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함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꾼 소중한 만남
- 근로복지공단 안산지사 김지혜 주임과 산재노동자 염정숙 씨
영화 ‘시리어스맨’에는 평생을 도덕적으로 살려고 노력했으나 계속 불행한 일들이 겹쳐 일어나는 주인공이 나온다.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지 알고 싶은 그는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데, 결국 그가 깨닫게 된 것은
인생에는 행복이든 불행이든 의도치 않게 닥쳐오며 그것을 어떻게 대처할지는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산재노동자 염정숙 씨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불행은 연달아 찾아왔다.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다행히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염정숙 씨는 그 손을 잡고 불행을 행복으로 만들어나갔다.

sub_writer_deco김주희사진 강태규

 

출근길 발생한 사고,
그리고 새로운 만남
카페에서 만난 근로복지공단 안산지사 김지혜 주임과산재노동자 염정숙 씨는 마치 엄마와 딸이 담소를 나누고 있는 듯이 다정해 보였다. 실제로도 염정숙 씨에게는 김지혜 주임과 비슷한 나이의 자녀가 있고, 김지혜 주임에게도 염정숙 씨와 비슷한 연배의 어머니가 계신다. 때문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편안함을 느꼈다는 두 사람은 지난해 1월부터 요양 종결된 지금까지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지난해 1월에 자전거로 출근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식당 주방에서 일하는데 그날은 혼자 일해야 해서 마음이 급했었죠. 좌회전하는 신호가 저한테는 파란색으로 보인 거예요. 차가 오는 걸 보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안 들어서 그대로 차에 치였어요. 몇 미터를 그대로 날아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코뼈와 팔이 부러졌죠. 온몸이 너무 아픈데도 앞으로 일은 어떻게 하지, 병원비는 얼마나 나올까 그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염정숙 씨는 인근 병원으로 실려가 급히 수술을 받은 후 경찰 조사를 받았다. 사고는 신호를 잘못 본 그녀의 잘못이었지만, 남편과 일찍이 사별하고 혼자 생계를 꾸려나가는 염정숙 씨 사연에 경찰들마저 안타까워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식당 사장도 염정숙 씨의 사정을 설명하며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전 2011년에 중국국적에서 귀화를 했어요. 제 어머니는 부산 출신으로 한국에 계셨고 남편과 사별하면서 한국으로 와 일하게 되었죠. 그러던 중에 아들이 2016년 간이식을 받게 되었어요. 아들은 중국국적이라 보험이 해지되면서 병원비 때문에 2억 원의 빚을 지게 되었죠. 힘들게 일하면서 빚을 갚던 중에 사고를 당하니까 앞이 캄캄하더라고요.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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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승인이 난 후 염정숙 씨를 병원에서 처음 만났는데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덕분에 염정숙 씨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고 어떤 도움들을
드려야 할지 빨리 판단할 수 있었어요.

아들의 병원비 때문에 주위에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더이상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당장 자신의 수술비뿐만 아니라 일을 못하게 되면 앞으로 먹고 살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녀의 사정을 들은 경찰과 식당 사장은 출근길에 사고가 났으니 산재신청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다행히 4대 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었기에 산재신청을 할 수 있었다.

“염정숙 씨는 출퇴근재해로 인정 받으셨어요. 산재는 과실 여부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죠. 산재승인이 난 후 염정숙 씨를 처음 병원에서 만났는데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해주셨어요. 덕분에 염정숙 씨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고 어떤 도움들을 드려야 할지 빨리 판단할 수 있었어요.”
희망이 되어준
따뜻한 말 한 마디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했는데
자꾸 불행한 일들만 생기니 절망스러웠어요.
털어놓을 데도 없고요...

