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함께
비온 뒤 땅이 굳듯이 가족이기에 더욱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 근로복지공단 서울동부지사 김지희 대리
산재노동자 김경혜 씨와 남편 정길성 씨
산재를 입은 산재노동자들은 재활에 대한 자신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주위 가족들의 지지와 도움도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로 인해 어려움 또는 갈등을 겪고 있는 산재노동자 가족들을 위해 ‘가족화합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산재노동자 김경혜 씨와 남편 정길성 씨, 그리고 김경혜 씨의 재활을 위해
함께 뛰어온 근로복지공단 서울동부지사 김지희 대리를 만나봤다.

sub_writer_deco김주희사진 이복환

 

갑자기 찾아온 산재로 싹튼 가정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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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무르익던 어느 날, 경북 경주시 한 리조트에서는 공단의 ‘가족화합프로그램’이 열렸다. 2박3일 동안 산재노동자와 그의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이 프로그램은 갑자기 찾아온 산재로 인해 마음이 힘들거나 갈등상황을 겪고 있는 가족들을 위해 마련되었다.
“가족화합프로그램에 얼마나 어렵게 참여했는지 몰라요. 남편한테 가자고 엄청 졸랐어요. 남편이 평일에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을 내기 어려웠거든요. 게다가 원체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성격도 아니고요. 불쑥불쑥 화가 나는 걸 참으면서 겨우겨우 설득했는데, 참여하길 참 잘한 것 같아요. 그동안 제대로 된 가족 여행 한번 못해봤는데 여행 나온 기분이에요.”
산재노동자 김경혜 씨는 남편 정길성 씨와 나란히 앉아 ‘가족화합프로그램’에 참여하기까지 무척 힘든 과정을 겪었다며 하소연을 한다. 남편이 워낙 무뚝뚝한 성격인 데다, 산재를 입고 난 후 치료과정에서도 김경혜 씨의 힘든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았던 게 두고두고 서운함으로 남았다고 이야기한다.
“건물종합관리업체에서 청소업무를 담당했어요. 일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홀 청소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무대가 사각형인지 알았는데 끝부분에 계단이 있었어요. 그걸 미처 못보고 무대일 거라고 생각하고 밟았으니 바로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지요. 창피하니까 벌떡 일어났는데 통증이 너무 심해서 다시 쓰러졌어요. 구급차를 불러서 병원으로 실려 갔지요.”
김경혜 씨는 쇄골과 요추 등에 골절상을 입고 수술을 받았다. 12주 동안 입원해야 할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당시에는 수술을 받으면 바로 나을지 알았지만 통증이 너무 심했다. 퇴원하고 집에 왔지만 밀려드는 통증에 잠을 못 이루기 일쑤였고,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자 남편에게 원망의 마음이 들었다.
“일상생활이 힘든 상황이었는데 남편이 도와주질 않았어요. 말로는 제가 힘들어도 자꾸 스스로 움직여야 회복이 빠르다고 했지만, 제 입장에서는 너무 서운하더라고요. 저를 환자로 안 보는 것 같고,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너무 괴로웠어요.”
자신에 대한 서운함을 쏟아내는 김경혜 씨의 말을 듣고 있던 정길성 씨는 그게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아내가 다친 날 전화가 온 거예요. 본인의 차를 제가 가져가라고 하더라고요. 운전하지 못할 정도라고 하니 보통 심각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술도 5시간이 걸렸고요. 아내는 서운하다고, 본인 걱정을 제가 안 했다고 하는데 제가 왜 걱정이 안 되겠어요. 심난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가뜩이나 60세가 넘은 나이에 하지 말라고 말린 청소 일을 하다가 다쳤으니 정말 안타깝고 속상했지요.”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
그렇게 산재를 입고 난 후 재활을 하는 동안 김경혜 씨와 정길성 씨의 골은 더욱 깊어져갔다. 김경혜 씨는 몸이 아픈 데다 남편이 도와주지 않는다는 서운함에, 정길성 씨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신경을 써주는데 이를 알아주는 못하는 아내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그런 두 사람에게 서울동부지사 김지희 대리가 ‘가족화합프로그램’을 추천했다. 김지희 대리는 김경혜 씨가 사고로 수술을 받은 직후부터 담당자로서 산재신청 등을 지원했다.
“김경혜 씨를 처음 병원에서 만났는데 통증으로 많이 힘들어하시는 상황이었어요.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하고 우울증도 오셔서 상담프로그램을 연결해 드렸지요. 다행히 상담프로그램에 참여하시면서 속에 담아둔 이야기도 하시고, 상담사에게 조언도 받으시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시는 게 보였어요. 그런데 통증이 지속되니까 병원에 가실때를 제외하곤 집에만 계셔야 하는 거예요. 몇 차례 통화에서 남편 분과 불화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래서 공단의 ‘가족화합프로그램’에 참여해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경주 소노벨리조트에서 열린 ‘가족화합프로그램’은 2박3일 동안 산재노동자의 심리 안정, 가족관계 증진, 의사소통 강화를 위한 집단 상담과 문화 활동 관련 프로그램 등이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않았지만, 김경혜 씨의 설득과 정길성 씨의 배려로 두 사람은 함께 참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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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내가 참여하자고 할 때 썩 내키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오늘 오전에 진행된 프로그램에서 양파에 어떤 말을 했을 때 변화가 있는지 함께 살펴봤는데요. 양파에게 미운 말을 하면 썩고, 예쁜 말을 하면 잘 자라더라고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말이 참 중요하더라고요. 아내에게 따뜻하게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지금은 아내가 몸이 아프니 화를 많이 내지만, 사실 이 사람에게는 저밖에 없거든요. 가끔 제가 얄밉다고 다친 팔로 절 때리려고 하는데, 때려도 좋으니 빨리 낫기만 했으면 좋겠어요.”
