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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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몸과 마음을
맡겨보세요
근로복지공단 가족화합지원프로그램
자연은 언제나 놀랍다. 칠흑 같은 어둠이 한 줄기 빛으로 밝은 날이 될 때나 하루하루 달라지는 계절의 모습을 볼 때면 그 경이로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은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지치고 힘들고 외롭다면, 자연의 시계에 몸과 마음을 내던져보시라.

글. 차유미 / 사진. 김근호

가자! 숲으로, 자연으로
경북 예천에 있는 국립산림치유원 문필마을은 깊어가는 계절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하늘과 맞닿은 소백산 자락에 고요하게 내려앉은 마을은 재빠르게 울긋불긋 고운 옷을 갈아입고 있다. 답답한 병원을 벗어나 이곳을 찾은 산재환자와 가족들의 눈에 들어온 풍경은 그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듯했다.
이번 여행의 주인공들은 바로 장기간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산재환자와 가족들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근로자의 가족관계 갈등을 해소하고 심리안정을 지원함으로써 재활 의욕을 높이기 위하여 요양 중인 산재환자와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가족화합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국립산림치유원과 함께 ‘힐링로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산재환자와 가족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산림치유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들리실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산림치유란 숲에서 나는 향기나 경관 등 자연의 다양한 환경 요소를 활용해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고 건강을 증진하는 활동을 말합니다. 2박 3일 동안 이곳에 계시면서 자연을 느끼시고, 몸과 마음을 편하게 내버려두시기 바랍니다. 그러고 나면 돌아가실 때 많은 변화가 있을 거예요.”
인솔을 맡은 김미선 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너무 좋아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짧게는 10개월에서 길게는 8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병원을 떠나 여행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한 산재환자들에게 꿈같은 외출이었다. 신선한 공기를 느끼며, 알싸한 꽃향기에 취해 걷는 걸음은 통증도 잊게 했다.
일상에 지친 삶, 숲에 털어놓아요
산책을 마치고 수치유센터로 이동했다. 따뜻한 바데풀에 지친 몸을 담그고, 뭉친 근육과 긴장을 풀기 위해서다. 다친 후로는 대중목욕탕에도 한 번 가보지 않았다는 이들에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수중에서 운동은 몸에 저항을 줄여줘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게 한나절을 같이 보내고 나니 참가자들은 어느덧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김미경 씨는 7년 전 후진해오던 차량에 깔리는 사고를 당한 후 오른쪽 다리를 잃을 뻔했다.
다리가 깔리면서 뼈가 으스러진 것이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사도 포기할 정도였다. 무릎 아래를 절단하자는 의사의 권유에 “다시 걸을 수 있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10번의 수술을 반복하며 지금까지 입원 중이다.
같은 병실에서 인연이 된 염가영 씨는 올해 초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다 빙판에 미끄러져 그만 다리가 부러졌다. “사고가 1월 8일에 났어요. 다행히 올해 1월 1일부터 출근길 사고도 보장이 되어 산재로 인정받았죠” 하며 웃어 보였다. 지금은 수술을 마치고 재활 프로그램에 치중하고 있다. 아내와 함께 온 이선식 씨는 한 주 후면 손가락에 박힌 핀을 뽑는 수술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병시중을 드느라 고생하는 아내를 조금이나마 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나하나 풀어놓은 사연 속에서 서로를 향한 격려와 응원이,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가 담겨 있었다. 누군가 ‘힘내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라고 외치는 듯 그렇게 숲속에는 별빛이 내려앉았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게, 내려놓기
숲속에서의 둘째 날, 자연은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드나 보다. 일과표에도 없고, 누구 하나 시킨 사람도 없지만, 참가자들은 아침 일찍 숲을 찾았다. 다리가 불편한 이를 부축하지는 않았지만, 천천히 발걸음의 보조를 맞춘다. 같은 아픔을 아는 이들이라 그런지 어느덧 “형님, 아우”가 되었다. 이어 소도구를 활용한 스트레칭 시간을 가졌다. ‘아이구’ 하는 신음소리도 틈틈이 들렸지만,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운동은 훨씬 재미있다.
“피톤치드, 음이온, 깨끗하고 풍부한 산소와 맑은 공기와 같은 것은 숲의 치유인자들입니다. 이런 치유인자를 활용하여 스트레스 해소와 심신 안정을 위해 적절한 운동과 생활 습관 개선 방안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일상생활로 돌아가서도 건강하게 지내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는 트레이너를 따라 몸을 깨우니 마음마저 상쾌해졌다.
다음으로는 집단상담 시간이 이어졌다. 집단상담은 관계를 돌아보고,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처음 ‘상담’이라는 프로그램명을 보고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놀이와 대화를 통해 가족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됐다. 이선식 씨는 “평소 몰랐던 아내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어서 그게 제일 좋았어요. 몸이 아프거나, 처지가 서글프면 마음은 아닌데 짜증을 많이 냈던 거 같아요.
그럴 때 아내도 상처를 받는다는 걸 몰라줘서 미안했어요”라며 아내를 위로했다. “어렵고 힘들 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가족이에요. 하지만 가족 중 누군가가 사고를 당하면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산재환자들은 긴 시간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는 동안 가족관계도 힘들어질 수 있어요. 그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대화하는 방법을 배웠으니까 앞으로는 이야기 많이 하시는 거예요”라며 상담 선생님과 일일이 손가락 걸고 약속하며 시간을 마무리했다.
이제 자신과 화해하는 시간
숲 트레킹, 명상, 요가, 수치료, 다도체험과 테라피움 등의 프로그램을 하는 동안 2박 3일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TV도 없고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는다.
‘이 깊은 산속에서 무엇을 하나?’ 하는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마음이 꽉 차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내내 ‘와우! 와우~’ 하며 감탄하던 김미경 씨는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어요. 처음에는 병원 밖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설레는데 막상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 맑은 공기와 곱디고운 단풍 때문에 숨이 막힐 정도였어요. 몸이 다 낳은 것 같아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가족으로 참여한 권문순 씨는 “집에 환자가 있으면 무조건 잘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참고 견디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런 얘기를 남편과 할 수 있게 돼서 좋았어요.
남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장기간의 치료와 재활로 지친 산재환자와 가족에게 숲은 ‘휴양의 공간’이자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치유의 공간’이 됐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시간은 다시 시작되는 일상을 견뎌낼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