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던 평일 오후, 고요한 주택가 골목에 근로복지공단 안양지사 단짝 4인방이 나타났다. 습한 공기 대신 향을 피우고, 차갑게 식힌 등나무에 물을 뿌려가며 조용히 씨줄과 날줄을 엮는 시간. 더위는 잠시 물러가고 향기로운 추억이 얽혔다.
글. 박채림 사진. 김재이
때로는 쉼이 되고, 작품이 되는 등나무
서로 좋아하면 닮는다고 했던가. 올해로 3년째, 근로복지공단 안양지사에서 함께 해온 네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참 닮았다’는 말이 떠오른다. 겉모습이 아니라, 조용하면서도 재잘재잘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 오는 분위기가 서로 편안하게 어우러진다. 오늘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한 장본인은 재활보상2부의 이휘진 대리. 다들 만들기에 자신이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작고 예쁜 가방을 인스타그램으로 보자마자 모두 마음을 뺏겼다.
I 이휘진 대리 I 나란히 입사한 이후 안양지사에서 함께 3년을 보냈어요. 다들 막내라 서툴고 부족한게 많았는데 서로가 있어서 참 많이 의지가 됐죠. 누가 뭔가 배우면 다 같이 공유하고, 힘들 땐 토닥여주기도 하면서요. 가끔은 저녁을 먹거나 쉬는 시간을 함께하는 날도 많았는데 작년 코로나19가 시작된 후론 좀처럼 그럴 기회가 없었어요. 함께 추억을 만들고 싶은데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신청하게 되었죠.
차분히 모여 앉아 더위를 잠시 식힌 후 본격적으로 가방 만들기에 돌입했다. 오늘의 수업 주제는 바로 라탄 가방 만들기.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의 가방이지만, 수업에 드는 시간은 3시간이 훌쩍 넘는다. 반복 작업이라 루틴을 익혀 꾸준히 모양을 잡아 주는 것이 중요한데, 인내심과 끈기, 약간의 섬세함만 갖추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기초 설명을 들은 네 사람이 뭔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하영 주임에게 머리끈을 받아 든다.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했지만, 막상 등나무 가지를 만져보니 제대로 해내고 싶다는 열의로 가득하다. 차분하면서도 무엇하나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강단 있는 모습까지 네 사람의 공통점이다. 물론 조용히 서로에게 거는 장난도 필수. 누군가 한마디만 해도 동시에 까르르 웃는 모습에 담당 강사가 여고생들 같다며 농담을 건다.
흔히 라탄 공예라고 하면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나무 소재의 소품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등나무를 활용해 한국 전통 등공예에 도전할 계획. 등나무 껍질을 벗기고 둥글고 길게 뽑은 ‘환심’을 엮기만 하면 된다. 나무 재료만 있으면 별다른 도구가 필요 없다는 점은 등공예의 장점이자 매력이다. 유연하게 잘 휘는 환심에 수시로 물을 뿌리면 더욱더 부드럽고 말랑말랑해진다. 특히 바구니나 가방은 등공예의 가장 기초적인 작업 중 하나. 잘 엮고 나면 수분이 날아가고 단단한 바구니가 남는다. 위로 두 번 엮은 후 아래로 엮기. 그렇게 한 바퀴를 돌리고 나면 다시 다음 바퀴를 돌면 된다. 두 줄을 엮자마자 여기저기서 너무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거 원래 어려워요! 어려운 게 당연한 거니 당황하지 마세요.” 선생님의 조언에 다들 마음을 다잡는다. 서로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조용히 두 바퀴를 엮어낸 이휘진 대리가 오늘의 우등생. 걱정하던 이하영 주임도 점차 감을 찾는다. 등나무를 촘촘하게 엮이는지 확인하면서 이어달리기하듯 조금씩 모양을 만들어간다.
