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멋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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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실을 타고
패브릭얀 바구니 뜨기 원데이 클래스
손놀림과 표정에서부터 왠지 분위기 있어 보이는 뜨개질. 한편으론 고풍스러워 보이는 이 취미가 요즘 트렌드를 타고, 예전의 털실이 아닌 패브릭얀으로 수많은 생활소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게다가 손재주가 없는 사람도 시간과 노력만 투자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사용할 수 있는 멋진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끝엔 언제나 감탄만이 가득하다.

글. 강숙희 / 사진. 김재룡

뜨개질 배워서 재능기부 실천할래요
사실 여학생이라면 한번쯤 학교 교과목에서나 개인적인 취미로 해봤을 법한 것이 뜨개질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한때의 추억으로 그치고 만다. 그리고 남는 것은 뜨개질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기억뿐. 그래서 대부분 물어보면 “뜨개질은 처음”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역시 이들도 마찬가지. 게다가 실의 소재가 바뀌어 있는 걸 보니 더 낯설기만 하다. “이런 뜨개질이 있다는 건 처음 들었네요. 여성스럽지 않아서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라며 걱정이 섞인 멘트를 날리며 미소를 짓는 유현숙 대리. 물론 뜨개질이라고 꼭 여성스러운 취미는 아니지만, 그녀가 걱정하는 이유는 사실 손이 야물지 않아서다. “현주 언니는 잘할 거예요. 난 정말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현주 대리의 표정도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다. “예전에 봉사활동으로 아기 모자를 떠본 적은 있지만, 그때도 정말 어려웠는데. 흠…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 뭐!” 과연 이들에게 뜨개질은 해낼 수 있는 미션일까?
이렇게 자신 없어 하면서도 두 사람이 함께 참여하기로 한 데는 이유가 있다. 두 사람의 취미가 바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대전병원에서 근무하기 전 순천병원에서부터 돈독한 인연을 이어왔다는 두 사람은 봉사활동을 통한 재능기부를 위해 여러 가지 취미를 공유해왔다. 퇴근 후 운동도 배우고, 도자기도 빚고, 제과·제빵도 배우러 다니면서 재능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배울 뜨개질도 봉사활동에서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누가 뜨개질을 쉽다고 말했나
본격적으로 바구니를 뜨기에 앞서 마치 보물지도처럼 표시된 도안을 받아 든 두 사람. “선생님만 믿는다”며 진지한 눈빛으로 강사의 손끝을 바라본다. “코바늘은 연필 잡듯이 잡고요. 원하는 색상의 패브릭얀을 선택해주세요.” 이에 이현주 대리는 그레이를, 유현숙 대리는 핫 핑크를 선택했다. 해본 사람은 알지만 사실 뜨개질은 첫 매듭을 잡는 게 가장 어렵다. 그래서 첫 코를 얼마나 빨리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작품을 완성하는 시간도 달라진다. “패브릭얀을 4번째 손가락으로 빼서 2번째 손가락에 감으세요. 두 번 감고 한 번 감고. 그렇게 첫 단을 만들면 됩니다.” 하지만 뜨개질을 말로 배운 두 사람은 여전히 고전 중이다. 어떻게든 시작을 스스로 하게하고 싶었던 강사는 설명을 반복하고 시범을 보이며 “할 수 있다”는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결국 유현숙 대리가 첫 단의 첫 코를 뜨는 데 먼저 성공했다.
“이제부턴 쉬울 거예요. 같은 방법으로 계속 해나가면 되거든요.” 정말 그랬다. 이현주 대리가 첫 코를 묶었다 풀었다 하는 사이 벌써 유현숙 대리가 2단을 쌓아나가고 있는 중이니. “처음 하는데도 잘하는 편이에요. 이 정도면 완성품의 퀄리티가 괜찮을 것 같은데요.” 강사의 말이 두 사람에게 힘을 불어넣었는지, 이현주 대리도 어느새 뒤를 이어 작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시작이 어려웠을 뿐 역시나 최근 아기 모자 뜨기를 해본 경험 덕분인지 이현주 대리의 코바늘에 속도가 붙는다.
