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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의 온기로 서로의 진심을 잇다
착한 기업을 소개합니다
점자는 줄곧 시각장애인들의 문자로만 인식되어왔던 까닭에 복잡하고 난해한 기호 이상의 함의를갖지 못했다.
그러나 점(Dot)으로 서로(Between)를 이해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도트윈(Dotween)을 세운 박재형 대표는 점자를 소중한 이에게 전하는 ‘진심의 언어’이자, 시각장애인의 삶을 보다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열쇠’로 풀어냈다.

점자를 새긴 브랜드 제품의 판매뿐만 아니라,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디자인을 통한 사회복지의 실현’이라는 꿈을 향해 전진해나가는 그를 만났다.

글. 김연정 / 사진. 성민하

디자인, 소통의 매개체가 되다
미대 입학을 희망했던 박재형 대표는 디자인의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에 대해 유독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도트윈의 모태가 된 핵심 아이디어는 이 과정에서 탄생했다. 시각장애인들이 손으로 읽어내는 ‘촉각 언어’가 보고 느끼면서 감각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까닭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쌍둥이 동생인 박재성과 함께 ‘2011 전국소셜벤처경연대회’에 참가해 이 아이디어를 세상에 공개했다. 점자 디자인으로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사회적기업 모델을 제시한 형제는 그 독창성을 인정받아 청소년 부문 대상을 거머쥐는 영예를 안았다.
고교 졸업 후 박재형 대표는 미술 대신 사회복지학과에, 동생은 건축학과에 진학했지만, 공통의 관심사는 이들을 한데 뭉치게 했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아이디어, 젊은 에너지로 무장한 형제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모은 돈으로 창업을 결심한다. 점자를 메시지로 담은 제품을 출시한 이유는 소비자들이 제품을 소비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각장애인 이슈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많은 이들이 점자를 쉽고 친근한 언어로 받아들이고, 실생활에서 활용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였어요. 시각장애인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시혜적인 관점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해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보고 싶었던 거죠.”
그런 의도에 충실히 부합하기 위해 그는 제품을 디자인할 때도 점자를 가장 우선적인 요소로 고려했다. “점자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점자가 들어갈지를 놓고, 그 외형을 나중에 디자인하는 편이에요. 어떻게 하면 점자가 사람들 손에 가장 많이 만져질 수 있을까를 집중적으로 고민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디자인과 그들이 표방하는 가치를 결합시켜나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일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감의 무게를 느끼며 점자와 시각장애인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뒤따랐다. “점자를 열심히 배우면서 익혔어요.
창업 초기에는 시각장애인분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도 듣고, 그분들의 의견을 브랜드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기도 했죠. 또 점자에 관련된 법의 제정이나, 규정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대응하려고 했어요. 처음에는 점자를 알파벳처럼 일대 일대응으로만 담았는데 이제는 축약된 표현을 제품에 넣기도 합니다.
비록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내용을 모두 수용하기는 어렵다고 할지라도 이 이슈에 한해서만큼은 가장 정확히 파악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업이 되고 싶기 때문이죠.”
브랜드 철학으로 전하는 진중한 울림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슈를 다시 한번 일깨움과 동시에 그는 브랜드에 ‘진심’이라는 철학을 새겨 넣었다. “점자는 우리에게 낯선 언어로 다가오는 만큼 소중한 마음을 담아서 전할 수 있는 암호 같은 기능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물을 주는 이도 특별한 메시지를 담을 수 있을뿐더러, 선물을 받는 이도 그 의미를 해석해보면서 상대방의 진심을 헤아려볼 수 있게 되니까요.” 때문에 그는 점자의 해석 방식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점자해석표의 구성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개발 기간만 해도 1년이 넘게 걸렸고, 전달 방식도 웹에서 제품에 동봉되는 종이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바뀌었다. 이러한 노력과 더불어 진심을 털어놓는 소모임인 ‘진심발전소’를 1년 가까이 운영하며 진심의 가치를 전하기도 했다. “현대사회에서 꼭 필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이야기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의 진심을 솔직하게 전하는 계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되었죠. 진심발전소를 찾아주신 분들의 사연과 후기를 들으면서 느낀 것들을 브랜드에 고스란히 담으려고 했습니다. 저희 브랜드는 제품의 90% 이상이 선물용으로 판매되고 있는데요. 원하는 메시지를 새겨드리는 주문 제품의 경우, 놀랍게도 중복된 문구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런 면에서 저희 브랜드의 철학이 잘 전해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전하는 일
명함지갑을 시작으로 이어폰 줄감개, 여권커버, 가방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출시했지만, 여전히 수공예 작업을 고수하고, 가죽 제품을 고집하는 것도 브랜드 철학과 궤를 같이 한다. “점자는 손으로 읽는 문자인 만큼, 만졌을 때 가장 촉감이 좋은 소재를 찾게 되더라고요. 사용자의 편의와 안전을 고려해 친환경적 생산 방법으로 제작된 베지터블 가죽을 재료로 쓰고 있어요. 플라스틱 같은 소재를 쓰면, ‘진심을 전한다’는 브랜드의 취지와도 맞지 않고, 너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30년 넘도록 부산에서 가죽공방을 운영해온 부모님은 브랜드의 품격을 높이는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고 있다. 오랜 노하우와 장인정신을 발휘해 제품의 전반적인 제작을 도맡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제작에 대한 부담감을 상당 부분 덜어냈다. 어느덧 창업한 지도 2년 반을 넘긴 그는 브랜드로 인해 변화되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을 마주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마켓이나 부스 행사를 갈 때면, 많은 분들을 직접 만나게 되는데요. 저희 제품을 보면서 점자에 흥미를 보이는 분들을 보면, 굉장히 반가운 마음이 들어요.
제품을 구매하고 난 후로 지하철과 엘리베이터에 있는 점자들이 눈에 훨씬 많이 띄고, 이제는 집중해서 보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뿌듯함을 느낍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인정받아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도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지만, 그는 외국어 버전의 점자해석표 개발에 몰두하면서 신중하게 진출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국내를 넘어 해외의 주목까지 받으면서 짧은 시간 안에 브랜드의 성장을 일구어냈지만,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프로젝트 준비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향후 비시각장애 아동과 시각장애 아동이 함께하는 놀이 프로그램과 시각장애인의 지인을 통해 그들의 일상을 들려주는 채널을 선보이며 보다 열린 소통을 도모할 예정이다.

“브랜드 차원에서는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았지만, 그 이상의 효과를 내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됩니다. 올해는 초심으로 들어가 시각장애인들을 더 많이 찾아뵙고 만나면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실질적으로 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아직도 많은 도전 과제들이 그의 앞에 놓여 있지만, 그는 꿈을 향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디자인을 통한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것이 꿈이에요. 잘못된 사회문제와 편향된 시각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인과 소수자 이슈에도 관심이 많은 만큼 단계별로 디자인으로 담아내서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와 문화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박재형 대표의 바람처럼 그의 진심이 담긴 디자인이 많은 사람들에게 진중한 울림을 전하는 메시지로 다가가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