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읽어드립니다
뇌졸중에서 회복한 뒤에 알게 된 것들
- 질 볼트 테일러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sub_writer_deco한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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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기상을 알리는 익숙한 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 위에서 뒤척였다. 평범했던 일상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다른 삶으로 돌변해 버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왼쪽 눈 뒤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진 것이다. 본능적으로 왼손을 얼굴에 가져갔다. 의식은 명료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팔다리가 제멋대로인 느낌이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욕실로 향했다. 샤워기를 켰을 때 물소리가 폭포처럼 크게 들려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따져보려 했지만 생각의 흐름은 뚝뚝 끊기고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뇌와 친숙했고 자신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좌뇌의 손상, 운동피질 이상, 청각신호 처리 이상, 인지 능력 이상… 그것은 다름 아닌 뇌졸중이었다. ‘맙소사, 뇌졸중이야! 내가 뇌졸중에 걸렸어!’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스친 단어는 ‘기회’였다. ‘자신의 뇌 기능을 연구하면서, 그것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짐 볼트 테일러. 뇌졸중이 찾아왔을 때 그녀는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일하던 앞날이 창창한 37살의 뇌과학자였다.
그녀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뇌가 가진 복잡한 기능을 이해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뇌졸중 역시 소수에게 일어난다. 짐 볼트 테일러는 자신이 이해한 것을 체험까지 할 수 있는 극소수의 뇌과학자가 되었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기회를 온전히 살리기 위해서는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었다. 망가진 뇌를 회복하는 일.
“ 성공적인 회복을 위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했다. ”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것은 뇌에 저장된다. 그러므로 뇌가 손상을 입었다는 것은 알고 있던 모든 것을 새롭게 다시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다. 걷는 법, 말하는 법, 읽는 법, 쓰는 법, 1,2,3,4 숫자를 세는 법까지. 짐 볼트 테일러는 마치 아기가 된 듯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누워서 몸을 흔들고, 흔들림의 반동으로 일어섰으며, 간신히 첫 발을 떼었다. 한 동작 한 동작이 몹시 힘들었다. 침대에서 욕실 사이를 오간 뒤에는 여섯 시간쯤 누워서 깊은 잠을 자야 할 정도였다.

극한의 인내력을 필요로 하는 회복 과정에서 그녀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사랑과 긍정적인 태도 덕분이었다. 문자 그대로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한 그녀를 보면서 어머니는 단 한 번도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슬퍼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고, 새로운 것을 해내면 아기를 보듯이 칭찬해 주었으며, 언제나 ‘더 나쁠 수도 있었지만’ 이만하기 천만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어제는 저것밖에 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이만큼이나 했다는 긍정적인 자세는 그녀를 기적적인 회복의 길로 이끌어내었다. 뇌졸중 4년 차에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었고, 6년 차에는 한 번에 계단 두 개를 올랐으며, 8년 차에는 수상스키를 타기 시작했다. 마침내 완치된 이후, 그녀의 경험을 책으로 썼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 만약 행복이 선택이라면 왜 사람들은
행복이 아닌 다른 것을 선택하지 ”
결국 질 볼트 테일러는 처음 뇌졸중이 찾아오던 날 기대했던 것처럼 대단히 귀한 경험을 가진 뇌과학자가 되었다. 무너져버린 뇌를 다시 구축하는 과정에서 대단히 주의 깊게 한 걸음씩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생각들이 두뇌를 잠식하지 않도록 애를 썼다. 자신의 뇌 회로를 의식적으로 ‘선택’했다고나 할까. 마치 기존의 작품을 완전히 버리고 백지에서 새롭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예술가처럼, ‘가장 좋은 것’만 골라 뇌를 새롭게 만들었다. 가장 좋은 것, 그것은 바로 뇌 안에 존재하는 행복의 회로였다.

질 볼트 테일러는 단언한다. 습관적으로 분노 회로를 가동하는 것만큼이나 행복 회로를 가동하는 것도 쉬운 일이라고. 뇌의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를 하나 고른다면 다름 아닌 ‘기쁨’이라고. 그러니 우리들이 기쁨을 경험하는 능력을 혹시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뇌 안에는 회로가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녀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하다면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안에 이미 있다면,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삶의 이유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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