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함께
두 번째 불행을 희망으로 바꾼 인연
-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 재활보상2부 간우선 과장과 산재노동자 김병기 씨
쇳물이 지나는 파이프에 달린 부속 장치의 무게는 200~300kg.
이 장치가 김병기 씨의 발등으로 떨어졌을 때 그가 느꼈을 당혹감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같은 사업장 에서 일어난 두 번째 사고이자,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 겪게 된 재해였다.
언제나 밝은 마음으로 생활하는 그였지만, 걱정이 없을 수 없었다. 그러던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울산지사 간우선 과장의 전화였다.

sub_writer_deco소효령사진 정을호

 

저는 괜찮으니
이 사람도 한번 봐주세요
김병기 씨는 기계장치를 제조하는 지금의 공장에서 10년 가까이 일했다. 공장에서 처음 기계를 돌릴 때부터 함께해온 원년 멤버였다. 공장장의 역할을 하던 그가 동료들에게 늘 강조했던 것은 ‘안전’이었다. 그래서인지 2017년 인대가 파열되는 사고에 이어 2019년 3월 두 번째 사고 났을 때는 아픔보다 미안한 마음이 컸다고 한다.
“직원들에게 항상 사고를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제가 사고를 겪게 되니 직원들을 볼 면목이 없더라고요. 아픈 것보다는 당장 제 자리를 메워야 할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컸어요. ”
급히 찾은 병원에서는 오른쪽 발가락이 분쇄골절돼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회복에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치료와 이후 직장으로의 복귀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김병수 씨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 간우선 과장의 전화였다.
“김병기 씨의 경우는 같은 사업장에서 두 번째로 발생한 재해였어요. 사업장의 규모가 크지 않고, 여러 상황으로 봤을 때 내 일찾기 서비스가 우선으로 필요해 보이시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입원 기간에 만나 뵙고 다른 어려움은 없으신지 확인을 했는데, 처음에는 밝은 표정으로 큰 어려움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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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씨는 오히려 같은 병실의 다른 재해자를 걱정했다고 한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였지만, 자신과 같이 재해로 입원한 환자의 어려운 사연을 들으며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항상 밝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던 김병기 씨였지만, 생각보다 회복 속도가 늦어지면서 스트레스가 생기기 시작했고, 간우선 과장의 권유로 내일찾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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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까지
해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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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업장에서 여러 번 재해를 겪다 보니 김병기 씨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걱정이 있었다. 여러 번 장기간 휴직을 하게 되니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신경 쓰였고,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복귀에 대한 부담감도 생겼다. 이러한 고민들을 희망찾기 심리 상담에서 털어놓았다.
“다치고 나면 다시 받아주지 않으려는 회사도 있는데, 그런 경우가 발생하면 얘기를 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4번의 집단심리상담을 받으면서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도움 되고 감명을 받았던 것은 동료화합 프로그램이었다고 한다.
"당시에 10개월 정도 회사에 못 나가는 상황이 되면서 동료들과 만날 시간이 없었어요. 그렇다고 사업장에 들락날락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죠. 그런데 간우선 과장님이 동료들과의 점심 식사 자리를 만들어주고, 점심 후에는 다과 자리까지 마련해주셨어요. 덕분에 마음 놓고 회사에 가서 직원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하나같이 공단에서 이런 것까지
해주냐며 놀라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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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씨는 2019년에 신설된 직장적응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기존 프로그램은 회복이 끝난 다음 직장 복귀를 위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프로그램을 개정하면서 김병기씨와 같이 장기간 휴직 중인 재해자가 업무에 대한 감을 잃지 않도록 요양 중에도 직장에 나가는 것이 가능해졌다. 김병기 씨는 일주일에 한 번 사업장을 방문해 기존에 맡았던 업무를 진행해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일을 할 수 있는지 가늠해보고 사업주와 면담 자리를 갖기도 했다. 간우선 과장 또한 사업주와 개별 면담을 진행하면서 김병기 씨가 무리 없이 복직할 수 있도록 도왔다.

제안 드리는 프로그램에
“그런 게 있으면 좋지요”하고 적극적으로
임해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했어요.

“사실 이런 서비스는 재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진행을 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김병기 씨는 제안 드리는 프로그램에 ‘그런 게 있으면 좋지요’하고 적극적으로 임해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했어요. 사업장에 방문해 사업주와 개별 상담을 진행하면서는 김병기 씨가 사업장에 복귀할 경우 공단에서 지원해 드릴 수 있는 서비스에 관해 설명해 드리고, 공단의 지원사업에 대해서 갖고 계신 오해도 풀어드렸어요.”

간우선 과장의 말에 김병기 씨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제가 정말 감사하죠. 회복하는 도중에 회사에 나가면 색안경을 쓰고 보는 사람이 있는데, 간우선 과장님이 직원들에게 직장 적응훈련에 대해 잘 설명해주셔서 동료들이 필요로 할 때 회사에 나갈 수 있었어요. 덕분에 인간관계에도 도움이 됐죠.”
윈윈하는 관계가
이런 거 아닐까요?
아직 김병기 씨의 발은 회복 중이다. 원래 곧 핀 제거 수술을 할 예정이었지만, 주치의는 몇 달 더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예상보다 회복이 늦어지고 있지만, 이전 같은 걱정은 없다. 지금의 상황을 괴로워하지 않고,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저는 지금껏 이렇게 성심성의로 대해주시는 분을 못 봤어요. 저만 담당을 하시는 것도 아닐 텐데 자주 찾아주시고 시간을 쪼개 일을 처리해 주시는걸 보면서 감동했어요. 간우선 과장님 덕분에 즐겁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

반면 간우선 과장은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만날 때마다 밝게 웃는 김병기 씨를 보며 힘을 얻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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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김병기 씨를 뵀을 때도 항상 긍정적이셨어요. 재해를 당하신 분이 긍정적이기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런 모습을 보면 오히려 제 기분이 좋아지고 에너지를 얻기도 해요. 또 산재 환자가 있어서 공단이 있는 것이고,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저 자신은 아쉬울 때가 있는데, 항상 고맙다고 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더라고요.”
긍정적인 에너지뿐만 아니라 간우선 과장은 김병기씨를 통해 현장 상황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산업 재해에 관한 업무를 하지만 사무실에 있다 보니 현장 상황을 보는 관점이 제한돼 있기도 해요. 저희는 저희의 관점으로만 보니까 보완이 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데, 김병기 씨가 솔직한 산재 노동자의 마음을 많이 말씀해주셔서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김병기 씨가 말을 이어받았다.

“노동 관련 제도가 바뀔 때마다
대기업은 빠르게 반영이 되는데,
제가 일하는 소규모 사업장 같은 곳은
뭐가 어떻게 바뀌는지 아무도 모르고 알려주지도 않아요.
개선돼야 할 점이 많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