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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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힘이 되어주는
서로의 멘토
박미경 씨와 간우선 대리의 우정 이야기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관계 중에서도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이상적인 관계가 아닐까. 박미경 씨와 간우선 대리는 산재환자와 공단의 담당자로 만났지만 우연이 필연이 되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있다.

글. 차유미 / 사진. 류열

작은 인연이 끈끈하게 이어져 우정이 쌓인다
오랜 기다림 끝에 대지를 적시는 반가운 비가 내리던 날, 간우선 대리와 박미경 씨가 다시 만났다. 카페에 먼저 도착한 이는 간우선 대리였다. 환한 미소로 반갑게 인사했다. 사람의 인상은 처음 만난 5초 안에 결정된다고 했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하게 만드는 미소였다. 몇 마디 인상을 나누는 동안 박미경 씨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간우선 대리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꺄~ 소리를 내며 두 손을 맞잡았다. 마치 고교 동창생들의 인사처럼.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2년 전이다. 산재 환자와 잡코디네이터로 만났다. 박미경 씨는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길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왼쪽 팔이 부서졌다. 팔에 12개의 고정핀을 박아야 할 정도였다. 산재 판정 이후 치료과 스포츠 재활 프로그램까지 마쳤다. 재활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하루에 7시간 이상을 운동하는 열의를 보였던 박미경 씨는 시간이 그냥 흘러가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 그러던 중 ‘내일찾기 서비스’를 받게 되었다. 내일찾기 서비스는 신체기능 손상이 심하거나 장해가 남았을 때 직업복귀에 어려움을 가진 산재 근로자에게 요양 초기 단계부터 적기에 체계적으로 내외부 자원을 활용하여 직업복귀를 지원하는 서비스다.
박미경 씨는 사회복지 분양에 관심을 가지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잡코디네이터를 찾았다. 그럴 때마다 한 번도 귀찮아하지 않고 알아 봐주고 도와준 이가 바로 간우선 대리였다. 박미경 씨는 간우선 대리의 도움을 받아 재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사회복지사를 비롯한 4개의 자격증 땄다.
“정말 고마운 분이세요. 저하고는 나이 차이도 크지만, 선생님만 부담스럽지 않다면 친구처럼 지내고 싶어요. 다른 부서로 이동하셔서 다른 지역으로 가실까 봐 진정서라도 넣어야 하나? 혹여 다른 지역에 가면 밑반찬이라도 해드리고 싶다니까요.”
박미경 씨의 간우선 대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살짝 부러웠다.
어떤 친구가 이럴 수 있을까? 하물며 산재 환자와 잡코디네이터로 만났는데.
“박 선생님께 제가 해드린 게 별로 없어요. 항상 먼저 찾아서 물어보시고, 먼저 손을 내미셨어요. 부탁하신 걸 찾아드리고, 함께 이야기하면서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운걸요. 박선생님을 보면서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 또 자신을 항상 단련하며 자기계발 하시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되었습니다.”
간우선 대리는 박미경 씨를 언니처럼, 이모처럼 느낄 때가 많다. 만날 때마다 ‘나도 이 분처럼 강인하게 삶을 개척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산재 판정으로 제2의 인생을 열다
두 사람의 인연은 재활 프로그램이 모두 끝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박미경 씨는 간우선 대리의 도움으로 재취업에 성공했다. 그녀가 평소에 관심을 가졌던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녀가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된 직업은 ‘장애인활동보조인’이다. 하루 8시간 이상 장애인의 이동과 생활을 도와주는 역할이다.
박미경 씨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늘 감사하고 행복하다.
“미용 자격증이 있어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노인복지관을 찾아 어르신들께 이미용봉사를 해드렸어요. 하루에 20~30명씩 머리카락을 자르고 나면 가위가 천근만근으로 느껴졌어요. 그래도 마음만큼은 뿌듯했어요. 사고가 있기 전에는 막연하게 봉사활동을 열심히 해야지, 여력이 되면 더 도와야지 했는데 막상 사고가 나고 재활을 하면서 이제 이 일을 업으로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차근차근 준비해가는 과정입니다.”
박미경 씨는 낮에는 장애인활동보조인으로 밤에는 다시 공부하는 수험생이다. 사회복지 분야에서 그녀가 조금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의 꿈이 이루어지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질 것 같아 그녀의 앞날을 응원하게 된다.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오지랖퍼’
박미경 씨는 간우선 대리의 요청에 응답해 지난 3월에 산재 환자의 재활을 돕는 ‘멘토’로 활동하게 되었다. 산재 환자에게 치료와 재활 과정에서 겪게 될 어려움을 지혜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상담과 자문 역할을 맡게 된 것.
“당연히 해야죠. 내가 겪은 일이고 어떤 심정인지 내가 제일 잘 아는데 ……. 제가 그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오히려 영광이죠.”
간우선 대리가 조심스럽게 멘토 위촉 얘기를 꺼냈을 때 박미경 씨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당연히 해야죠.’ 이 말이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제가 가끔 박 선생님께 오지랖이라고 핀잔을 주거든요. 주위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마다하시는 걸 본 적이 없어서요. 가끔 멘토 위촉을 수락하시고도 활동을 꺼리시는 분들도 계세요.
박선생님께서 누구보다 열심히 해주실 분이시라 ‘당연히 해야죠’라고 기쁘게 말씀해 주셔서 제가 더 기뻤어요.” 비가 그친 후 두 사람을 손을 꼭 잡고 함께 길을 걸었다. 나란히 손을 잡고 걷는 두 사람을 보며 유안진의 수필 <지란지교를 꿈꾸며>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친구와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