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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향기 머무는 섬마을
남해
역사가 있는 여행
여름 향기는 남해 깊숙이 들어설수록 완연하다. 바다를 가로지른 다리 위로 기분 좋은 바람이 스친다.
소담스러운 어촌마을과 점점이 떠 있는 섬들. 그리고 싱그러운 바다 내음.... 그리움으로 내달린 길 끝, ‘보물섬’ 남해의 풍경은 푸른 기운과 함께 다가선다.

글과 사진. 서영진(여행 칼럼니스트)

남해는 여행길 마지막에 펼쳐보고 싶은 섬이다. 남해에는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해안도로가 있고 100계단이 넘는 다랭이 논과 사연 가득한 어촌마을이 미역처럼 펼쳐져 있다. 해변에 드리워진 녹색, 감색 지붕들은 파란 바다에 잠겼다 떠오르며 끝없이 자맥질을 해댄다. 삼천포대교가 뚫리면서 남해의 풍경은 바뀌었다.
남해대교를 거쳐 섬을 한바퀴 두루두루 돌아야 닿았던 동북쪽 창선마을은 아득함을 털어냈다. “장례식 때 손님들에게 두루마리 휴지 등을 나눠주는 풍습이 창선에 아직 남아 있지예. 남해 본섬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라예.” 서울에서 남해까지 천릿길. 또 한참을 해안도로를 일주해야 도착했던 창선은 이제는 뭍에서 가까운 친숙한 곳이 됐다.
지족해협의 전통 멸치잡이 죽방렴
창선마을에서 엿보는 가장 기이한 풍습은 멸치잡이 원시 죽방렴 조업이다. 창선교 아래 지족해협은 밀물과 썰물 때 수심의 차이가 크고 조류가 거세 예전부터 전통 멸치잡이가 성한 곳이었다. 물살이 흘러 들어오는 쪽을 향해 ‘살’이라 불리는 7m 높이의 참나무 기둥을 ‘V’자형으로 촘촘히 박아놓고 조류의 힘으로 멸치를 잡아내는데 둥근 통 안에 잡히는 고기는 후릿그물이나 뜰채로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이런 죽방렴은 전국에서 자취를 감추고 남해 창선일대에만 남아 있다.
창선교를 지나 물건리에서 미조항까지 이어지는 물미 해안도로는 그림같은 풍경의 드라이브 코스다. 바닷가를 따라 1,500m의 숲이 늘어서 있는 물건리는 방조, 방풍림이 해안가를 따라 도열한 모습이 이색적이다. 아름다운 어촌 100선에도 꼽혔던 곳으로 300년 이상 된 아름드리나무들은 거센 파도와 바람으로부터 마을을 지켜냈다. 나무가 바다 쪽에 드리운 그늘은 고기떼를 모으는 구실도 했다.
방파제가 생기면서 고기떼가 해변까지 몰려오는 일은 뜸해졌지만 물건리 주민들에게는 이 숲을 해치면 부락이 망한다는 금기가 아직까지 전해 내려온다. 태풍으로 남해에 수해가 닥쳤을 때도 방풍림 때문에 물건리는 건재했다. 물건리는 이팝나무에 흰 꽃이 필 때가 가장 예쁘다.
물건리 포구 너머 독일인마을
물건리의 포구 풍경은 건너편 언덕에 자리 잡은 독일인마을에서 내려다보면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주황색 기와를 얹은 독일식 가옥들이 늘어선 독일인마을은 남해군이 독일 교포들의 집단 귀향촌으로 조성한 마을로 20여 채의 아기자기한 집들이 포구와 조화를 이루고 서 있다. 독일에서 직접 공수해온 자재를 이용해 지은 집들은 앙증맞은 나무 창문에 뾰족지붕과 담장이 소박하게 어우러졌다. 세모지붕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유럽의 한 어촌마을을 연상시킨다. 독일인마을의 아침 풍경은 그물코를 다듬고 밥 짓는 연기가 솟는 남해의 여느 어촌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인 아내를 둔 머리 희끗희끗한 독일인 남편이 아내와 함께 정원을 가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독일인 마을 언덕 위에는 세계 각국의 정원을 모아놓은 원예예술촌도 문을 열었다.
