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함께
때론 친구처럼, 때론 가족처럼 산재의 고통을 이겨내다
- 전광호 멘토와 김동원 멘티
어떤 일이든 직접 겪지 않고서는 100% 이해하기란 어렵다. 힘들고 아픈 일들은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산재노동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마음을 여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멘토링프로그램이다.
산재를 입고 이를 극복한 멘토와 아직은 도움이 필요한 멘티가 만나
누구에게도 쉽게 전할 수 없는 가슴 속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고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다.
전신화상을 입고 큰 고통을 겪었지만 다시 힘을 내어 긍정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전광호 씨와
교통사고로 경추가 골절되는 큰 사고를 입은 김동원 씨도 멘토링프로그램을 통해 만났다.

sub_writer_deco김주희사진 최성훈

 

기분 좋은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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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 전광호 씨와 멘티 김동원 씨를 만난 건 전광호 씨의 집이었다. 보통 인터뷰는 사무실이나 카페 같은 장소에서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전광호 씨의 제안으로 집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아직 병원에 다니며 재활 중인 김동원 씨가 조금 더 편안한 장소에서 있길 바란 전광호 씨의 배려가 있었다.
“저희도 멘토링프로그램이 끝난 후 오랜만에 만났어요. 김동원 씨가 아직 통원을 하며 재활 중이거든요. 어디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까 고민했는데 아직 몸이 불편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있는 데서 편하게 말하기도 어려울 듯해서 집으로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전광호 씨의 밝게 웃는 모습에서 편안함이 느껴졌다. 김동원 씨 역시 어색함이 없어 보였다. 멘토링프로그램을 진행할 당시에는 항상 밖에서 만났지만 워낙 서로에 대한 신뢰와 친밀함이 있기 때문인지 다소 낯설 수 있는 집이라는 개인적인 공간도 편안함으로 가득 찼다. 친밀해 보이는 두 사람이 만난 건 사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지난 2018년 12월, 요식업을 하던 김동원 씨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큰 수술을 한 후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멘토와 멘티로 만난 것. 2014년부터 멘토링프로그램의 멘토로 활동한 전광호 씨는 조심스럽게 김동원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는 공단에 멘토링프로그램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함께했어요. 그동안 만난 멘티 분들이 수백 명이지요. 그래도 항상 멘티 분께 처음 연락할 때는 긴장이 돼요. 그런데 김동원 씨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긴장이 풀렸어요. 반가운 목소리로 흔쾌히 한 번 오시라고 하더라고요. 보통 멘티 분들은 산재를 입으신 지 그리 오래 되지 않고 병원에 계신 경우도 많아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거든요. 김동원 씨와는 시작이 아주 좋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당시 김동원 씨는 수술을 마치고 재활에 관심이 많은 상황이었다. 상병이 13가지나 될 정도로 큰 사고였기에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할지, 다시 일은 할 수 있을지 막막한 상황이었다.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마땅히 물어볼 곳에 없었다. 공단에 연락해서 문의하는 것도 괜히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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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 직원 분이 멘토링프로그램을 안내하시면서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넌지시 물어보시더라고요. 내용을 들어보니 하나도 나쁠 게 없었어요. 흔쾌히 하겠다고 말씀드렸지요. 전광호 씨를 만나고 그동안 막혀 있던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어요.”

멘토링프로그램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얻었어요.

