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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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양초입니다
태백병원 재활치료실 진폐증 환자 이야기
나는 양초입니다. 예전에는 주변을 밝고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행복해서 내 몸이 타들어 가는지도 몰랐습니다. 불꽃이 한 번 일렁일 때마다 아내가 웃었고, 아들이 웃었고, 딸이 웃었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뿜어내는 불빛을 조명 삼아 공부를 했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 하나둘 집을 떠났습니다.

글. 편집실

그렇게 온몸을 바쳐 주변을 밝히기를 30년. 어느새 제 몸은 녹고 또 녹아내려 작아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불을 밝히기도 힘들어졌지요. 저는 하얗고 하얀 양초였는데, 어느새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촛농은 검고 검더군요. 타고 남은 시커먼 잿더미가 제 몸을 검게 물들인 것이지요. 병원에 갔더니 제 몸을 다시 희게 만들 순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저더러 진폐증이라고 했지요. 광부로 일하는 30년간, 폐에 분진이 쌓여왔다는 것입니다. 가족을 위해 내 몸을 바쳐 일한 결과가 호흡기 질환이라니.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위태위태하게 흔들리던 불빛마저 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주변은 순식간에 암흑으로 뒤덮였습니다. 너무나 큰 상실감과 불안감이 저를 덮쳐왔습니다. 살면서 다시는 전처럼 빛을 낼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어둠은 제 몸과 마음을 더욱더 얼어붙게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숨이 가빠와. 기본적인 일상생활도 할 수가 없어.’
‘외출하는 게 너무 겁이 나.’
‘병원 생활에 너무 지쳤어. 난 가족들에게 짐만 되는 것 같아.’
깊은 어둠이 나를 온전히 집어삼키려 할 때였습니다. 멀리서 작은 불빛 하나가 제게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어르신, 어둠 속에 숨어 계시지만 마시고 밖으로 조금만 나와보세요.”
처음에는 너무 귀찮았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들었거든요. 치료실까지 내려가는 것만 해도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인데, 작은 불빛은 자꾸만 주위를 맴돌며 저를 채근했습니다. 작은 불빛은 제 주위를 전보다 따뜻하고 밝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종종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지요. 뜨겁게 활활 타오르던 그 시절 말입니다.
‘내가 다시 전처럼 빛을 낼 수 있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한 번, 두 번 재활치료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제대로 걸을 수만 있다면.’ ‘한 번만이라도 뛸 수 있다면.’ ‘직장에 복귀할 수 있다면.’
저의 간절한 소원이 하늘에 닿은 걸까요? 제 앞에 또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직업복귀 프로그램 담당자 김우재입니다. 오늘부터는 업무에 사용하는 근육 위주로 단련할 거예요.”
운동하다 보니 어느새 제가 웃고 있더군요. 요즘 제 표정과 주변 분위기가 조금씩 밝아진 것을 느낍니다. 다른 환자분들과 대화도 나누고 함께 웃고 떠들기도 하고, 처음보다 운동량도 3배 이상 늘었습니다.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 같던 불꽃이었는데, 이제는 크기도 밝기도 조금씩 회복해 나가고 있는 것이지요. 내가 다시 빛을 낼 수 있게 도와준 작은 불빛 ‘최진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요, 나는 양초입니다. 어둠은 애초에 저와 어울리지 않은 단어예요..
편집자 주. ‘고마운 당신’에 실린 이야기는 공단 병원을 이용한 고객의 사례를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