독일인 마을 인근 해오름 예술촌은 물건리의 폐교를 예술촌으로 꾸민 곳이다. 바다가 보이는 넓은 공간에서는 소소한 예술 작품과 독일 벼룩시장에서 건너온 생활용품과 액세서리 등을 만날 수 있다.
남해 끝자락, 소담스러운 미조항
바닷가 어촌의 사연은 골목 어귀를 지날 때마다 묻어난다. 국토를 종으로 가르는 3번 국도의 시발점은 초전마을에서 만날 수 있다. 초전마을을 지나면 남해에서 가장 예쁜 포구인 미조항에 닿는다. 미조항은 남해 끝자락에 매달린 포구로 ‘미륵이 돕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을 정도로 어장이 기름진 멸치잡이배의 집어항이다.
미조항은 멸치회, 갈치회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모여 있어 한결 인기 높다. 새벽이면 횟감을 내놓는 위판장도 들어선다. 계절이 무르익으면 남해에서는 이곳저곳 시큼한 멸치잔치가 벌어진다. 마을마다 멸치액젓을 담가놓은 커다란 통들이 골목에 도열하고, 식당들은 멸치조림, 멸치회 등을 내놓고 손님을 유혹하기에 바쁘다. “예전 농사지을 때 우물에 꽁보리밥을 넣어뒀다가 째진(조린) 멸치를 얹어 먹으면 한끼로 충분했지예. 남해 마늘을 넣어 째린 멸치를 자작자작하게 국물까지 퍼서 상추쌈 안에 넣으면 맛이 기막혔어예.” 이곳 토박이들은 예전 남해 사람들에게는 멸치가 ‘금치’였다며 멸치에 대한 자랑을 하염없이 늘어놓는다.
미조항 바다 건너로는 쌀섬, 팥섬 등 작은 섬이 옹기종기 떠 있다. 미조항에서 설리까지 이어진 해안도로에서 포구와 바다를 내려다보면 남해의 어촌마을들은 탄성으로 다가선다. 비단결 같은 상주은모래해변을 지나면 기암괴석이 즐비한 금산과 서포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했다는 노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한려해상공원인 금산에 자리 잡은 보리암은 남해에서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보리암에서 내려다보는 한려수도의 바다는 아득하다.
토속 신앙 깃든 가천 다랭이마을
남해의 기운은 가천 다랭이마을에서 가장 푸르고 활기차다. 남해도는 사면이 바다인 섬인데도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해안가 주민들 대부분이 바다로 이어지는 비탈에 계단식 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섬 끝자락 가천마을은 절벽 위로 해안도로가 아슬아슬 달리고, 도로 밑에 밭이 있고, 밭 아래 마을과 그 마을 아래 바다가 놓인 재미있는 형상이다. 응봉산 자락 아래 가천마을은 108개의 계단식 밭 외에도 다양한 사연 때문에 더욱 정겹다. 구수한 돌담길이 이어지는 마을에 들어서면 할머니들이 막걸리를 평상에 내어놓고 판다. 가천마을이 생태마을로 지정된 뒤에 막걸리집들이 하나둘 들어섰는데 등산객들이나 이곳을 찾은 외지인에게 손두부와 어우러진 가천 할머니 막걸리는 별미로 통한다.
척박한 터전의 가천마을 주민에게 토속신앙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다. 밭을 가로질러 마을 아래로 내려서면 암수 미륵바위가 있고 제삿밥 못 먹고 구천을 떠도는 혼령을 모시는 ‘밥무덤’이라는 서낭당도 마을 중앙에 들어서 있다. 주민들은 음력 10월 보름이면 제단 밑에 젯밥을 묻고 풍어와 풍작을 기원한다. 가천마을을 뒤로하고 일몰이 가장 아름답다는 구미숲과 이락사를 지나면 남해대교다. 기다랗게 늘어선 현수교인 남해대교는 낙조가 어우러지면 ‘보물섬’의 추억을 감싸는 정경을 펼쳐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