트를 거쳐 직장에 복귀하게 된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장애 등록에서 후유 관리까지. 그녀의 관리를 받게 된다.
서로의 길라잡이가 되어
박성용 씨는 배정심 과장을 만난 날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2018년 2월 6일. 그날 만약 배정심 과장을 만나지 않았으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는 아프다는 생각도 못했어요. 괜찮다고 생각하고 빨리 뭐라도 해야겠다, 안 그러면 이대로 영 쓸모없는 사람이 되겠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과장님 하라는 대로 일대일로 치료를 받으면서 서서히 좋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믿고 따라 가기만 하면 되니까.”
박성용 씨는 배정심 과장과 함께 복귀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든든한 길잡이가 있기 때문이다. 배정심 과장에게도 박성용 씨는 특별한 고객이다. 먼저 다가설 용기를 준 고객, 온전하게 그녀를 믿고 따라와준 첫고객, ‘어떻게 고객을 대해야 하지’ 하는 기준을 세워준 고객이다. 그리고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인생 선배이다.
“한 번도 미리 실망을 하거나 포기하는 적이 없는 분이세요. 제가 서툰 부분이 있을 텐데도 믿고 기다려주시고, 권해드리는 것은 적극적으로 해보시죠. 그리고 항상 고맙다고 해주시니까 저도 힘이 나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서로 기대어 사는 사람(人).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법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