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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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가능할까?
기차 타고 부산에서 파리까지!!
우리 사회를 보는 다양한 시선
여름휴가철이 성큼 다가왔다. 만약 색다른 여행을 꿈꾼다면 세계 여행 덕후들의 로망인 시베리아 횡단철도 여행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글. 박흥수(철도연구원, 작가)

한국은 섬이었다. 분단으로 고립된 채 동아시아 끝에 갇혔던 지난 세월, 한국에서 외국으로 간다는 것은 “해외여행” 말 그대로 바다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2018년 봄, 전격 성사된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까지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풀리기 시작했다. 남북이 만나 제일 먼저 합의한 것 중의 하나가 남북철도 연결이었다.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한반도에서 펼쳐지는 평화의 기운이 세계를 덮으리라. 대륙으로 길이 열린다. 섬의 공식이 비로소 폐기되는 것이다. 어려운 장애물들이 있겠지만 넉넉한 낙관과 인내심을 가지고 한 걸음 두 걸음 내딛다 보면 부산역 전광판에 개성, 평양, 신의주, 베이징, 하얼빈, 이르쿠츠크 같은 북한과 국경 넘어 외국 도시 이름이 뜰 날이 올 수 있다. 일본제국주의 점령 시절인 1938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열차시각표에는 부산발 봉천행 첫 열차인 제7열차 급행 노조미의 정차역이 나온다. 봉천은 현재 중국의 선양을 말하는 것으로 선양에서 북쪽으로 달리면 하얼빈, 만주리를 거쳐 러시아 치타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만난다. 선양에서 남쪽으로 향하면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 닿을 수 있다. 오전 7시 30분에 부산을 출발한 7열차는 경부선을 달려 오후 3시 28분에 경성(서울)에 도착한다. 오후 8시 평양을 지나고 국경 넘어 안동(단둥)에는 날이 바뀌어 0시 10분에, 종착역인 봉천에는 아침 7시 40분에 도착한다. 남북철도가 연결되면 바로 이 노선이 만주 횡단철도를 거쳐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이어지는 부산발 철의 실크로드다.
이쯤에서 남북철도 연결이 하루 속히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그 예행연습으로 기차 타고 유럽까지 가는 길을 먼저 떠나보자.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세계에서 제일 긴 철도노선이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장장 9,288km를 달린다.
아시아와 유럽을 품고 7개의 시간대를 통과한다. 중간 도시에 내리지 않고 직통으로 달려도 6박 7일이 소요되는 장대한 철길이다. 부산에서 여정을 시작한다면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간 뒤 인천공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날아가야 한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부산을 닮았다. 초량동 달동네 아래 자리 잡은 부산역과 부산항처럼 언덕 아래 블라디보스토크 역과 항이 나란히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방을 정복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러시아의 동방 정책이 만든 신도시가 바로 블라디보스토크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차를 타고 북으로 2시간 정도 달리면 우수리스크에 도착한다. 우수리스크는 고려인, 까레이스키라고 불리는 한인들이 정착해 살던 도시이다. 이곳에는 고려인 문화센터가 있다. 우수리스크를 찾는 한국의 관광객들이라면 반드시 들르게 되는 곳으로 고려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고 있다.
방문자는 문화센터 강당에서 전통 악기인 북이나 장구를 치며 춤을 추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역만리 동토의 땅이라 여겨졌던 연해주 도시에서 한국의 옛 가락을 듣는 것은 반가우면서도 신기한 일이다. 그만큼 한인들의 사연이 짙게 배어 있는 땅임을 알려주는 것이리라. 우수리스크에서 10시간 정도 달리면 하바롭스크 역이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무르 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가 하바롭스크다. 하바롭스크 역시 한인 독립운동가들이 살았던 곳이다.
여성 항일 투사 김알렉산드라가 외무책임자로 집무했던 건물이 아직 남아 있고 러시아 정교회 성모승천성당이 아무르 강변을 내려 보며 서 있다. 하바롭스크 중앙시장은 재래시장이 주는 정겨운 풍경을 날것으로 보여준다. 하바롭스크에서 이틀을 달리다 보면 열차 창밖에 나타나는 풍광이 여행자들을 놀라게 한다. 바로 바이칼이다. 세계에서 제일 깊은 호수이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넓은 호수의 위용은 마치 바다를 보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수평선이 보이는 호숫가를 달린 열차가 도착하는 도시는 이르쿠츠크다.

이르쿠츠크에서 16시간 정도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숲을 감상하면서 달리면 크라스노야르스크에 도착한다. 석양이 질 무렵 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예니세이 강변으로 나가면 한가로이 산책하는 이들과 눈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10시간을 더 달리면 노보시비르스크에 도착한다. 노보는 영어의 ‘NEW’란 의미로 새시베리아란 뜻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다니게 되면서 만들어진 신도시다. 이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서쪽으로 달리면 모스크바로 향하는 횡단철도 본선이고 남쪽으로 가면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로 이어진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서쪽으로 달리다 보면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 지점이 나온다. 예카테린부르크다. 택시를 타고 시 외곽의 경계비에 가면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경계선이 있다. 한 발은 아시아에 또 한 발은 유럽에 디디는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예카테린부르크를 떠난 열차는 힘차게 우랄산맥을 넘는다. 그리고 29시간을 달리면 횡단열차의 종착역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브스키 역에 도착한다. 여러 가지 색을 갖고 있는 모스크바는 그만큼 매력적이다. 모스크바 지하철은 역 하나하나가 미술관을 옮겨다 놓은 것처럼 화려하다. 문학과 예술과 혁명이 어우러졌던 도시 모스크바는 서유럽으로 향하는 또 다른 창이다. 모스크바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23열차의 종착역은 파리다. 열차는 벨라루스, 폴란드, 독일을 거쳐 프랑스까지 달린다. 손기정이 베를린까지 탔던 노선이었다. 1927년 6월 19일 부산역을 출발한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이 파리까지 달렸던 철길이기도하다. 열차가 바르샤바와 베를린을 지난다는 것은 눈높이로 국경을 넘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가 섬이 아니라 대륙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진기한 경험이다. 할 수만 있다면, 용기를 조금 내 적금통장을 깨고 연차휴가를 모아 기차 타고 대륙을 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