평소 자신의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 정길성 씨가 담담하게 아내에 대한 걱정의 마음을 드러낸다. 자신마저 힘든 모습을 보이면 안 될 듯해서 더 아무렇지 않은 척 했던 것들이 아내에게는 서운함으로 다가왔을 거란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듯했다. 어느새 김경혜 씨도 조금 화가 누그러진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김지희 대리가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두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아파 보지 않으면 그 사람의 고통을 알 수 없어요. 반면에 간병하시는 분의 어려움도 있거든요. 갑자기 산재를 입고 힘든 상황이 되니 두 분도 각자 나름의 고충이 있으셨을 거예요. 부부니까 서로의 마음을 다 안다고 생각해도,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 있으시거든요. ‘가족화합프로그램’에 용기를 내어 참여하셨으니 서로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려보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어려움을 겪는 산재가족들도 참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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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화합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해도 악화된 두 사람의 마음이 금세 풀리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조금씩 가슴 속 응어리가 풀려가는 느낌을 받는 듯했다.
“사실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엔 이혼까지 생각했어요. 다치기 전엔 활동적인 성격이었는데 집에만 있으니 정말 힘들었어요. 남편과도 이렇게 산다는 건 지옥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경주에 내려오는데, 하늘을 바라보니 너무 좋더라고요. 여행을 온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이렇게 남편과 이야기를 하니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아팠던 기억에 울기도, 화를 내기도 했던 김경혜 씨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정길성 씨 역시 처음엔 어색함에 이야기를 듣기만 했지만,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며 김경혜 씨에게 장난스러운 농담도 던진다. 아직은 다치기 이전의 관계로 완벽히 돌아가진 않았지만, 조금씩 변화의 씨앗이 움트는 것이 보였다.
“김지희 대리님에게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이 들어요. 병원에 처음 입원했을 때도 정말 친절하게 산재와 관련된 내용을 안내해 주셨거든요. 그리고 내일찾기서비스, 집중심리상담, 집중재활치료 과정들도 세심하게 연계해 주셨고요. 한번은 주민센터에서도 연락이 왔었어요. 김지희 대리님이 혹시 지원 받을 수 있는 복지서비스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하셨더라고요. 저는 해당사항이 없어서 지원을 받지는 못했지만, 진심으로 저를 챙겨주시는 느낌을 받아서 정말 감사했어요.”
옆에서 김경혜 씨의 이야기를 듣던 정길성 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용기를 내서 ‘가족화합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것도 김지희 대리님 덕분입니다. 사실 코로나19로 참여하는 가족들이 적어서 조금 부담스러웠어요.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주셔도 되는 건지 미안하고 고마웠지요. 이러한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아내와의 관계를 개선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지금 저희처럼 어려움을 겪는 산재가족 분들도 꼭 한 번 참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힘이 되어 주던 가족이었지만, 갑자기 찾아온 불행 앞에서 흔들리고 힘들어하던 김경혜 씨와 정길성 씨. 그러나 가족이기 때문에 함께 이겨낼 수 있다는 걸 ‘가족화합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한 번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예전처럼 행복이 찾아올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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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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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복지공단 재활국 재활계획부 곽영숙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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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화합프로그램’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공단의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산재노동자만 참여할 수 있지만, ‘가족화합프로그램’은 가족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으로 배우자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일상을 벗어나 좋은 공간에 모여 힐링터치, 향초 만들기, 힐링토크콘서트 등 다양한 재활 프로그램 통해 가족 관계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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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표로 운영되고 있나요?
‘ 산재를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같이 보듬고 재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지친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있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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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화합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어떤 점이 좋은가요?
프로그램에 참여하신 가족 분들은 상대방을 이해하게 됐다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남편이 너무 싫었는데 알고 보니 남편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이해하게 되십니다. ‘가족화합프로그램’에 참여하시면 일상을 잠시 잊고 여유를 찾으면서 관계 회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몰랐던 부분이 있거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산재가족 분들은 2박3일 나들이하듯 오셔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고 관계를 개선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