산재 이전에는 우리나라 복지가 이렇게 잘 되어 있는지 몰랐거든요.
그런데 ‘이런 것도 있구나’라면서 놀랄 정도로 지원이 잘 되고,
또 멘토링이라는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 좋은 인연도 만들게 되었으니
감사한 마음밖에 없습니다.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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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호 씨와 김동원 씨는 첫 만남부터 공통점이 많았다. 나이가 같았고 가장이라는 책임감도 투철했다. 산재에는 경중이 없지만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큰 산재를 겪었다는 것도 비슷했다. 전광호씨는 2009년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취업을 해 다른 사업장에서 일을 하다가 가스누출 사고로 얼굴을 비롯해 전신 화상을 입었다. 특히 다리 부위는 정강이뼈가 탈 정도로 화상이 심해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었다.
“열심히 살아보고자 시작한 일이었는데 사고를 입으니 절망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 통증이 상당했어요. 화상 부위를 드레싱할 때 정말 여기가 지옥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화상병원에 2년 동안 입원하면서 치료를 받는 동안 정말 힘들었어요. 화상을 입은 제 얼굴을 처음 봤을 땐 무너져 내리기도 했지요. 하지만 곁을 지켜주는 가족들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정말 많이 고생을 했어요. 지금도 아내를 떠올리면 너무 고맙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파요.”
전광호 씨가 병원에 입원한 동안 천주교 서울대 교부에서 병실에 찾아와 산재노동자를 대상으로 봉사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무슨 봉사를 하는 걸까 궁금증을 갖고 있던 전광호 씨는 차츰 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병원을 퇴원하고 요양기간이 지난 후 그도 봉사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하게 됐다.
“천주교 서울대교부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근로복지공단과 연계가 되었어요. 산재노동자에게도 필요한 일이었거든요. 그래서 2014년에 공단에 멘토링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저도 멘토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멘티들을 만났고 지금도 연락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번 인터뷰를 어떤 멘티 분과 해야 할까 수첩을 보는데 김동원 씨가 떠올랐죠. 이분이라면 흔쾌히 수락해 주시지 않을까, 또 다른 산재노동자 분들에게 충분히 희망을 줄 수 있는 분이 아닐까 싶었지요.”
말수가 많지 않은 김동원 씨도 오랜만에 전광호 씨의 연락을 받아 인터뷰의 취지를 들은 후 흔쾌히 수락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가장 힘들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진심을 다해 다가와 줬던 것이 아직까지도 마음에 감사함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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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도 사회생활을 하지만 그래도 제가 가장이라는 생각이 강해요. 빨리 재활에 성공해서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생각처럼 빠른 회복이 되지 않을 때는 속상하기도 했지요. 그럴 때마다 전광호 씨가 정말 진심을 다해 조언을 해줬어요. 나이도 같고 가정환경도 비슷해서 더 마음에 와 닿았었던 것 같아요. 제가 궁금해 하는 건 직접 공단에 문의해서 알려주기도 하고요.”
김동원 씨는 전광호 씨가 주고 간 산재 관련 안내 책자를 보며 하나하나 궁금증을 풀어나갔다. 자신보다 더 극한 상황에 놓여있던 전광호 씨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밝게 지내는 모습에 힘이 되기도 했다. 6번 진행되는 멘토링프로그램 동안 두 사람은 밖에서 만나 함께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는 등 친구처럼 지냈다.
“저도 그렇지만 김동원 씨도 가족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가족들이 누구보다 나를 지지해주고 이해해주는 건 알지만, 그렇기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하지 못하는 말들이 있거든요. 하지만 우리 둘은 숨길 게 없었지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 경제적인 걱정 등 가족에게도 쉽지 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나누면서 최선책을 찾아갔지요.”
서로의 삶을
응원하다
현재 김동원 씨는 통원하며 치료와 재활을 병행하고 있다. 다시 일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어디까지 회복이 될 지 모르는 상황이라 우선 재활에 전념하고 있는 것. 전광호 씨는 7년차 멘토로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산재노동자를 위해 시간을 내고 있다. 산재를 입기 전에는 알지도, 만날 일도 없던 두 사람이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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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 씨를 보면 가장의 무게를 조금 내려놓으셨으면 하는 생각을 해요. 저도 가장이지만 마음가짐을 편하게 하고 몸 상태에 대해 너무 큰 욕심을 안 부리고 생활하면 좋겠어요. 욕심이라는 게 다른 뜻이 아니라 사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큼 되지 않았을 때 너무 마음이 힘들거든요. 어느 정도 지금의 상태를 받아들이면서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동원 씨도 전광호 씨의 말에 동의한다. 자신도 재활에 대한 욕심이 있지만 이제 조금씩 받아들이는 방법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저에게 허락된 만큼만 욕심 안 내고 하려고 해요. 물론 쉽지 않겠지만요.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편하게 먹은 데에는 전광호 씨의 도움이 큽니다.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얻었어요. 산재 이전에는 우리나라 복지가 이렇게 잘 되어 있는지 몰랐거든요. 그런데 ‘이런 것도 있구나’라면서 놀랄 정도로 지원이 잘 되고, 또 멘토링이라는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 좋은 인연도 만들게 되었으니 감사한 마음밖에 없습니다. 다른 산재노동자 분들도 멘토링프로그램에 많이 참여하셨으면 합니다.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좋은 인연에 감사하고, 아직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산재노동자들에 대한 걱정과 조언을 하는 두 사람에게서 ‘따뜻함’과 ‘진심’이 느껴졌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힘을 내길, 그리고 때로는 힘을 빼고 조금 쉬어가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길 바래본다.

가족들이 누구보다 나를 지지해주고 이해해주는 건 알지만,
그렇기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하지 못하는 말들이 있거든요.

하지만 우리 둘은 숨길 게 없었지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 경제적인 걱정 등 가족에게도
쉽지 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나누면서 최선책을 찾아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