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읽어드립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이 책은 어떤 객관적인 사실이나 사건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다.
개인적인 체험, 즉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시시때때로 겪었던
개인적인 체험에 관한 기록이다.

sub_writer_deco한재우

 

‘아우슈비츠’라고 하면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는 낱말들이 있다. 유태인, 대학살, 독가스, 히틀러. 영화나 교과서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이런 낱말들은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일들을 널리 알려주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끔찍한 사건을 무디게 만들어주는 측면도 있다.

600만 명이라는 희생자가 실감되지 않고 막연한 숫자로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한 막연함은 엄청난 비극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귀한 통찰을 놓치게 한다. ‘그 통찰이 뭐지?’ 하고 궁금증이 생기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책, 바로 <죽음의 수용소에서>이다.

이 책은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빅터 프랭클이 수용소에서 경험한 일들을 남겨 놓은 글이다. 객관적이고 검증된 보고서가 아니라 그저 한 개인이 보고, 듣고, 느낀 일들을 적어 놓은 기록이다. 하지만 바로 그 한 개인의 체험이 오히려 우리를 아우슈비츠에 대한 생생한 감각으로 이끈다. 예를 들어 이런 장면이다.

방 안에서 한 사람이 숨을 거두자 나머지 사람들이 아직 체온이 남아 있는 시신 곁으로 다가간다. 누군가는 죽은사람이 먹다 남긴 감자를 가져가고, 누군가는 시신이 신고 있는 ‘나무 신발’을 자신의 것과 바꾸며, 또 다른 사람은 구두끈을 얻었다고 기뻐한다. 저자는 그 옆 자리에서 불과 두 시간 전에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시신의 ‘동태 같은 눈’을 보며 수프 국물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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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들이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어.
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귀한 통찰이란 단순히 끔찍한 상황을 간접 체험함으로써 지금 누리고 있는 현실에 감사하라는 차원이 아니다. 통찰은 그것을 넘어선 자리에 있다. 누구나 살다보면 이따금 아주 힘든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럴 때면 문득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에 이르기도 한다. 어려움은 돈일 수도, 직업일 수도, 인간관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프랭클은 그 모든 어려움과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지독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인간은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음을 말이다.

아우슈비츠에서는 노동을 할 힘이 남아 있지 않으면 가스실로 보내졌다. 규칙을 안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매일 아침 면도를 했다. 유리 조각을 면도날로 쓰고, 면도를 하느라 빵을 못 먹더라도 얼굴을 깨끗하게 해서 의욕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뺨을 문질러 혈색이 좋게 만들고 가능한 똑바로 힘 있게 걸었다. 그런 노력을 한 사람은 ‘가스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고 무너지는 하늘 아래에서 살아남았다. 이렇게 볼 때, ‘버틸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은 일종의 망상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본능은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미리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안에는 버틸 수 있는 힘이 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생존 본능과 의구심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을 후자로 기울어지지 않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본능은 강하지만, 망상 역시 그에 못지않게 강하다. 프랭클은 성탄절이 지나고 나서 수용소의 사망률이 급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성탄절까지는 집으로 돌아가겠지’하는 막연한 희망이자 근거 없는 망상이 깨졌을 때 삶의 의지를 급격히 놓아버린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다행히 정신과 의사였던 프랭클은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것은 ‘삶의 의미’였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돌아갈 고향이든, 만나야할 가족이든, 해내야할 일이든. 그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그들로 하여금 살아남게 했다. 프랭클 역시 절망에 빠져 그냥 죽음을 택하려 한순간이 있었다. 죽는 방법은 간단했다. 수용소를 둘러싼 고압 전류 철조망에 몸을 기대면 끝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정신과 의사로서 수용소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사람의 정신 작용을 관찰하고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그는 우선 살아남아야 했다. 삶의 의미가 생긴 것이다.

삶의 의미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포괄적인 삶의 의미가 아니라 어떤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한 개인의 삶이 갖고 있는 고유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이 상황을 경험하는 것이 우리들 자신과 이 세상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깨닫는 것. 그것이 고유한 삶의 의미이고, 이 순간의 어려움을 능히 극복해 낼 이유이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라는 비극을 몸소 겪으며 우리에게 남겨준 귀한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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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읽어드립니다>에서는 ‘재우의 서재’ 대표 한재우 작가가 독자 분들이 읽으면 좋은 책을 소개합니다.
소개된 책은 유튜브 ‘재우의 서재’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