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년 골목에 향수(鄕愁)가 내려앉다
대구 나들이 - 역사가 있는 여행
대구 나들이는 향수가 서려 정겹다. 빛바랜 건물과 옛 골목에는 따스한 온기가 전해진다. 근대 골목의 소박한 상념은
외곽 벽화 마을과 나루터, 장터까지 이어지며 시간 이동을 부추긴다. 근대 골목 계산오거리 길목에는 계산성당,
이상화 고택 등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이방인을 반긴다. 계산성당은 근대 골목의 상징과 같은 건축물이다.
서울, 평양에 이어 세 번째로 세워진 서양식 건물은 영남 최초의 고딕 양식 성당이다. 애초 한식 기와집으로 세워졌던 성당은 1902년 현재 모습으로 재건됐으며 야간조명이 설치돼 밤이면 운치를 더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의 한옥 고택도 골목 한편을 채운다.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마당 깊은 집은 소녀들의 단골 촬영 포인트로 살굿빛 웃음이 쏟아져 나온다.
근대사를 간직한 추억의 건물들
계산성당 맞은편, 청라언덕은 가곡 ‘동무 생각’의 배경이된 공간이다. 1900년대 초 대구에 정착했던 선교사들의 가옥이 차곡차곡 남아 있다. 나이 지긋한 분들에게는 어릴 적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 꼭 한번 방문하고픈 곳 1순위가 이곳 청라언덕이다. 복원된 옛 주택은 선교, 의료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곳 정원에서 맞는 가을은 커피향처럼 은은하고 향기롭다. 언덕 한편에는 시인 이은상 선생이 노랫말을 쓴 ‘동무 생각 노래비’가 세워져 있고, 노래비 옆에서 내려가는 3.1만세운동길은 정겨운 계단길로 연결된다. 400년 세월의 대구약령시 거리는 근대 골목과 축을 같이한다. 약령시 거리의 제일교회는 대구 근대건축사의 귀중한 자료로 제중원을 세워 의료활동을 전개한 곳이다. 제일교회는 앞마당이 물드는 가을이 한결 매혹적이다. 일상의 삶이 짙게 배어나는 근대 골목을 엿보려면 진골목으로 발길을 옮긴다. 진골목은 100여 년 전 대구 도심의 골목이 생생하게 남은 곳이다. 도심 속 사라져가는 옛 골목을 반추해보면 진골목이 보존된 것은 반갑고도 고맙다.
진골목의 옛 맛집들은 투박한 모습으로 영업 중이며 대구 최초 2층 양옥인 정소아과의원, 미도다방 등도 시선을 붙든다. 미도다방은 아직도 추억의 메뉴와 오래된 가구 향 그대로 백발의 손님들을 반긴다.
진골목의 옛 맛집들은 투박한 모습으로 영업 중이며 대구 최초 2층 양옥인 정소아과의원, 미도다방 등도 시선을 붙든다. 미도다방은 아직도 추억의 메뉴와 오래된 가구 향 그대로 백발의 손님들을 반긴다.
지난한 삶과 은율이 흐르는 골목
최근 걷기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은 근대 골목은 발길의 진폭을 넓히는 중이다. 국채보상로의 구암서원, 청라언덕 너머 서문시장 등도 대구의 과거와 세월을 더듬는 여행자들의 목적지다. 구암서원은 달성 서씨의 문중서원으로 도심 속 전통 체험과 하룻밤 숙박이 가능하며, 서문시장은 야시장이 개장한 이후 젊은층의 사랑을 받고 있다. 대구의 향수는 자리를 옮겨 김광석길에서 무르익는다. ‘청춘’이라면 꼭 한번 방문하는 명소가 된 곳이 김광석길이다. 해 질 무렵, 골목에 들어서면 그가 생전에 불렀던 노래들이 아련하게 흘러나온다. 노래하는 음유시인이었던 김광석은 대구 대봉동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신천 인근에 김광석의 목소리와 미소를 빌려 길이 조성됐다. 거리 입구에 기타를 들고 웃고 있는 동상이 자리해 있고, 대형 초상과 조형물 등 70여 점의 애틋한 볼거리가 골목을 채운다. 김광석길의 여운은 방천시장으로 이어진다. 옛시장의 따사로운 풍경에 최근에는 문화, 예술의 향취가 덧씌워졌다. 곳곳에 들어선 공방에서 예술 체험이 가능하며 풍류가 흐르는 빈대떡집 등을 기웃거리며 막걸리 한잔 걸쳐도 좋다.
