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의 도자기인데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순간 저마다의 개성이 드러난다. 닮은 듯 다른 서로가 만들어내는 재미있는 하모니. 안산병원 재활치료실의 세 사람이 함께 도자기를 빚고, 마음을 나누던 시간 속으로.
‘쿵’하면 ‘짝’하는 찰떡 케미
저녁 공기에 봄이 스미기 시작하는 어느 평일, 안산의 한 도자기 공방에 꼭 닮은 세 사람이 들어섰다. 오늘을 위해 직접 옷까지 맞춰 입은 이들은 안산병원 재활치료실의 분위기 메이커 삼인방, 김현정, 장영애, 김홍기 대리다. 퇴근 후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공방으로 오는 길이 힘들었을 법도 한데, 들뜬 기색의 세 사람이 공방에 도착하자마자 탄성을 내뱉는다. 준비된 그릇을 보고 벌써 의욕이 샘솟는 모양. 오늘의 체험은 바로 도자기 공예다. 보통 도예는 진흙으로 형태를 만들어 말린 뒤 가마에서 높은 열을 가하여 여러 종류의 그릇을 만드는 작업이다. 초벌구이 후 광택을 내기 위해 유약을 바르고 재벌구이를 하여 만든다. 오늘은 초벌을 해둔 그릇에 각자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는 시간. 나만의 그림을 그려낸 그릇을 그늘진 곳에서 건조한 후 1,250℃로 재벌하면 완성되는데 이 과정이 약 3~4주가량 소요된다. 가장 먼저 밑그림을 시작한 장영애 대리는 손잡이가 달린 파스타 접시에 라벤더 모양을 그려 넣기로 했다.
-
장영애 대리
제가 커피를 못 마시거든요. 대신 허브차를 즐겨 마셔요. 그래서 접시에 허브 식물을 그리게 되었어요. 집에 가져가서 엄마, 아빠 그리고 언니랑 같이 쓰려고요. 주말에 이 접시에 파스타를 만들어 함께 식사하면 가족 분위기가 조금 더 화목해지지 않을까요?
김현정 대리는 오목한 파스타 접시에 보라색 계열의 꽃 그림을 그려 넣는다. 넓은 꽃잎과 큰 원이 조화롭게 접시에 새겨진다. 남편과 아들 지호, 예준의 이름도 작게 새겼다. 오늘 모두 보라색의 옷을 맞춰 입기로 한 이유도 김현정 대리가 보라색을 좋아해서라고. 그만큼 김현정 대리는 나머지 두 사람이 믿고 따르는 선배다. -
김현정 대리
저희 재활치료실이 평소에도 분위기가 좋아요. 선생님들이 서로 많이 도와주셔서 그런지 화합이 잘 되고요. 오늘은 특별히 김홍기 대리님이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덕분에 가족을 위한 파스타 접시를 만들게 됐네요. 평소에 미술에 소질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역시나 어려워요. 그래도 이런 경험 언제 또 해보겠어요! 역시 동료가 최고입니다.
김홍기 대리는 SNS 메신저 캐릭터를 직접 컵과 그라탱 접시에 그려 넣기로 했다. 평소 자신만을 위한 식기가 필요했던 터라 실용성에 최대한 중심을 두고 아이템을 골랐다. -
김홍기 대리
저희가 같이 일하게 된 지는 2년쯤 되었고 현재 재활실에 14분이 계세요. 그중에서 김현정 대리님이 가장 입사 선배시죠. 장영애 대리님은 제 1년 입사 선배시고요. 두 분이 저를 많이 이끌어주셨어요. 김현정 대리님은 늘 긍정적 에너지로 치료실을 밝게 만들어주시고, 장영애 대리님도 유쾌한 에너지와 리더십이 뛰어나십니다. 저도 그런 모습을 닮아가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그런데 요즘은 코로나19로 모이기도 쉽지 않고 워낙 바빠서 웃을 일이 많지 않더라고요. 이런 귀여운 캐릭터를 보고 조금이라도 웃어보고자 그림을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단단한 도자기처럼 무르익은 동료애
사실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집중과 인내가 중요하다. 작은 터치에도 실수가 발생해 다시 긁어내기를 반복하게 마련. 세 사람도 미리 준비한 모양이 틀어지거나, 선이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리, 서로의 어설픔을 때로는 농담으로 때로는 격려로 토닥이면서 작품이 점차 완성되어 나갔다.
시원시원하게 그림을 먼저 완성해나가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김현정 대리와 꼼꼼하게 집중하면서도 맞장구를 잃지 않는 장영애 대리, 별 말이 없는 듯 보이다가도 엉뚱한 농담으로 일격을 가하는 김홍기 대리까지 누가 봐도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삼남매의 모습이다.
장영애 대리와 김홍기 대리에게 김현정 대리는 치료실의 선배로서 실무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을 믿고 털어놓을 수 있는 든든한 선배다. 특히 차장님, 과장님과 사원들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고마운 존재라고. 그런가 하면 장영애 대리는 쾌활하고 활달한 성격으로 환자는 물론 모든 선생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존재라고 입을 모은다. 김홍기 대리는 치료실의 똘똘이 스머프! 컴퓨터도 잘 다루는 데다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없어서는 안 될 인재다. 늘 곁에 있어 칭찬을 건네는 일이 쑥스럽지만
그만큼 얼굴을 보기만 해도 연신 웃음이 터져 나온다.
-
김현정 대리
올 한 해에는 지금처럼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꼭 필요한 사람으로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열심히 그리고 충실히 지내는 게 목표예요.
-
김홍기 대리
연초에 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나태해졌는데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있어요. 건강하고 튼튼하게 한 해를 보내려 합니다.
-
장영애 대리
올해 스포츠 재활을 하면서 조금 더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환자들에게도 직장 복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고요.
세 사람이 완성된 접시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서서 환하게 웃음을 지어 보인다. 오늘 완성된 도자기는 1,250℃의 재벌을 거쳐 세 사람의 손에 전해질 것이다. 뜨거운 온도를 견디며 단단해지고, 특유의 맑은 빛으로 완성된 접시는 어떤 모습일까. 오늘의 세 사람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더욱 특별할 테다. 그렇게 세 사람이 함께 만든 추억이 단단하고 반짝이는 동료애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