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주희 사진 황성규
Q) 어떻게 타자기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해외에서 상품을 병행 수입해서 조금씩 판매하고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홍콩과 일본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빈티지시장이 많아서 오래된 물건들을 접할 수 있었죠. 어느 날 우연히 오래된 타자기를 발견해서 구입해 왔는데 처음엔 좀 실망스럽더라고요. 녹슨 부분도 많고 먼지도 쌓여있고, 망가져서 타자기 기능도 못하고요. 안 되면 버리자는 생각으로 전부 분해해서 수리를 했어요. 지금은 타자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인터넷이나 책을 샅샅이 찾아 보면서 하나씩 고쳐나갔죠. 그렇게 해서 타자기가 제 기능을 찾게 되니 자연히 관심과 애정이 생겼어요.Q) 타자기의 어떤 부분에서 매력을 느끼세요?
매일 새로운 기술과 상품이 나오는데 저는 이제 새로운 것에는 신물이 난 것 같아요. 요즘엔 컴퓨터나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PC까지 정말 빠른 세상이잖아요. 타자기는 한 번 글을 쓰면 수정이 어려우니까 한 자 한 자 신중하게 눌러야 해요. 그래서 속도는 느리지만 글 쓰는 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요. ‘느림의 미학’이 있다고 할까요. 낡고 오래된 타자기에도 가치가 있어요.Q) 오래된 타자기나 카메라, TV 등을 수리해서 판매하는 일은 흔치 않은 것 같아요. 취미에서 머무른 게 아니라 직업으로 삼은 이유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반 기업에 취업했는데 저와는 잘 맞지 않았어요. 누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것도 싫고, 또 제가 빠릿하게 일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요. 많이 지칠 수밖에 없었죠. 평생 일하며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직장은 아닌 것 같고, 특별한 기술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하자고 결심했어요. 일을 해보니까 혼자 조용히 하는 일은 잘하고 즐거웠거든요. 모두가 앞으로 가기 위해 전진 기어를 넣고 있을 때 저는 후진기어를 넣게 된 거죠.Q) 빈티지 제품들은 수리가 어려울 것 같아요.
카메라나 음향기기는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고 자료들도 많아요. 하지만 타자기는 컴퓨터가 보편화된 1990년대에는 거의 사라졌어요. 수리점도 없고 기술이나 자료를 갖고 있는 분도 거의 안 계시죠. 그래서 타자기를 분해하면서 공부했는데 처음엔 애를 많이 먹었어요. 무작정 구입해서 뜯어서 확인하고 버리고를 반복하면서 제 기능을 찾을 수 있도록 한 거죠. 새로운 부품을 끼우고 지저분하고 녹이 슨 부분들은 약품 처리와 폴리싱(Polishing) 작업을 해서 깨끗하게 만들었고요.Q) 타자기를 구하는 게 어렵지는 않나요?
개인소장품을 주로 구입하고 있어요. 타자기를 판매하고 싶다는 분이 계시면 지방이라도 내려가서 구입해 와요. 경매나 옛날 물건을 수집하는 분들에게 구입하기도 하고요. 사용은 안 하지만 창고나 집 한 구석에 보관하고 있는 분들이 아직은 꽤 있으세요.Q) 기억에 남는 타자기가 있다면요?
작고하신 아버지의 타자기를 판매하고 싶다고 하신 분이 계셨어요. 아버지가 기자셨는데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하신 거죠. 집에 보관하느니 수리해서 가치 있게 사용되었으면 좋겠다고 연락을 주셨던게 기억에 남아요. 또 하나는 상고학생들이 쓰던 타자기인데, 케이스에 친했던 친구들 이름을 적어놓거나 롤링페이퍼처럼 글귀를 쓰는 경우들이 있었어요. 누군가의 오래된 추억들을 타자기를 통해 볼 수 있어서 재미있기도 하고 괜히 뭉클했던 기억이 나네요.Q) 주로 타자기는 어떤 분들이 구입해 가시나요?
20~30대 여성 분들이 많이 찾으세요. 약간 생소한 취미이지만, 집에서 조용하게 집중해서 글을 쓰고 싶다고 하시면서 구입해 가시죠. 컴퓨터에는 부가적인 기능이 많아서 집중력이 분산될 수 있는데, 타자기는 글을 쓰는 기능밖에 없으니까 그 시간만은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사에서 구입해 가는 경우도 있어요. 옛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소품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죠.Q) 취미가 직업이 된 경우인데,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어떠세요?
스트레스가 덜한 것 같아요. 하지만 취미가 업이 되면서 달라진 부분은 있어요. 예전엔 타자기를 보면 설레었는데 요즘에는 매일 보고 만지다 보니 무감각해진 면이 있죠. 그래도 직장생활을 할 때와 비교하면 지금이 더 행복해요. 저한테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기도 하고요.Q) 요즘 타자기를 인테리어 소품으로 많이 활용하는데 기능이 안 되는 것들이 많아요. 레트로케이는 직접 사용할 수 있는 타자기만 판매를 하는데 그 이유가 있나요?
보통 오래된 물건들은 그 자체로 잠들어 있어요. 그런데 저는 정적인 물건보다는 동적인 물건이 좋아요. 골동품이나 빈티지라고 하면 도자기처럼 움직이지 않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는데, 본연의 기능을 하는 빈티지 물건들이 많아요. 그게 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기능이 안 되는 물건은 아예 안 팔아요. 주위에서는 모양만 고쳐서 판매하면 되지 않느냐고 저더러 바보라고 하는데, 저는 이게 좋아요.Q) 그렇다면 대표님에게 타자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까지 타자기를 수천 대 들여온 것 같아요. 그런데 한 대도 버린 적이 없어요. 부품이 없든 녹슬었든 다 저마다의 쓰임새가 있어요. 쓸모없어 보이는 망가진 타자기도 깨끗이 닦고 부품을 갈아주면 제 기능을 되찾아요. 어떤 타자기는 아무리 수리해도 고쳐지지 않지만 일부 부품을 다른 타자기에 사용할 수 있죠. 그래서 어떤 타자기든지 소중하고 하나도 버릴 것이 없어요. 저에게 타자기는 잊힌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Q) 독자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희망나무’의 주 독자층이 산재노동자 분들이라고 알고 있어요. 열심히 일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시고 많이 힘드실 것 같습니다. 다시 사회에 나가서 일할 수 있을까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저는 이러한 비유가 맞을지 조심스럽습니다만, 낡고 오래된 타자기가 다시 제 기능을 찾고 반짝반짝 빛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갖고 손길을 주면 타자기도 새로운 가치를 얻고 누군가에는 소중한 존재가 됩니다. 지금은 자신이 조금 작아 보이고, 사회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어요. 여전히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이며 다시 사회에서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힘을 내시길 바라며 항상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