천년 사찰 동화사에서의 하룻밤
대구는 화려한 도심의 공간만은 아니다.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낸 뒷모습이 숨은 매력이다. 절집이 빼어난 팔공산을 오르거나, 시골 풍광에 그림이 더해진 벽화마을에서 보내는 시간은 자연과 동화되는 소중한 추억들이다. 팔공산은 달구벌의 북쪽을 넉넉히 감싸 안은 어머니의 산이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 전투를 벌인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파계사, 동화사, 부인사 등 천년사찰을 깊숙이 품은 팔공산에서 대구와 맞닿은 으뜸 절집이 동화사다. 신라 소지왕 때 극달화상이 창건한 고찰은 1500년 세월을 넘어섰다. 마애여래좌상을 비롯해 보물이 13점이나 된다. 중건 당시 사찰 주변에 오동나무 꽃이 만발해 ‘오동나무 동(桐)’을 써서 동화사라 불렸으며, 대웅전 등 사찰 곳곳에는 봉황과 관련된 흔적이 남아 있어 신비감을 더한다. 대웅전에서 템플스테이 터로 넘어가는 숲길은 동화사 스님들이 추천하는 사색의 공간이다. 소문을 듣고 찾아든 외국인들이 일부러 머물고 산책에 나서는 오솔길이기도 하다. 길 끝자락, 사찰 음식 전수관에서는 단아한 맛의 절집 음식을 내놓는다.
피아노를 처음 들여온 나루터
대구 외곽, 달성으로 접어들면 시간여행은 속도를 낸다. 담장 낮은 옛집과 나루터, 장터에서 추억의 향취는 강렬하다. 마비정 벽화마을은 마을 길을 따라 토담과 벽 등에 1960~70년대의 정다운 농촌 풍경이 그려져 있는 곳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던 시원한 등목이나 장날 뻥튀기 풍경 등이 골목마다 펼쳐진다.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는 동안 옛 향수에 코끝이 찡해진다. 마을 안에는 연리목과 물레방아, 거북바위 등 볼거리도 많다. 달서구와 가까운 사문진은 과거 낙동강 하류의 물류를 대구 일대에 공급하던 주요 나루터였다. 1900년 미국 선교사 사이드 보탐에 의해 당시 ‘귀신통’이라고 불린 한국 최초의 피아노가 유입된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한국 최초의 피아노 유입지임을 기려 피아노 축제가 매년 나루터에서 열린다.
달성에서는 현풍장터 구경을 놓칠 수 없다. 매 끝자리 5, 10일에 들어서는 현풍장은 현풍천까지 좌판이 벌어질 정도로 규모가 제법 크다. 장터 골목에 들어서면 수십 년 세월의 국밥집, 곰탕집들이 늘어서 있고, 뻥튀기 장수가 목소리를 높인다. 현풍장터는 그 유래가 19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장이 섰으니 100년 세월을 간직한 셈이다. 우시장으로도 북적거리던 장터는 쇠락의 길을 걷다 도깨비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재단장됐으며, 찬바람 불면 추억의 수구레국밥으로 달구벌 여행의 온기를 더한다.
달성에서는 현풍장터 구경을 놓칠 수 없다. 매 끝자리 5, 10일에 들어서는 현풍장은 현풍천까지 좌판이 벌어질 정도로 규모가 제법 크다. 장터 골목에 들어서면 수십 년 세월의 국밥집, 곰탕집들이 늘어서 있고, 뻥튀기 장수가 목소리를 높인다. 현풍장터는 그 유래가 19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장이 섰으니 100년 세월을 간직한 셈이다. 우시장으로도 북적거리던 장터는 쇠락의 길을 걷다 도깨비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재단장됐으며, 찬바람 불면 추억의 수구레국밥으로 달구벌 여행의 온기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