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읽어드립니다
이 삶에서 해내야 할 진정한 일
- 헤르만 헤세 <데미안>

sub_writer_deco한재우

 

나는 진정,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전사한 독일군의 군장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었다는 책, 세계적인 가수 BTS가 앨범의 모티브로 썼다고 공공연히 밝힌 책, 그리고 출간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켜 문학상까지 수상하였으나 저자가 가명으로 책을 낸 까닭에 진짜 글쓴이를 찾기 위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던 책. 바로 ‘성장 소설의 고전’으로 불리는 <데미안>이다.

이 책은 얇은 편이다. 판본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250페이지 안팎이다. 또 대표적인 청소년 필독서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게다가 '나는 진정,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는 책의 첫 문장에서 보듯 당장 밑줄을 치고 싶게 만드는 깊고 뜨거운 글귀들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데미안>의 줄거리를 빠짐없이 기억하거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그것은 아마도 얇은 분량과 멋진 문장들 사이에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어려운 상징과 비유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데미안>을 처음 읽는 이들은 이런 상징과 비유의 숲에서 길을 잃는 대신 글이 주는 메시지의 울림을 느껴보았으면 한다.
이미지
누군가가 두렵다는 건
나를 다스리는 힘을 타인에게 맡겨 버렸기 때문이야.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편안하게 자란 꼬마 싱클레어는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 으스대고 싶은 충동에 도둑질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깡패 기질이 있는 크로머에게 약점을 잡혀 괴롭힘을 당한다. 곤경에 처한 싱클레어를 구해준 것은 전학을 온 데미안. 그는 성숙하고 신비한 인물로서 성경 속 아벨과 카인의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거나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말로 싱클레어의 가치관을 뒤흔들어 놓고는 여행을 떠나 사라진다.

싱클레어는 우연히 보게 된 아름다운 여성을 흠모하며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여 숭배하다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그려 놓은 베아트리체의 그림이 사실은 데미안의 얼굴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데미안이 남겨 놓은 쪽지에 담긴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라는 구절을 붙들고 삶의 진실을 깨달으려 끙끙거리기도 한다. 이렇게 데미안으로부터 여러 채널로 다가오는 메시지들을 통해 싱클레어는 자신의 세계를 하나씩 깨며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다. 그런 노력들은 모두 타인의 압력에 휘둘리는 대신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싱클레어는 결국 그것이 다른 누구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서 가능한 것임을 깨닫는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데미안>의 메시지를 한 마디로 거칠게 요약하자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과 그 길에서 끝없이 깨뜨려야 하는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는 한 계속 성장한다. 성장으로 인해 존재가 커질 때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가 문득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러한 답답함은 우리의 성장을 가로막는 답답함이며, 또한 진정한 나 자신과 조우하지 못하는 답답함이다. 그 괴로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안락한 현재’에 머무르는 대신 나 자신을 찾아가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선택은 마치 새가 알을 깨뜨리고 나오는 것처럼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투쟁이 필수다.
각자를 위해 진정한 천직이란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단 한 가지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안정된 세계와 투쟁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세계에서 출발해서 ‘학교’라는 세계를 거쳐, ‘사회’라는 더 큰 세계로 동심원을 그리며 나아간다. 그리고 그 동심원 안에도 ‘친구’나 ‘직장’, 혹은 ‘동료’와 같은 무수한 세계들이 정 가운데에 ‘나’를 두고 교집합을 이루고 있다. 이 모든 세계는 각각 ‘너는 이렇게 살아야 해’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는데, 투쟁이란 그 압력들을 이겨내는 일이다. 안정이 두터울수록, 그 세계의 동심원이 나와 가까울수록 압력의 무게는 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나에 닿고자 한다면 용기를 내어 그 길을 가야하며 그것 외에는 답이 없다. 이 삶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그리고 해내야 할 진정한 일은 바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희망을 읽어드립니다>에서는 ‘재우의 서재’ 대표 한재우 작가가 독자 분들이 읽으면 좋은 책을 소개합니다.
소개된 책은 유튜브 ‘재우의 서재’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