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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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잠든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한 삶의현장
(주)양산위생공사 배성철 씨
밤새 비가 내린 후 맞는 아침은 청량하다. 밤새 눈이 내린 다음 날 보는 세상은 순백의 아름다움으로 예찬 받는다. 그 밤사이, 우리가 잠든 사이에 누군가는 하늘의 마법보다 바쁘게 세상을 바꾸고 있다.

감히 말한다. 당신의 밤은 우리의 낮보다 아름답다.

글. 차유미 / 사진. 김근호

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2017년 2월 25일 자정을 20여 분 넘긴 시각. ‘악’ 하는 소리가 고요한 밤을 깨웠다. 생활쓰레기를 수거하던 배성철 씨(58)의 비명 소리였다. 생활쓰레기 상차 작업을 마무리하고 후면에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차량의 발판에 올라선 순간 그때까지도 작동 중이던 압착시스템에 의해 회전문이 닫히면서 배성철 씨의 발이 기계로 빨려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뭐가 씌었는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찌 대처할 방법이 없었어요. 9년 동안이나 일을 하면서 한 번도 방심한 적이 없었는데…,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죠. 나보다 옆에 있던 동료가 더 놀라서 얼굴이 하얘졌었지.”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은 2인이 1조가 되어 한 명은 운전을, 한 명을 상차 작업을 담당한다. 배성철 씨는 운전 담당이다. 쌀쌀해진 날씨에 마음이 조급해져서인지, 동료의 수고로움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 작업을 빨리 끝내려고 서둘렀던 탓인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일이 있듯 익숙함을 넘어 능숙해진 일에 방심했던 것인지… 아무리 되짚어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지만 사고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되뿌지 뭐. 허허” 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는 그는 어떤 원망도 없었다.
그 또한 지나가리라
“두 발을 못 쓰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라는 의사의 진단에 놀란 것은 외려 주변 사람들이었다. 아내는 통곡하며 눈물을 쏟아냈고, 동료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새벽에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박경수 (주)양산위생공사 대표이사는 진단을 듣고 이곳저곳을 수소문했다. 박경수 대표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눈앞이 깜깜하다고 말한다.
“어떻게든 다리만은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재해사고에 권위가 있는 의사 선생님을 찾았죠. 다리만 살려달라, 걸어 다닐 수만 있게 해달라, 의사 선생님께도 하늘님께도 매달렸어요. 당시에는.”
긴 시간의 수술이 이어졌다. 수술은 무사히 마쳤다. 양쪽 발의 상당 부분을 절단했다. 이후의 경과는 오롯이 배성철 씨에게 달려 있었다. 그 결과 앞에 누구도 다행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무겁게 그를 감쌌다. 그런 분위기를 깬 것은 배성철 씨였다.
걱정을 딛고 일어서다
배성철 씨가 병원 신세를 진 지 3주가 지났을 때쯤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 서진석 과장이 다른 고객들도 만날 겸 병원을 찾았다. 더구나 산재 접수를 받고 상황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는 배성철 씨가 걱정이 되었던 터였다. 병실에서 배성철 씨와 대면한 서진석 과장은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맞아주는 그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유쾌하게 웃으시며 저를 맞아주셨어요. 배성철 님을 뵙기 전에 담당 의사와 면담도 했는데 제가 알기로는 그 병원에 계신 분들 중에 당시 손에 꼽을 정도로 큰 재해를 당하셨거든요. 천만다행으로 두 발은 잃지 않으셨지만 다시 정상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의족을 사용해야 할지도 불분명했고요. 그래서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어떻게 말을 건넬까, 어떻게 위로할까?’ 하고. 그런데 웃으며 농담도 하시고 하니 당황했었죠.”
서진석 과장은 첫 만남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만나온 많은 사람들이 ‘왜 내게 이런 일이?’ ‘하필 나에게 이런일이 생겼을까?’ 하고 심리적인 충격에 힘들어 했다. 그 앞에서 늘 안타까웠는데 배성철 씨는 오히려 그런 서진석 과장을 위로했다.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사람도 배성철 씨 본인이었다. 3개월간의 입원치료와 2개월에 걸친 재활치료까지 5개월간의 긴투병에도 한 번도 재활운동을 거르거나 통원치료를 거른적이 없었다. 근로복지공단의 프로그램인 ‘희망찾기’ 심리상담도 열심히 받았다. 그의 노력이 하늘에 닿은 걸까? 배성철 씨는 의족 없이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의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빠른 회복을 이끌었다는 데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다.
웃으면 웃을 일이 생긴다
재활치료를 마친 배성철 씨는 서진석 과장을 다시 만났다.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서진석 과장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얘기했다. 걷는 것에 문제가 없다고는 하지만 발의 3분의 1 이상이 없는 상태였다. 운전을 하고 물건을 들어야 하는 일이다 보니 주변에서는 만류했다.
서진석 과장 역시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배성철 씨는 확고했다. 10여 년 가까이 해온 일이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노라고. 서진석 과장은 배성철 씨와 함께 그가 일했던 양산위생공사를 찾았다. 동료들 역시 반가움과 걱정이 교차했다. 누구보다 복잡했던 것은 역시 박경수 대표다. 박 대표가 걱정한 것은 무엇보다 배성철 씨의 건강이었다. 임직원들과 논의 끝에 박 대표는 결단을 내렸다. 배성철 씨가 무리 없이 일을할 수 있는지 점검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적응기를 두기로 했다.
서진석 과장과 얘기하며 방법을 찾았다. 먼저 근로복지공단 창원병원에서 작업능력평가를 받았다. 장시간 무리하지 않는다면 일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평가 결과를 들고 다시 직장을 찾아갔다.
함께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
배성철 씨의 복귀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되었다. 그는 하루에 한 시간씩, 두 시간씩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며 직무를 수행했다. 2주 동안 동료들과 일을 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결국 배성철 씨는 원직장에, 원래의 업무로 복귀에 성공했다. 배성철 씨의 강인한 의지와 박경수 대표의 결단, 동료들의 열렬한 응원 그리고 서진석 과장의 든든한 지원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배성철 씨는 직장에서 인기가 많다. 동료들은 낙천적이고 유쾌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강한 정신력과 좌절에도 굴하지 않는 그의 열정과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