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업무를 반복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조명숙 씨도 고등학교에서 오랜 기간 급식조리사로 일하며 추간판 탈출증,
흔히 말하는 허리디스크라는 질병을 얻었다.
수술한 후에는 다시 복직할 수 없을 거라고 절망했지만,
안산병원 김은경 진료과장을 만나며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글 김주희 사진 한상훈
가을이 다가오던 어느 날, 한 카페에서 김은경 진료과장과 조명숙 씨가 만났다. 재활이 끝난 후 오랜만에 만났다는 두 사람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해 보였다.
“얼마 전 문득 조명숙 씨가 생각나서 전화를 드렸었어요. 잘 지내시는지 궁금했거든요. 그때도 참 반갑게 맞아주셨는데, 오랜만에 만나니 더 반갑고 좋아요. 무엇보다 컨디션도 좋아 보이고 오늘 정말 예쁘게 하고 오셨어요.”
전화통화로 안부를 물었지만 실제로 어떻게 지내는지, 정말 건강히 지내는지 궁금했다는 김은경 과장은 조명숙 씨의 밝은 모습을 보고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 보였다. 조명숙 씨도 반가움을 표현하며 자리에 앉자마자 김은경 과장을 ‘은인’이라 소개한다.
“2018년 11월에 추간판 탈출증으로 수술하고 산재신청을 하면서 김은경 과장님을 만났어요. 상담을 하면서 수술 후에도 통증이 심하다고 하니 산재승인 전 치료를 권유해주셨지요. 당시엔 미래가 너무 막막했었어요. 왼쪽 신경에 마비까지 와서 휠체어를 탔었거든요.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이 컸어요. 김은경 과장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밝게 생활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조명숙 씨는 고등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사로 일하며 무거운 식재료를 들어 옮기는 일이 잦았다. 또한 조리와 배식을 하면서 대부분 서있거나 쪼그려 앉다보니 허리에 무리가 갈 때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음식을 온장고에 넣고 지하 급식실로 이동하다가 순간 허리를 삐끗했다. 극심한 통증이 밀려들었지만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통증이 심해졌다가 가라앉았다가를 반복하면서 참기를 1년, 4번의 시술까지 했지만 결국 수술에 이르게 됐다.
“추간판 탈출증은 수술했다고 완치되는 게 아니라 꾸준한 재활이 필요한 질병이에요. 예를 들어 야구선수가 연습 중에 어깨를 다쳐서 수술을 한다 해도 바로 시합에 나갈 수 없는 것처럼요. 원래의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재활이 필요하지요. 조명숙 씨 역시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원직장에 복귀하기 위해선 재활이 필수였습니다.”
그렇게 조명숙 씨는 안산병원으로 전원하여 집중재활치료를 시작했다. 집중재활치료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능력을 발달시켜 최상의 회복 및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안산병원에서는 의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재활간호사 등으로 구성된 팀평가 회의를 통해 재활계획을 수립하고 물리치료, 작업치료, 심리재활치료 등을 제공하고 있다.
“근골격계 질병은 수술 후 6개월 동안 물리치료사가 1:1로 재활을 도와줍니다. 조명숙 씨도 본인의 상태에 맞게 재활을 받았고, 증상이 어느 정도 회복한 다음엔 스포츠재활을 받으셨어요.”
수술 후 요양기간 동안에는 움직임이 부족해 근육이 줄어들면서 신체가 더욱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조명숙 씨는 꾸준한 재활 및 운동을 통해 전신 근력 강화, 코어근육 강화, 작업자세 교정 등을 받을 수 있었다.
“허리수술을 하니 일상생활도 힘들 정도라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어요. 그런데 운동을 계속 하다 보니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건강을 빨리 회복하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저를 위해 노력해 주시는 김은경 과장님을 비롯한 의료진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더 열심히 했어요. 저를 위해서 세심하게 지 원을 해주시니 정말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렇게 집중재활을 진행하면서 조명숙 씨는 점차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직장 복귀였다. 하지만 질병은 업무 자체가 원인이기 때문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직장 복귀를 하더라도 이전처럼 자신의 몫의 업무를 해낼 수 있을지,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닐지 걱정이 컸다.
“재활의학 선생님도 조명숙 씨가 직장 복귀를 안 하시려는 것 같다고, 어렵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동료들과의 관계를 특히 걱정하셨어요. 한 명이 두 명 이상의 몫을 해내야 하는 업무환경이었거든요. 그래서 병원의 직장복귀팀과 함께 조명숙 씨가 일하시던 학교에 방문해 업무 환경 개선과 동료화합프로그램 등을 진행했어요. 조명숙 씨가 직장에 복귀하실 수 있도록 심리적 기반을 마련해 드렸던 거지요.”
