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함께
함께 이루어가는 희망, 사고 이후의 삶을 만들다
- 근로복지공단 원주지사 송은희 과장과 산재노동자 정순자 씨
사람의 인생을 상상해본 적 없는 길로 떠밀어내는 사고를 맞닥트리는 경우가 있다.
그 사고의 후유증이 유독 아프게 다가올 수도 있고,
일상의 무거움에 그 사고의 무게까지 얹어서 다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정순자 씨가 감자연구소에서 일하다가 당한 사고도 그렇다.
흉추 골절 사고를 당한 뒤 재활을 거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평소 생각해본 적 없는 직종이었지만, 자신이 아팠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떠올리며 사회복귀를 이어나가고 있다.

sub_writer_deco김주희·김희정사진 전예영

 

잠깐의 실수가
큰 사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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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자 씨의 척추 골절에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이웃의 제안으로 지역 내 감자연구소에서 청소와 감자 수확 등 소소한 업무를 하던 중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입었다. 평소 높은 곳에 위치한 선반을 청소하는 일은 젊은이들이 했는데, 그날따라 빨리 청소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직접 올라간 것.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걸레로 선반을 닦고 내려오던 중 손이 미끄러지며 그대로 추락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래에 있던 지게차 위로 떨어지며 흉추에 충격을 받았다. 머리가 찢어지는 부상도 함께 당했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충격에 혼미한 정신을 부여잡고 급히 병원으로 간 정순자 씨는 먼저 머리 부위부터 치료를 시작했다. 머리에서 피가 많이 흐르면서 본인은 물론 의료진들의 시선이 머리 부위 상처에 집중된 것. 그렇게 치료를 받는 동안 흉추의 통증은 미처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다.
“머리 부위의 치료를 받고 병원 의자에 앉아있는데 그제야 등이 너무 아팠어요. 급히 달려온 남편한테 차라리 등을 강하게 두드려달라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엑스레이를 찍고 보니 흉추 골절이더라고요. 의자에 앉아 있으면 안 된다고 얼른 침대에 누우라고 해서 한 동안 병원 침대에 누워서 생활해야 했어요.”
흉추의 통증이 심했지만 병원에서는 특별히 해줄 수 있는 치료가 없다고 했다. 누워서 생활하면서 흉추 사이가 붙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했다. 정순자 씨는 그렇게 퇴원할 수 밖에 없었고, 다른 병원을 찾아갔지만 똑같은 말을 들었다. 의료진의 태도가 냉담하게 느껴진 정순자 씨는 더 이상 치료를 안 받겠다고 종결 의사를 비쳤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찾아간 근로복지공단 동해병원에서야 정순자 씨가 원하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동해병원에 가니까 간호사들이 걱정을 하면서 더 치료를 받았어야 한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고 재활을 했어야 하는데 제가 요양종결을 하다 보니 더 받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어요. 그래도 동해병원 간호사들이 저를 걱정해주고 챙겨주니까 그것만으로도 고맙더라고요. 다른 병원에서는 관리를 받는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렇게 치료는 중단했지만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친 부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생활하면서 조금씩 회복이 되어갔다. 그리고 정순자 씨는 근로복지공단 원주지사의 송은희 과장을 만나게 됐다.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나이를 벗어나
공부의 재미를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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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정순자 씨는 지난해 송은희 과장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송은희 과장이 강릉 지역 산재노동자를 대상으로 취업지원을 해주는 일을 하면서 정순자 씨에게도 전화를 한 것. 당시 정순자 씨는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고, 1952년생으로 나이도 많아 재취업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송은희 과장의 생각은 달랐다.
“정순자 씨에게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추천 드렸어요. 원래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싶어 하셨는데 안타깝게도 강릉에는 학원이 없었어요. 요양보호사는 업무강도가 높아서 잘 하실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했지만, 정순자 씨와 몇 번 이야기를 나누니 충분히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화를 할 때는 자신 없다고 얘기를 하셨지만 제가 요청드리는 서류들을 잘 준비해서 보내주셨어요. 이분이라면 새로운 분야의 공부도 충분히 잘 하시겠구나 확신이 들었지요.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려는 의지도 보였고요.”
그렇게 정순자 씨는 지난해 3월에 교육을 시작했다. 물론 70세가 가까운 나이에 다시 공부를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책을 읽고 돌아서면 금세 잊어버리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다. 요양보호사를 준비하는 다른 수강생들은 대부분 정순자 씨보다 나이가 어렸고, 이들과 경쟁하는 게 막막하기만 했다.
“힘들 때마다 송은희 과장님과 통화를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어요. 워낙 따뜻하게 말씀을 해주시니 제가 더 투정을 부렸던 것 같아요.”
송은희 과장의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정순자 씨에게 큰 위로가 됐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송은희 과장을 생각해서라도 더 힘을 내어 공부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7월에 열리는 시험에 강원도에서만 1,200명이 응시한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이미 자신감을 잃었었죠.
우울한 마음이 컸는데 그때 송은희 과장님께서 절 만나려고 강릉에 오신 거예요.
얼른 달려 나갔죠. 정말 너무 고마웠어요.

