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다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 고수로서 여름엔 바다보다 숲을 더 권하고 싶다.
바다가 70점이라면 숲은 90점이다.
상쾌하고 청량한 느낌, 등짝이 오싹해지는 선선함,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여유로움과 한가로움, 그리고 호젓함까지. 과연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킬 만한 곳으로 숲만 한 곳이 있을까?
특히 후텁지근한 여름엔 더 그렇다.
‘숲멍’을 즐기러 제천으로 떠난다.
글. 사진. 임운석 여행작가
제천, 여기 쉴만한 곳이어라
연일 뙤약볕이 뜨겁다. 한껏 달아오른 아스팔트에는 아지랑이가 이글거린다. 가뜩이나 푹푹 찌는 더운 날씨에 마스크까지. 과연 ‘숲멍’을 즐기기 좋은 곳은 어디에 있을까.
첩첩산중 속에 있으면서 시원한 물까지 있다면 금상첨화일 터. 충청북도 제천이 딱 그런 곳이다. 내륙의 바다라 불리는 충주호가 뜨거운 열을 식혀줄 뿐만 아니라, 태백•차령•소백산맥이 제각기 높이를 자랑하며 길게 뻗어 있으니, 다른 지역보다 선선하고 청량할 것이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 사실을 확인하러 제천으로 향한다.
충청북도 북동부 중앙에 있는 제천시는 중부 내륙의 중심지다. 강원도 원주와 영월, 충북 단양과
충주, 경북 문경과 맞닿아 있다. 제천은 산과 물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하는 곳이다. 삼한 시대에 축조된 인공연못 의림지를 비롯해 우리나라 16개 슬로시티 가운데 열 번째로 슬로시티로 지정된 수산면이 있다. 무엇보다 육지 속의 바다로 불리는 충주호를 빼놓을 수 없다. 충주호는 충주댐을 만들면서 조성되었다. 충주, 제천, 단양에 걸쳐 있는 충주호는 소양호 다음으로 담수량이 큰 호수다. 충주에서는 충주댐을 만들면서 조성되었으니 ‘충주호’라 부르고, 제천에서는 호수와 맞닿은 면적이 가장 넓으므로 제천의 옛 이름 청풍을 따서 ‘청풍호’라 부른다. 후텁지근한 여름엔 충주호보다 청풍호라 부르고 싶다. 청풍(淸風)은 ‘부드럽고 맑은 바람’이지 않은가.
숲을 찾기에 앞서 욕심이 생긴다. 청풍호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눈에 담고 싶어서다. 그래서 찾은 곳이 청풍문화재단지다. 1978년 충주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자, 제천시는 수몰 지역의 고가(古)와 문화재 등을 옮겨와 청풍문화재단지를 조성했다. 청풍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단지 내 망월산성(237m) 정상부에 있는 망월정이다. 정자에서 보는 풍경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망무제 그 자체다. 병풍처럼 드리운 올망졸망한 봉우리들, 옥빛처럼 반짝이는 고요한 청풍호, 청풍면 도화리와 물태리를 이어주는 청풍대교, 그 아래를 유랑하듯 흘러가는 유람선까지.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다. 모두가 주연급이다.
내친김에 옥순봉 전망대로 향한다. 청풍대교에서 7km 남짓한 거리지만, 리아스식 해안처럼 구불구불한 호수를 따라 이어진 도로인 탓에 갑절은 더 멀게 느껴진다. 드디어 도착한 옥순봉 전망대, 주차장에서 걸어서 5분 정도면 닿는 곳이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쩌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1시간 이상 발품을 팔아도 아깝지 않을 절경이다. 옥순봉(286m)의 기암은 극적이라 할 만큼 빼어나고, 붉은 옥순대교는 옥빛 청풍호에 홍일점같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를 살리는 숲멍은 ‘국립제천치유의숲’에서
지금까지는 서론이다. 제천을 찾은 목적은 숲에 있다. 제천은 산지가 유난히 넓고 깊어 아늑하다. 특히 월악산과 소백산 자락에 봉긋 솟은 금수산(1,015m)은 그보다 낮은 여러 산봉우리와 함께 어우러져 넓은 품을 자랑한다. 그 품에 국립제천치유의숲이 있다. 치유의 숲은 3년간의 단장을 마치고 지난해 문을 열었다. 국내에 치유의 숲으로 운영되는 곳은 국립제천치유의숲을 비롯해 국립산림치유원, 국립양평치유의숲 등 모두 16곳이다. 치유의 숲은 숲이 가지고 있는 경관, 피톤치드, 음이온, 소리, 햇빛, 향기, 식생 등을 활용하여, 인체 면역력을 향상시키고 심신 건강을 증진시킬 목적으로 조성된 산림이다. 숲의 치유 효과에 관한 연구는 서구 선진국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연구•활용된 것으로 독일에서는 180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치유의 숲에 발을 들이면 비탈진 곳에 있는 약초원을 마주한다. 제천은 조선 시대 3대 약령시 중 하나였을 정도로 예부터 약초로 명성이 자자하다. 마가목, 음나무 등 치유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약초 6종이 약초원의 주인공이다. 약초원을 지나면 치유센터다. 숲하모니, 치유힐링숲테라피, 한방힐링숲테라피 등 다양한 산림 치유 프로그램을 이곳에서 진행한다. 프로그램은 예약제로 운영하며 참여 대상과 인원에 따라 구성된다. 1시간이 소요되는 ‘숲하모니’는 건강 측정, 티 테라피, 산림 공예를 체험한다. 2시간이 소요되는 ‘금수산 치유힐링 숲테라피’, ‘명상치유 숲테라피’, ‘오감힐링 숲테라피’ 프로그램도 있다. 산림을 통한 신체적 정신적 건강증진에 도움이 되는 체험들로 짜여 있다.