평소 동료들과의 사이가 좋았지만 힘든 업무 환경상 조명숙 씨를 계속 배려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조명숙 씨는 가장 먼저 직장적응훈련을 통해 작업능력을 강화했다. 한편으로는 김은경 과장이 마련한 동료화합프로그램을 통해 동료들과 다과를 먹으며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직장 복귀 전 일주일에 1~2번 학교를 방문하며 동료들과의 서먹함을 점차 개선해 나갔다.
“조명숙 씨의 직장 복귀를 위해 학교에 여러 차례 방문했어요. 다행히 학교 영양사 선생님이 협조적이고 좋은 분이셨지요. 그래서 제안을 드리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주셨어요. 당시 교직원 식당은 1층, 학생식당은 지하 1층이라 조리사 분들이 2곳에 음식을 준비 해야 해서 부담이 컸거든요. 그런 부분을 말씀드리니 학교에 건의를 해서 지하 1층으로 교직원 식당을 옮겨주셨어요.”
이와 함께 동료 조리사를 대상으로 스트레칭 교육을 실시했다. 조명숙 씨가 업무를 하면서 질병이 발생했듯 동료 조리사들도 같은 업무 환경에서 일하기 때문에 언제든 유사한 질병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은경 과장님 덕분에 직장 복귀에 성공할 수 있었어요. 지금도 동료들과 함께 김은경 과장님이 알려주셨던 스트레칭을 함께 하고 있어요. 또 휴식시간에는 음악을 틀어놓고 함께 춤을 추기도 해요. 업무를 하느라 굳어있던 몸을 풀어주는 거지요. 그렇게 몸을 움직이니까 기분도 좋아지고 서로 농담도 하면서 즐겁게 지낼 수 있어요.”
현재 조명숙 씨는 수술 전과 같이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업무를 할 때는 신체에 무리가 가지 않는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전에는 급한 마음에 팔 힘만으로 식재료를 옮기려고 했다면 이제는 전신의 힘을 골고루 사용하며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퇴근 후에는 요가와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고 있다. 덕분에 살도 많이 빠지고 코어근육이 강화되면서 허리통증은 거의 사라진 상태다.
“조명숙 씨에게 강력하게 직장 복귀를 하셔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조명숙 씨가 예상보다 훨씬 잘 해내고 계셔서 마음이 놓입니다. 저희가 지원해드리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조명숙 씨는 건강을 회복하고 직장 복귀까지 성공했지만 재발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또한 김은경 과장 입장에서는 조명숙 씨는 물론 동료 조리사들의 질병 예방도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산재노동자 한 명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의료진이 협업하며 1:1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소모적일 수 있지요. 그래서 공단에서는 많은 의료 인력들을 지원할 때 다른 노동자 분들의 산재 예방적인 차원을 고려합니다. 동료 노동자들도 똑같은 사고와 질병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지요.”
직장에 산재노동자가 발생하면 동료들은 업무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고, 산재노동자의 직장 복귀를 위한 공단의 방문이나 지원이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크게 보면 모든 노동자의 산재 예방차원이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
“
산재노동자 한 명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의료진이 협업하며 1:1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공단에서는 많은 의료 인력들을 지원할 때 다른 노동자 분들의 산재 예방적인 차원을 고려합니다.
동료 노동자들도 똑같은 사고와 질병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지요
”
“저도 처음엔 동료들의 눈치가 보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동료들이 운동방법을 많이 물어봐요. 산재에 대한 궁금증은 이미 공단에서 해결해 주셨고요. 덕분에 동료들과 대화할 주제가 넓어졌고 저도 작게나마 도움을 주는 부분이 있다는 게 기쁩니다. 모두 김은경 과장님 덕분입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했던 시간들이 떠오르는 듯 눈시울이 붉어지는 조명숙 씨의 손을 김은경 과장이 꼭 잡아준다. 환자와 의사로 만났지만 치료와 직장복귀라는 목표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명숙 씨가 잘 회복하고 직장에 복귀하셔서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사해요.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이러한 일들은 누구 한 사람의 힘으로 되는 건 아니에요. 산재노동자가 발생했을 때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 여러 의료진이 함께 지원합니다. 앞으로 좋은 팀워크로 산재노동자 분들에게 도움이 되어 조명숙 씨와 같은 좋은 사례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