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멋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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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생긴 대로 피었기 때문이네
플라워 리스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
입춘이 훌쩍 지났지만, 칼바람은 쌩쌩 불었다.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맹추위는 도무지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봄이 오기나 할까?’ 의심이 들 무렵, 이미 봄날인 곳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인천병원 경영기획부 박진주 주임, 김태희 사원과 함께 누구보다 먼저 봄을 느끼고 돌아왔다

글. 김하늘 / 사진. 김재룡

꽃.알.못 두 사람, 플라워 스튜디오를 찾다
인천병원에서 마주 보고 앉아 일하는 두 사람이 서울 한복판의 플라워 스튜디오에서 다시 마주 앉았다. 오늘은 플라워 리스 만들기 체험이 있는 날. 병원 홍보 담당자인 김태희 사원이 사보 이벤트 공지를 보자마자 신청한 덕분에 이런 특별한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사실 꽃을 보는 건 좋아하는데 꽃 이름을 잘 알지는 못해요. 그래도 사람들이 SNS에 올리는 꽃 사진을 찾아볼 정도로 관심은 많은 편이에요. 남들이 올린 사진을 볼 때마다 ‘나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기회가 생겨서 박진주 주임님께 같이 하자고 했죠.” 평소 관심 있게 봐온 분야이기 때문일까. 김 사원의 표정은 밝았다. 들뜬 것은 박 주임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제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 요즘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거든요. 꽃장식이나 드라이 플라워를 눈여겨보다가 강좌를 들어볼까 싶어서 찾아보기도 했어요.
자기계발비로 배워보려 했는데 가격을 보고 깜짝 놀라서 포기했죠. 김태희 사원이 함께하자고 얘기해줘서 정말 기뻤어요.”
신혼을 즐기고 있는 박 주임을 위해 김 사원은 체험 신청을 할 때 플라워 리스 메인 컬러를 특별히 분홍색으로 부탁했다. 밝고 사랑스러운 느낌이 나도록, 완성된 작품을 거실에 두기만 해도 집 안 분위기가 한층 화사해지도록 말이다.
매력은 살리고! 전체는 조화롭게
꽃 종류는 다양했다. 베이스를 담당할 녹색 섬담쟁이와 노란 미모사가 스튜디오 한구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커다란 꽃송이로 한껏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꽃들도 셀 수 없이 많았다. 핑크플로이드, 헤라, 크리스마스 로즈, 코럴튤립, 아네모네, 라눙쿨루스 등 한송이 한 송이가 매력적인 꽃부터, 중간중간 포인트를 줄 흰색 스위트피, 스카비오사 옥스퍼드와 완성 직전의 플라워 리스에 리듬감을 더해줄 설유화까지...,
“사실 플라워 리스 만들기가 상당히 난이도 있는 작업이라, 첫 시간부터 진행하진 않는데요. 두 분 다 굉장히 잘 따라오시네요.”
선생님의 걱정과 달리, 수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먼저 꽃 가위 쓰는 법, 입체감 있게 꽃을 배치하는 법, 오늘 쓸 꽃 이름과 특징 등을 익히는 시간을 가졌다. 이론 수업을 끝마치고, 이제 실전에 돌입할 차례. 도넛 모양 플로럴폼의 모서리를 칼로 다듬는 데블링 과정이 끝나자, 두 사람은 녹색 섬담쟁이와 노란 미모사를 다듬어 볼륨감 주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꽃송이가 큰 꽃부터 작은 꽃 순으로 줄기를 다듬어 리스를 꾸며갔다.
“리스는 밸런스가 잘 맞아야 예쁘잖아요. 만드는 내내 부분보다는 전체를 보려고 노력했어요. 처음이라 어느 쪽에 꽂아야 균형이 맞는지 잘 모를 때도 있었는데 선생님이 도움을 많이 주셔서 수월하게 작업했어요.”
초보자에게 리스 만들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밸런스를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인데, 박 주임과 김 사원은 그 부분에서 선생님께 높은 점수를 받았다. 꽃송이의 방향과 간격, 배치 등을 잘 고려해 꽃송이가 서로 부딪치거나 특정 부분에 뭉쳐 있지 않도록, 색이 조화롭지 못한 부분이 없도록 균형 있게 디자인한 것이다.
“만들 때 꽃이 한쪽으로 치우칠까 봐 멀리서 바라보기도 하고, 까치발을 들어서 내려다 보기도 하고, 최대한 다양한 각도에서 리스를 바라봤어요. 그러던 중 플라워 리스를 만드는 과정이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때론 한쪽으로 치우치기도 하겠지만, 그때마다 균형을 다시 잡아 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 일과 생활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잖아요. 그래서 ‘워라밸’이라는 말도 생긴 거고요.” 리스를 돌려가며 요리조리 살펴보던 김 사원이 말했다. 과연, 선생님이 인정한 우등생다운 소감이다.
작품을 보면 성격이 보인다?
탁, 탁, 탁, 꽃 가위로 줄기 자르는 소리만 경쾌하게 울려 퍼지던 그때, 선생님이 조용한 분위기를 깨고 말을 걸어왔다.
“와서 두 사람 작품 좀 보세요. 정말 예쁘죠? 재밌는 건 두 사람 작품이 크기도, 분위기도, 디자인도 다르다는 거예요. 작품만 봐도 대충 성격이 보이지 않나요?” 그러고 보니 박 주임의 리스는 크기가 더 크고 화려하고 풍성했고, 김 사원의 리스는 크기가 작고 소박하고 아기자기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만 다른 것은 아니었다. 꽃을 쓰는 디테일도 달랐다. 박 주임은 줄기를 거침없이 툭툭 잘라냈고, 꽃송이를 과감하게 배치했다. 몇몇 송이는 다른 꽃송이보다 톡 튀어나오게 높이 꽂아 포인트를 주기도 했다. 그래서 박주임의 리스는 더 풍성하고 발랄했다. 김 사원의 스타일은 박 주임과 정반대였다. 줄기를 자를 때도 길이를 꼼꼼하게 계산해 여러 차례 나눠 잘랐고, 꽃을 꽂는 손놀림도 한결 조심스러웠다. 전체적으로 튀는 꽃이 없도록 조화롭게 배치해 아담하고 수수했다.

“같은 꽃으로 만들었는데 어쩜 이렇게 다른지 신기하네요. 사실 저는 꼼꼼한 만큼 생각이 많은 편이거든요. 일할 때도 그래요. ‘이렇게 해도 될까?’ 고민하고 있으면, 주임님은 매번 ‘그만 고민하고 그냥 해’라고 말하거든요. 리스 하나 만들었을 뿐인데, 그 과정에서 평소 성격까지 간파당할 줄은 몰랐네요. 하하.”
외모도 성격도 직급도 다른 두 사람이 함께한 이 순간은 한마디로 플라워 리스 같은 시간이었다. 누구보다 먼저 봄을 느끼고 만끽한 이 시간이 더욱 특별하고 의미 있는 것은 서로 다른 아름다움이 한층 더 매력적인 조화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