“그런데 실이 두꺼우니까 손이 진짜 아프네요. 잘 늘어나지도 않고. 선생님~ 이건 노동이에요!” 유현숙 대리의 넉살 좋은 한마디에 모두 한바탕 웃어가는 잠깐의 휴식도 즐겁다. 사실 패브릭얀은 천의 원단 격으로 셔츠의 질감을 떠올리면 어떤 소재로 이루어져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패브릭은 ‘천’이라는 뜻이고 얀은 ‘실’이라는 뜻인데, 보통 ‘저지’라 불리는 원단을 잘라 돌돌 만 게 바로 패브릭얀이다. 특징이 그러하다 보니, 실이라는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매우 두껍고 코바늘도 클 수밖에 없다. 이에 초보들은 어쩔 수 없이 적응의 시간을 거쳐야만 한다.
결국 이렇게 작품은 탄생한다
손은 작업을 하면서도 입으론 두런두런 수다를 떨고 엄살도 부리며 소소한 농담을 던지는 사이, 어느새 바구니는 제법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 이제 두 사람의 손놀림도 제법 안정적으로 보인다. 자세도 잡혔는지 손이나 어깨가 아프다는 몸짓도 없어졌다. 처음엔 말을 걸 때마다 실 감는 횟수를 까먹는다며 말을 아끼던 두 사람이 이젠 짙은 수다를 늘어놓고 있다. 그러다가도 궁금한 게 생기면 바로 바로 질문도 놓치지 않는다. “선생님, 이걸로 또 뭘 만들 수 있나요?” 제법 자신감이 붙었는지 이현주 대리가 강사에게 묻는다. “못 만들 게 없어요. 러그, 화분싸개, 클러치, 백, 티슈 케이스, 다용도 바구니, 모자, 식탁보 등 정말 많지요.” 그 말에 잠시 인터넷을 뒤져보더니 예쁜 작품들을 찾아내곤 “다 만들고 다시 첫 코 잡는 법부터 배워가야겠어요”라며 의욕을 보인다.
“배워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려주세요. 뜨개질이 집중력에 좋아 아이들이 해도 괜찮고요. 마음이 차분해지니까 부부가 태교로도 많이 해요. 손을 많이 쓰면 치매 예방도 되니 어르신들에게도 좋고요.” 그 말에 “남편들이 술 안 마시고 이런 것 좀 했으면 좋겠네”라며 유현숙 대리가 다시 한번 웃음을 선사한다. 그러고 보니 은근한 유머로 좌중을 웃기는 재주가 탁월하다. “현숙이는 이렇게 재밌고 붙임성이 있어서 누구하고나 두루두루 친한 편이에요.” “언니는 이렇게 말을 예쁘게 해준다니까요.” 서로에 대한 칭찬도 훈훈하다. 쾌활한 유현숙 대리와 긍정적인 이현주 대리는 그래서 성격도 처음부터 잘 맞았단다. 그러니 함께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는 일이 즐거울 수밖에.
두 사람의 작품이 어느덧 모두 완성됐다. 반신반의하더니 모두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고 만다. 역시나 따라오는 건 감탄사뿐. 이제 보니 손에 물집까지 잡혀 있다.
그래도 기분 좋다며 웃는 두 사람이다. “실을 만지고 나니까 칼국수가 먹고 싶네. 언니~ 우리 칼국수 먹고 가자!” 마지막까지 유쾌한 웃음을 전하는 유현숙 대리.
“그래. 나도 먹고 싶었는데.” 그 말에 끄덕이는 이현주 대리. 두 사람의 추억이 실을 타고 매듭 하나를 만들어낸듯하다.
Mini Interview
  • 이현주 대리
    시작할 땐 조금 걱정됐지만 그만큼 기대도 컸어요. 그런데 뜨개질을 하면서 온몸의 근육을 다 쓴것 같아요. 겉보기에는 얌전한 작업 같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라 더 애착이 생기네요. 전 작게 만들었으니 화분받침대로 사용하면 딱 맞을 것 같아요.
  • 유현숙 대리
    오늘 정말 잘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걱정이 컸어요. 하면서도 손이 너무 아팠고, 역시 배움의 길은 힘들었지요. 하지만 나만의 시그너처 작품이 탄생하니 힘들었던 순간을 싹 잊게 되네요. 이렇게 귀한 거니 아무도 주지 않고 쇼핑백으로 제가 써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