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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사고 후 직업 복귀를 위해 재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환자의 의지다. 누구나 예상치 못한 사고를 겪고 나면 두려움과 상실감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다시 일할 수 있을까? 막막한 시간을 보내던 서경표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순천병원 재활지원부 이명선 과장을 만나 서경표 씨의 질문은 ‘할 수 있다’는 다짐으로 변했다.

글. 백미희 사진. 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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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트라우마로 남은 사고의 기억

지리산 자락과 벗 삼은 소담한 농촌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라남도 구례의 한 마을. 커다란 비닐하우스 너머로 초록 모종이 가득하고, 옆으로 자리한 건물 입구에는 ‘치유와 힐링을 위한 천적센터’라는 간판이 보인다. 귀촌의 꿈을 안고 구례로 내려온 서경표 씨의 오랜 일터인 이곳은 사회적협동조합 파머스쿱에서 운영하는 천적센터. 천적센터란 말 그대로 식물의 ‘천적’을 연구하는 곳이다. 각종 농작물이 농약 없이도 자랄 수 있도록 다양한 친환경 농사법을 연구하는 곳인데, 서경표 씨는 이곳에서 각종 유해 병충해의 천적을 연구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가 이곳으로 돌아온 지는 이제 6개월 남짓. 산재사고를 겪고 난 후 돌아온 회사에서 본래의 업무를 하는 지금이 마치 꿈처럼 아득하다.

“다음 날 납품해야 하는 유기농 비료가 있어서 퇴근 무렵까지 포장 작업이 한창인 날이었죠. 2인 1조로 비료의 수분 상태를 측정하고, 비닐 포장을 하는데 어느 순간 제 손이 장비 줄에 순식간에 휘감겨 기계로 빨려 들어갔어요. 같이 일하던 동료가 저를 잡아끌지 않았다면 그대로 목숨을 잃었을 거예요. 손이 통째로 짓눌렸고, 상반신도 거의 기계에 끼인 상태였죠.”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가 응급처치가 이루어졌지만, 손의 주요 신경이 모두 손상되었다는 진단 결과를 받았다. 정년을 앞두고 평온한 일상에 갑자기 불어닥친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아내와 함께 며칠을 울었다. 사고는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가장 괴로운 건 한동안 계속되는 정신적 트라우마였다.

“사실 일터에 복귀한다는 생각은 할 겨를이 없었어요. 사고 당시의 기억이 저를 계속 괴롭혔기 때문이지요. 매일 잠자리에 누우면 그날의 상황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라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동료가 없었으면 그대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부질없다고 느꼈고 마음이 괴롭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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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용기를 내다

비슷한 아픔을 겪은 재해자들과 교류하면서 마음을 다독였으나, 남영철 씨는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사고 당시의 충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먼저 최예은 주임에게 트라우마 치료와 관련한 치료 지원을 문의했다. 남영철 씨는 공단이 지원하는 ‘다차원 심리검사’에서 60점 이상을 받아 집중심리상담 자격에 해당했다.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어떤 지원을 해드려야 하나 계속 고민하면서 여러 경로를 통해 관련 기관을 검색했습니다. 열심히 찾다 보니 경기도 시흥에 트라우마 전문 상담기관인 직업트라 우마센터가 있더라고요. 남영철 씨를 비롯해 다른 재해자분들도 상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협약을 맺어 사회심리재활 프로그램을 받으실 수 있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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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우울한 마음이 싹트자 모든 게 무기력하게만 느껴졌다.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한 마음도 커졌다. 그러다 우연히 지인의 권유로 근로복지공단 순천병원으로 전원을 하게 됐고, 산재담당 사회복지사를 만났다. 그리고 꾸준한 심리검사와 상담 끝에 트라우마 및 우울 지수가 높다는 소견을 들을 수 있었다. 사회복지사는 곧장 산재관리간호사인 이명선 과장에게 서경표 씨의 사례를 연결했다. 직업 복귀를 위해 보다 전문적인 재활치료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방문한 순천병원이었지만, 처음 병원을 찾았던 그 날 이후를 서경표 씨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사실은 지인이 순천병원을 소개해줬을 때 조금 망설였어요. 공공병원에 대한 편견이 있었거든요. 산재환자 대부분이 사고를 처음 겪는 상황이다 보니 불안과 불신으로 가득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순천병원에서 이명선 과장님을 만나고 느꼈죠. 제가 손보다 마음을 더 다쳤다는 사실을요. 진심으로 제 복귀를 함께 고민해주시고, 회복을 위해 노력해주시는 모습에 점차 원직장 복귀에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복귀하고자 하는 의지가 서자 모든 일은 착착 진행되었다. 산재관리간호사로 환자의 재활부터 직업복귀까지, 전반의 과정을 담당하는 이명선 과장은 서경표 씨와 상담한 후 필요한 지원을 연결했다. 먼저 다차원 수부평가를 통해 재활의학과 의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가 직장 복귀를 위한 맞춤형 재활을 제공하는 수부 집중재활치료가 이루어졌다. 어느 정도 손의 기능이 회복되자 직장 복귀를 위해 의료진과 이명선 과장 등이 함께 원직장 복귀 프로그램을 이어나갔다. 사업주도 서경표 씨의 상태를 고려해 직무를 조정하며 적극적으로 복귀를 도왔다.

“사실 산재사고를 겪는 모든 환자가 바로 상황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들 저마다 회 복의 시간이 필요하죠. 그런데 서경표 씨는 먼 거리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가며 재활을 이 어가셨어요. 환자의 의지가 강한 만큼 저희도 좋은 결과를 안겨드리고 싶어서 절로 노력하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무사히 복귀해서 건강하게 일하시는 모습을 보니 반갑고 감사할 따름입 니다.”

이명선 과장은 재활에는 환자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의지만 있다면 반드시 원직 장 복귀가 아니더라도 직업 능력 개발 등 새로운 직장을 찾고 내일의 희망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함 께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재관리간호사가 직접 치료과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근로복지공단 병원의 직업복귀 프로그램도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줄 것이다.

“제 인생에 산재사고가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그냥 막연히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 면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죠. 순천병원에서 이명선 과장님을 만나고, 제 치료 와 복귀를 위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어요. 사실 매 일 재활을 위해 병원에 간 이유도 이명선 과장님을 비롯해 모든 분이 필요한 지원을 다 준비해 주시니 제가 할 수 있는 재활을 열심히 하자는 마음이 컸죠. 이대로 정년까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누구나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운 시련 앞에 절망할 때가 있다. 그러나 두려움을 이겨내고 주위를 둘 러본다면 위기를 함께 이겨낼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의 힘 을 믿기에, 희망은 오늘도 일하는 사람들의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