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어루만지다,
삶을 포개다
| 근로복지공단 정선병원 |
눈이 시리게 푸르고 높은 산을 지나고, 작은 소읍을 거치면 비봉산 산자락 아래
작은 강을 마주한 이 곳이 있다. 진폐환자들을 위한 산재전문병원에서 지역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공공병원으로 품을 넓혀가고 있는 정선병원을 찾아가봤다.
글. 박채림 사진. 김지원
진폐환자의 든든한 동반자
계절의 맑은 바람이 병원을 감싼다. 높은 산 고개를 타고 자연의 향기를 듬뿍 머금은
건강한 공기가 넘실거리고, 분주한 도심의 소음 대신 한낮의 고요함이 가득하다.
쇠락한 탄광의 저물어가는 기운이 아닌, 새로운 희망을 품은 아늑하고 따뜻한 마음이
이곳에 깃들어 있다.
이른 오전엔 환자복을 입은 농부들이 병원 한쪽에 자리한 텃밭에 물을 주고 작물을
수확하고, 점심시간이 끝나면 산책로에 삼삼오오 두런두런 산책을 나선다.
높은 하늘과 맑은 공기는 젊은 시절 탄광에서 몸바쳐 일한 진폐환자들의 가장 친한 친구.
정선병원의 모든 병실 창문마다 정선의 시원한 자연 풍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버드나무가 감싼 정자는 진폐환자뿐 아니라 이곳 병원을
찾는 모두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이곳을 지켜온 환자들과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의료진의 대화를 듣고 있자면, 병원이 아닌 작은 마을에 와있는 것처럼 포근한
느낌이 든다. 치료하는 공간이자 쉼의 공간. 정선병원의 특별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1988년 개원한 정선병원은 1970년대 석탄 산업의 메카로 명성이 높던 삼척탄좌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한때 부흥을 누렸던 탄광 산업의 그늘에 가려진 진폐환자들을 위해 처음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진폐증은 유해한 물질이 폐로 들어가 쌓이면서 결국 폐 기능이 저하되는
질병으로 탄폐나 시멘트폐 등 광석에서 비롯되는 직업병의 하나다. 평생 완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곳에 입원해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병상을 지키고 있다. 호흡에 불편을
겪는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맑은 공기는 필수.
따라서 병원 대부분의 시설이 환자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섬세하게 가꾸어져 있다.
2019년 3월부터 작물 재배 취미 활동반을 운영하는 것도 환자들이 맑은 공기를 쐬며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활동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나온 결과물이다. 직원 사택 앞
놀이터가 공터로 방치되고 있는 것을 발견해 시설물을 철거하고 텃밭을 만들어 각자의
취향 앞에 채소를 재배할 수 있게 한 것. 병원 뒤편에 마련된 블루베리밭은 환자들이 직접
재배해 판매까지 하고 수익금을 사회에 기부해왔다. 환자들 간의 끈끈한 유대감 형성은 물론
정서적 안정, 보람까지 도모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가족에서 마을로,
다시 지역으로
올해로 20년째 정선병원을 지켜온 강은용 원장에게 병원은 집이자 가족이다. 정선병원이 가진 특유의 편안하고 소박한 운치도, 병원을 내 집처럼 가꿔온 강은용 원장을 비롯한 의료진의 마음이 아니었다면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마냥 편안함만이 정선병원의 저력은 아니다. 최첨단 시설은 도심의 큰 병원보다 부족할지 몰라도, 오랜 시간 쌓아온 정선병원만의 노하우와 지역주민을 지탱하는 공공병원으로서의 자부심도 단단하게 뿌리내렸다.
“정선병원에는 오랜 기간 축적해온 진폐 진료에 대한 노하우와 전문성이 있습니다.