치유의 숲을 즐기기 위해 꼭 프로그램에 참여할 필요는 없다. 건강치유숲길, 숲내음치유숲길, 음이온치유숲길 등으로 나뉘는 숲속 산책로는 언제든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숲을 감싸듯 산길을 따라 오르내리는 ‘건강치유숲길’은 금수산의 수려한 전망을 즐기기 좋다. ‘숲내음치유숲길’은 산자락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간다. 숲에서만 맡을 수 있는 청정한 향기가 온몸을 휘감는 듯하다. 아직 몸통이 굵지는 않지만 하얀 나무껍질을 자랑하는 자작나무 숲길을 걷는 맛도 색다르다. 빼놓지 말고 챙겨볼 곳은 ‘음이온치유숲길’이다. 금수산 계곡을 따라 길이 놓여 있어 걷다 보면 한낮의 더위쯤은 발을 붙이지 못하고 도망간다. 또 숲속 계곡 주변에서는 음이온이 다량 방출된다. 음이온은 부교감신경을 자극해 신체적•정서적 이완 효과가 있어 두통을 완화해주고, 호흡기 질환에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때마침 숲에 도착한 시각이 2시경이다. 피톤치드 발산량이 가장 많을 때다. 무엇에 이끌린 듯 잰걸음으로 숲속에 발을 들인다. 몇 걸음 가지 않아 어둑어둑하다. 나무가 우거진 나머지 햇빛이 들지 않아서다. 숲이 깊을수록 공기 중의 오염물질은 적고, 피톤치드 농도는 증가한다. 걷다 서기를 반복하다 고개를 들어 숲을 둘러본다. 눈이 녹음에 샤워를 한다. 눈의 피로가 풀린다. 두 눈이 상쾌하고 또렷해진다. 귀도 쫑긋해본다. 먼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발아래 어디선가 대화를 주고받는 풀벌레 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집중하지 않으면 듣지 못할 소리가 귓속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한다. 자연의 소리에 박자를 맞추니 덩달아 마음도 편안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숲 치유가 신체적 치유는 물론 우울증, 중독증 같은 정신적 치유에도 효과가 있음을 체험한다. 숲에 머물러 본 사람은 안다. 숲에는 보이지 않는 치유의 손길, 치유의 광선이 있음을.
숲속에 하얀 까치수염꽃이 만개했다. 아름다움을 탐닉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나비 한 마리가 꽃을 마주한 채 떠나질 않는다. 까치수염은 생리불순•인후염•유방염•타박상•신경통에 효과가 있다. 약초의 고장다운 면모다.
숲속 가족들은 어느 것 하나 푸르지 않은 게 없다. 그 모습이 마치 찬란한 청춘기를 보내는 것 같다. 인간에게는 기껏해야 한 나절의 청춘이지만, 숲은 언제든지 청춘을 맞을 준비를 한다. 매년 파릇파릇한 봄을 보내고 싱그러운 여름을 맞이한다. 형형색색의 가을을 보낸 뒤에는 새로운 청춘을 맞이하기 위해 겨울을 준비한다. 마치 다가올 새로운 생명을 위해 자신을 밑거름으로 내어주듯. 한 해 동안 부지런히 키워온 제 잎사귀를 모두 떨군 채. 지금 한창 청춘기를 맞은 숲은 내년에 또 다른 청춘을 맞이할 것이다.
우리는 숲에서 걸을 때 자연을 오롯이 느끼고 그 품에 안긴다. 오르막을 오를 때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이마에 땀도 송골송골 맺힌다. 또 다리 근육이 뻐근해지며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낀다. 그리고 평평한 길에서는 깊은 숨을 토해낸다. 두껍게 쌓였던 일상의 찌꺼기들과 함께. 그리고 깊은 숨을 들이마신다. 이전과 다른 새로운 활기를. 숲멍, 참 좋다.
여행 정보
옥순봉 전망대는 청풍호반 구석구석을 누비는 걷기 여행길 ‘자드락길’ 6코스 ‘괴곡성벽길’에 포함된 곳이다. 순우리말인 자드락은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을 뜻한다.
내비게이션 정보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학현소야로 590 국립제천치유의숲
국립제천치유의숲 043-653-98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