시험 합격,
요양보호사로서 새롭게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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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요양보호사 자격증 학원을 다니다 보니 어느새 시험일이 다가왔다. 어느 정도 공부를 하는 게 익숙해졌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시험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시험만 아니라면 공부가 참 재미있었는데, 7월에 열리는 시험에 강원도에서만 1,200명이 응시한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이미 자신감을 잃었었죠. 게다가 시험을 치르니 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아무래도 떨어질 것 같았어요. 우울한 마음이 컸는데 그때 송은희 과장님이 일부러 절 만나려고 강릉에 오신 거예요. 얼른 달려 나갔죠. 정말 너무 고마웠어요.”
송은희 과장이 강릉까지 간 이유는 낙담한 듯한 정순자 씨가 걱정되어서였다. 평생 자녀들을 키우고 살림을 하던 정순자 씨가 소일거리를 하다가 큰 사고를 입은 상황에서 힘들게 준비한 시험 결과로 인해 우울해하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 때문에 못한다고 하실 때 정순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죠.
그러면 다른 분들도 용기를 내서 취업 준비를 하시곤 해요.
그만큼 제게도 정순자 선생님은 특별한 케이스로 마음에 남아있어요.
앞으로도 충분히 잘해내실 거라고 생각하고, 항상 응원하고 있어요.

“아직 시험 결과도 안 나온 상태였지만 거의 낙담을 하고 계셨어요. 절 만나려고 잠깐 외출하시는 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만나서 꼭 붙을 거라는 희망도 드리고 자격증 취득 후 일자리 연계 등에 대한 설명도 해드렸어요. 전 정순자 씨가 꼭 합격하셨을 거란 확신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정순자 씨는 높은 성적으로 요양보호사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보상 받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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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송은희 과장님이 생각났어요. 다친 후 너무 힘들었는데 송은희 과장님한테 많은 위로를 받았거든요. 시험 떨어졌을 것 같다고 했을 때도 붙었을 거라고 응원도 해주셨고요.”
시험에 합격하고 요양보호사로서 일을 시작하면서 정순자 씨가 느낀 것은 요양보호사가 봉사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현재 정순자 씨는 노부부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 세 시간 동안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플라스틱 통도 힘이 없어서 열지를 못하실 정도니 여러모로 돌봐드려야 할 부분이 많죠. 목욕도 시켜드리고요. 정정하실 때는 텃밭 관리나 물고기를 키우는 취미가 있으셨는데 이제는 하기 힘들어 하세요. 그래서 어항에서 키우는 물고기 관리도 제가 해드리고 있어요.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저도 마음이 좋아요.”
정순자 씨를 담당했던 송은희 과장도 뿌듯하기는 마찬가지다. 본인의 어머니와 연배가 비슷해서 마음이 쓰였던 지원자였기에 더욱 그렇다. 집에서 지내며 손주를 키우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을 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정순자 씨가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롤 모델이 되었다. 때로는 정순자씨를 너무 몰아붙이는 건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예상보다 정순자 씨가 훨씬 더 잘해주어서 고마운 마음이 크다.
“지금도 나이 많은 분들을 대할 때가 있어요. 60년생 이런 분들이 나이 때문에 못한다고 하실 때 정순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죠. 그러면 다른 분들도 용기를 내서 취업 준비를 하시곤 해요. 그만큼 제게도 정순자 선생님은 특별한 케이스로 마음에 남아있어요. 앞으로도 충분히 잘 해내실 거라고 생각하고, 항상 응원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