1차 검진부터 정밀검진, 요양, 후유(통원) 등 진폐에 관련한 전 과정을 통합해서 치료할 수
있는 역량을 우리 병원은 갖추고 있습니다. 많은 환자가 진폐 진료를 위해 전국에서 정선병원을
찾고 있으며 장기 입원 중인 환자들이 많아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진폐환자의 케이스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의료진 역시 다양한 치료 경험을 통해 전문성을 축적했습니다.”
- 강은용 원장
가족처럼 끈끈한 병원만의 문화는 지역 주민과의 화합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장수기원 행복한 사진 촬영’이 그중 하나다. 진폐증 요양환자들의 장수와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로 매년 지역 사진동호회의 협조 아래 이어지고 있다. 지역민들의 병원에 대한 따뜻한 관심은 정선병원이 오랜 시간 정선지역의 유일한 응급 의료기관으로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데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근로복지공단 정선병원은 정선군 유일의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휴일은 물론 야간에도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지역주민에게 응급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큰 병원을 찾아가려면 차로 한참을 나가야 하는 지역 위치 특성상 정선병원은 진폐환자뿐 아니라 정선 및 인근 지역 주민에게도 참으로 귀한 존재. 고령화로 만성질환자가 늘어나고 있는 지역 특성상 믿을 수 있는 병원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어주고 있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로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철저한 감염관리로 이겨내며 병원 역량은 한층 강화됐다. 진폐환자가 줄어들고 있는 현재, 정선병원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한 고민의 시기를 겪고 있다. 지역주민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의 역할을 공고히 해나가는 한편, 지금까지의 역량을 바탕으로 산재환자를 위한 새로운 서비스와 방향을 제시해나갈 생각이다. 입원 환자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서비스 향상 역시 늘 고민하며 개선해나가고 있는 과제 중 하나. 병원 곳곳을 거니는 환자의 편안한 표정에서 정선병원의 조용하지만 섬세하고 부지런한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계절도 잠시 쉬어가는 이곳에서 진폐환자의 삶이 매일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지역민과 정선병원의 따뜻한 동행이 오랫동안 이어지기를 바라본다.
진폐환자와 지역민을 위한
든든한 희망버팀목으로
- 정선병원 강은용 원장
정선병원을 찾는 환자는
대부분 어떤 분들인가요.
정선병원에는 산재환자 중에서도 대부분 진폐증 환자가 입원해있습니다. 진폐환자는 항상 숨이 가쁜 상태이기 때문에 환자가 편안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치료의 관건입니다. 정선병원은 배산임수의 명당에 위치하고 있어 환자가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진폐환자를 비롯해 일반 내과 진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진폐환자를 위한 치료 프로그램은
무엇이 있나요?
일반적으로 호흡 곤란 증상을 가지고 있는 진폐환자를 위해 산소치료를 실시하고 있으며, 폐결핵이나 폐기종, 기관지염, 기흉, 흉막염 등의 합병증 치료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정선병원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정선병원은 산재환자만을 위한 병원이 아닌 지역 주민을 위한 모두의 병원으로 품을 넓히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지역주민 및 유관기관 직원을 대상으로 종합검진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검진 사업을 활성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 주요 행사 및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공공의료기관으로서 다양한 노력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위기에도 단단하게
환자와 지역민을 지켜나갑니다
- 김향숙 간호부장
정선병원은 정선군민의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코로나19를 비롯한 각종 위기에 대응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진폐환자를 비롯해 모든 환자분들께 쾌적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나가겠습니다. 특히 장기요양 환자들의 경우 현재 코로나19로 외출과 면회, 외박 등이 제한되어 많이 답답하실 텐데요. 이 위기를 함께 이겨내고 있는 모든 의료진과 환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진폐환자 분들의 삶의 질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 윤한솔 사회복지사
현재 정선병원에서 장기요양 환자들의 심리 재활 및 지역사회 자원 연계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요양 생활이 지치지 않도록 원예 체험을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나가고 있는데요. 앞으로는 프로그램뿐 아니라 재활을 통해 환자분들이 더 건강한 삶을 누리실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