“오늘 수업을 하다 보니 제가 생각보다 손재주가 없다는 걸 알았어요.” 신혜수 주임의 말에 다들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늘 누구보다 호기심이 많아 일할 때도 똑 부러지는 그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I 강수미 주임 I 신혜수 주임이랑은 워낙 단짝이라 사람들이 같이 사는 거 아니냐고 물어봐요. 출근도 지하철역에서 만나서 같이 하거든요. 성격이 잘 맞기도 하고, 성향도 비슷해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이휘진 대리님은 입사할 때 저를 정말 많이 챙겨줘서 늘 고맙게 생각해요. 서로 모르는 건 물어보고 도움도 받으면서 지금까지 왔죠. 하영 주임님은 재활보상1부라 팀이 다른데, 그래서 이것저것 물어볼 일이 많아요. 제가 너무 귀찮게 하는 건 아닌지 가끔 미안하죠. 입사한 후로 지금까지 동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해준 사람들이네요.
강수미 주임의 칭찬이 못내 어색한 듯 다들 바구니 짜기에 더욱 열중한다. 자매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지내다 갑자기 서로를 앞에 두고 한마디씩 하려니 여간 쑥스럽지 않은 모양. 그래도 손은 쉬지 않은 덕분에 완성하지 못할까봐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조금씩 모양이 잡혀간다. 중간중간 손이 꼬여 잘못 엮인 부분은 강사님의 도움을 받아 완성. 어느 정도 완성이 되고 나서 보니 바구니의 모양이 서로 비슷한 듯 하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닮은 듯하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네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I 신혜수 주임 I 강수미 주임님은 우리 지사의 명실공히 ‘빌런’이에요. 어디서든 하드캐리 한다고 할까요? 그야말로 ‘열일’하는 스타일이죠. 그런 모습을 저도 많이 본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휘진 대리님은 이런 말 하면 쑥스러워하시겠지만 그래도 역시, ‘천사’입니다. 화내는 걸 아무도 본 적이 없거든요. 이하영 주임님은 섬세하고 묵묵한 성격이에요. 중심이 잘 잡혀있어서 어딜 가든 자랑스럽게 제 몫을 잘 해내는 스타일이죠.
때론 웃음이 되고 힘이 되는 동료
최근 승진을 하게 된 이휘진 대리에게 소감을 묻자 그저 하던 대로 묵묵히 열심히 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강수미 주임은 최근 이사를 하게 됐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를 준수하느라 아직 집들이를 하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고. 조만간 시국이 좋아지면 세 사람을 초대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꿈이다. 코로나19로 다소 기운이 빠져있다가 오늘 새삼 기분전환을 하게 된 것이 기쁘다는 이하영 주임은 어서 빨리 이 시국이 끝나 네 사람이 전처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I 이하영 주임 I 처음에는 어렵기만 했는데 막상 하다보니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 같아요. 생각보다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어서 마무리하고 나니 뿌듯하네요. 동료들이 있어서 해낼 수 있었어요. 재활보상1부와 재활보상2부로 부서는 비슷하지만 사실 저희 넷 다 직군이 달라요. 재활직, 심사직, 일반직까지. 그래서 오히려 서로 도움을 많이 받죠. 업무 외적으로도 통해서 그런지 제가 참 동료 복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 가방을 볼 때마다 오늘의 시간이 생각나서 더 자주 메고 다닐 것 같아요.
마무리된 가방에 가죽끈을 연결하고, 가방 안에 작은 린넨 주머니를 넣으면 완성. 수분이 날아가 점차 단단하게 마르는 가방을 두고 네 사람이 연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생각보다 더 예쁘게 완성된 가방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작은 성취감과 뿌듯함이 저마다의 얼굴에 반짝임으로 가득하다. 닮은 듯 다르지만 부드럽고 유연하며 때로는 단단한 등나무처럼 네 사람도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가끔은 힘든 시간도 있겠지만 혼자도 둘도 아닌 넷이라 두려울 것은 없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지금까지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