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멋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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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친구처럼,
때론 자매처럼
가죽 카드지갑 원데이 클래스
삶을 나눌 수 있는 ‘지기(知己)’가 있다는 것은 행복하고 든든한 일이다. 같은 조에서 입사 면접을 보고 함께 입사하게 된 동기생이 속마음을 참되게 알아주는 친구가 되었다. 비서실의 이소라 대리와 부산 지역본부 이하얀 대리는 서로가 있어 힘든 시간을 위로받고, 좋은 것은 함께 나눈다.

글. 차유미 / 사진. 김근호

봄비 내리던 어느 멋진 날에
제법 비다운 비가 내리는 봄날이었다. 켜켜이 쌓인 가죽 냄새가 습기에 취해 더 진하게 풍기는 가죽공방의 문을 먼저 연 건 본사 비서실에 근무 중인 이소라 대리였다. “공방이 너무 예뻐요. 요 앞 사거리에서 조금 헤맸어요” 하고 들어섰다. 취재팀을 위해 달달한 초콜릿을 준비해왔다며 건네는 그녀에게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잠깐 이소라 대리와 이하얀 대리와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두 사람은 입사 동기였다. 하지만 첫 만남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입사 면접이 있던 날이었다. 그룹 면접시험에서 같은 조였으니 엄밀히 말해 경쟁자였다. 이소라 대리는 그날 또랑또랑하게 면접관의 질문에 답하던 이하얀 대리를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저는 근로복지공단의 미인이 되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사람 ‘美人’이 아니라 밥값 하는 사람 ‘米人’입니다”라며 재치 있게 답하는 그녀를 보며 ‘저렇게 재치 있게 답할 수도 있구나! 같이 합격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연수원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먼저 알아보고 말을 건 사람은 이하얀 대리였지만 누구보다 반가웠던 건 바로 이소라 대리였다. 이후 두 사람은 공통점을 하나 둘 찾았다. 아니 둘이 ‘잘 맞다’는 것을 알아가게 되었다. 나이도 같고, 형제자매 중 오빠만 있는 것도, 여행을 좋아하는 취미도, 내성적인 성격까지…….
두 사람의 환상적인 호흡은 다방면에서 잘 맞았다. 음식을 먹을 때, 여행을 할 때, 운동을 할 때나 일을 할 때도. 어느 한 사람이 의견을 독점하지 않았고, 누구도 토를 달거나 투덜대지 않았다. 그런 탓에 두 사람은 누구보다 친한 친구가 되었다. 닮았지만 달랐고, 달랐지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 사이 이하얀 대리가 도착했다. 어쩜, 친구 아니랄까봐 “제가 조금 늦었죠. 공방이 너무 예쁘네요. 다 와서 사거리에서 헤맸지 뭐예요” 하며 들어왔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두 사람이 만들기로 한 것은 카드지갑이다. 점심시간 밥 먹으러 갈 때, 가볍게 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것이 있었으면 했는데, 직접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이하얀 대리가 신청했다. 그런데 디자인도, 색깔도 똑같은 것을 골랐다.
이심전심, 마음이 또 통했다. 바느질 한 땀에 이 얘기, 또 한 땀에 저 얘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바느질을 이어나갔다. 이하얀 대리는 가죽 공예를 해본 경험이 있었다. 점심시간에 회사 동료들과 함께 조그만 명함집을 만들어볼 기회가 있었던 것. 그런 이하얀 대리가 굳이 또 바느질을 하고자 했던 것은 이소라 대리를 위한 것이었다. “소라가 요즘 스트레스가 심한 것 같아 보였어요. 혼자서 울산에서 지내기도 하고, 제가 곁에 없으니까 스트레스를 해소할 곳이 없을 것 같았어요. 바느질을 하다 보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게 힐링이 되더라고요. 소라도 이 시간만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힐링이 됐으면 해서 하자고 했어요.” 친구의 배려 깊은 마음을 읽은 이소라 대리는 “이거 정말 아무 생각 없어진다. 좋은데”하고 한마디 거들었다. 가죽 바느질은 바늘 두 개가 사용되었다. 두 개의 바늘이 한 땀 한 땀 교차되면서 하나의 선을 만들어나갔다. 마치 두 사람 처럼………. 두 사람은 잠시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바느질에 집중했다.
또 하나의 추억이 더해지다
이소라 대리와 이하얀 대리는 연수원 때 동기로 입사교육을 받은 이후로 한 번도 같은 부서나 같은 본부에서 일해본 적이 없다. 이하얀 대리가 부산지역본부로 오게 되었을 때 부산에 있던 이소라 대리는 본사로 발령을 받았다. 얄궂은 타이밍에 함께 근무할 기회를 잃었지만 두 사람의 우정 전선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건 남녀 사이에나 통용되는 말이란 듯 두 사람은 서로를 격려하고, 앞선 경험을 나눴다.
바느질을 하는 동안 훌쩍 서너 시간이 지나갔다. 같은 땀에서 시작했지만 엇갈렸던 바늘은 다시 같은 땀에서 마무리되었다. 완성된 카드지갑은 같은 디자인과 같은 색깔인지라 같이 두면 누구 것인지 구별이 잘 되지 않겠지만 따로 있을 땐 서로를 생각할 수 있는 매개체가 생긴 것 같아 두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물이 되었다. 두 사람이 바느질에 집중하는 동안 비도 그쳤다. 맑게 갠 날씨만큼이나 두 사람의 얼굴도 웃음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