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시
겨울나기
- 도종환
겨울나기
- 도종환
아침에 내린 비가 이파리 위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어는 저녁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하늘과 땅에서 얻은 것들
다 되돌려주려고
고갯마루 건넛산을 바라보는
스님의 뒷모습처럼 서서
빈 가지로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이제는 꽃 한 송이 남지 않고
수레바퀴 지나간 자국 아래
부스러진 잎사귀와 끌려간
줄기의 흔적만 희미한데
그래도, 뿌리 하나로
겨울을 나는 꽃들이 있다
비바람 뿌리고 눈서리 너무 길어
떨어진 잎 이 세상 거리엔
황망히 흩어진 뒤
뿌리까지 얼고 만 밤
씨앗 하나 살아서
겨울을 나는 것들도 있다

이 겨울 우리 몇몇만
언 손을 마주 잡고 떨고 있는 듯해도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견디고 있다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이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