김지혜 주임을 만나기 전까지 염정숙 씨는 극심한 우울증과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런 그녀에게 김지혜 주임은 심리상담 및 희망찾기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염정숙 씨는 희망찾기 프로그램에서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산재노동자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며 점점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희망이 없던 상황에서 김지혜 주임의 따뜻한 말들은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됐다.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했는데 자꾸 불행한 일들만 생기니 절망스러웠어요. 털어놓을 데도 없고... 주민센터도 여러 번 찾아갔었는데 어느 누구도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어요. 도와줄 수 없다는 외면뿐이었죠. 그런데 김지혜 주임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면서 나도 살아갈 희망이 있구나, 나도 힘을 내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며 힘들었던 때를 떠올리니 감정이 북받친 염정숙 씨가 눈물을 흘리자 곁에 앉은 김지혜 주임이 따뜻하게 손을 잡아준다. 화장이 지워지면 사진이 안 예쁘게 나온다며 농담 섞인 말로 염정숙 씨를 웃게 만드는 모습에선 따뜻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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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승인이 나면서 치료비와 요양급여를 받으실 수 있어서 경제적인 부담은 다소 덜었지만, 간이식을 받은 아드님에 대한 지원도 필요한 상황이셨어요. 공단의 복지서비스 의뢰를 통해 주민센터에 전산상으로 연계해드렸고, 주민센터에서 염정숙 씨 집에 방문해 필요한 지원을 해주셨어요.”

김지혜 주임의 복지서비스 의뢰를 받은 주민센터에서는 생활비와 염정숙 씨 아들의 병원비를 일부 지원했다. 또한 아직 귀화하지 못한 아들을 위해 무료 법률상담도 진행되었다. 염정숙 씨 혼자일 때는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었지만, 김지혜 주임이 개입하면서 여러 방면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염정숙 씨가 주민센터를 찾아가지 않았던 게 아닌데, 저희가 연계를 하니까 그제야 지원이 되었다는 게 안타까워요. 복지지원을 받는 대상자가 바뀐 게 아닌데 어디서 의뢰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으니까요. 그동안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하셨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많이 아팠고, 이제라도 필요한 지원을 받게 되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이 가득한
새로운 삶의 시작
이제 염정숙 씨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일할 수 있는 직장이었다. 사고로 왼쪽 팔이 골절되었기 때문에 원래 다니던 식당에서 일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야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김지혜 주임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추천했다.

“새로운 직업을 찾아드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여러 직업을 안내해 드렸는데, 요양보호사에 관심을 가지셨어요. 2019년 7월에 학원에 등록해 다니셨고 8월에 실습까지 마치셨어요. 11월엔 요양보호사 자격증 시험에 합격해서 지금 취업준비를 하고 계신 중이에요. ”

꾸준히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 염정숙 씨는 시간이 갈수록 표정이 밝아졌다. 학원을 다니는 동안 직업훈련 수당을 받고, 9월에 왼쪽 팔에 심었던 핀을 제거하면서 재요양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일을 하지 못하는 동안 생계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병원에서 꾸준히 물리치료를 받으며 요양보호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 염정숙 씨는 시간이 갈수록 표정이 밝아졌다.
학원을 다니는 동안 직업훈련 수당을 받고, 9월에 왼쪽 팔에 심었던 핀을 제거하면서 재요양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일을 하지 못하는 동안 생계 걱정을 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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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싶어도 형편상 불가능했었어요. 학원을 다니려면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요. 학원비도 부담이고... 공단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없었을 거예요. 산재를 입은 건 정말 불행한 일이었지만 김지혜 주임님과 공단을 만나면서 행운으로 바뀐 것 같아요.”

이제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염정숙 씨는 새로운 삶을 얻은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특히 중국에 있을 때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 경험이 있었기에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얻게 된 것이 마치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요양보호사 실습을 나가보니 예전에 병원에서 일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환자 분들을 보면 안쓰러움이 커요. 제가 도움을 받은 만큼 환자 분들에게 도움을 드려야겠다고 매일 다짐합니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건 다 김지혜 주임님 덕분이에요. 정말 큰 행운이고 고마운 마음뿐이죠. 앞으로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 또 한 번 눈물을 글썽이는 염정숙 씨를 바라보며 김지혜 주임도 따뜻한 말을 건넨다.

“염정숙 씨가 하셨던 말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는데요. 직업훈련을 받으시면서 같이 실습을 받은 분들과 친구가 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상황이 어렵고 돈을 많이 빌리다 보니 친구가 없어졌었는데, 새로운 친구들이 생겨서 너무 좋다는 말씀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앞으로 염정숙 씨의 삶에 좋은 인연들이 더욱 많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연달아 불행한 일들이 찾아왔지만, 이를 행복으로 바꾼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염정숙 씨와 곁에서 따뜻하게 지지해준 김지혜 주임이었다. 앞으로는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길, 행복을 더 큰 행복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