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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인한 산재는 그 원인이 명확하다. 하지만 근무 중 특정 물질 등에 노출되거나 환경적 요인으로 질병을 얻은직업과 질병 사이의 연관성 밝혀내는 것 같지만 그 원인을 규명할 수 없을 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직업성 질병에 대한 역학조사가 필요할 때 찾는 기관이 바로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이다.

글. 백미희 사진. 김재이

직업과 질병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다

2006년 4월 3일 고용노동부 산하정부출연기관으로 개원한 직업환경연구원은 전국 유일의 직업병 전문기관이다. 현재 최병순 연구원장을 비롯하여 27명의 연구원이 직업성질환에 대한 임상연구와 업무상 질병 역학조사 및 진폐사망 여부에 대한 자문 등을 수행하고 있다

업무상 질병은 직업 또는 작업과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을 뜻하는 말로 진폐증과 소음성 난청과 같은 직업병뿐만 아니라 작업관련성 뇌심혈관계질환이나 작업 관련성 근골격계질환 등도 대표적인 업무상 질병이다.

산업이 발달할수록 새로운 업무상 질병들이 발생하고, 노동조합 및 산업보건 관련 시민단체들의 성장과 함께 업무상 질병에 대한 인식 또한 증가하면서 역학조사 의뢰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사고로 인한 산재는 그 원인이 명확하지만 직업환경으로 인해 발발한 질병은 그 연관성을 밝혀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근로자가 업무상 질병에 걸렸다고 판단해 산재신청을 한 경우, 그 연관성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희가 의뢰를 받아서 역학조사를 실시하는 것이죠. 산재와의 연관성을 결정하거나 승인하는 기관은 아니지만, 그 판단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조사를 하는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 최병순 연구원장

산재환자는 물론 모두의 재활병원으로

주요 사업 분야는 직업성질환의 업무상 질병 역학조사와 진폐사망 여부에 대한 자문이다. 이 밖에 직업성질환의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 및 표준진료지침 개발, 직업성질환의 장애 및 합병증 인정기준 개발, 직업성질환의 발병기전 및 진단 치료기법 개발, 직업성질환의 유해물질 독성 및 노출평가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직업환경연구원은 현장 조사를 중심으로 업무관련성 평가를 진행하는 업무관련성평가부와 특정 물질과 관련해서 질병과의 연관성에 대해 연구를 위주로 하는 발병기전연구부까지 2개 부서로 이뤄져 있다.

“두 부서로 이원화되어 운영되기는 하지만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직원들도 현장을 알아야 하고, 현장 조사를 진행하는 직원들도 연구를 함께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고 같이 움직여야 정확한 조사와 분석이 가능합니다.”
– 최병순 연구원장

현재 직업환경의학, 산업위생학, 독성학, 영상의학, 호흡생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 등의 폐기도 질환과 간질성 폐렴, 진폐증 등의 폐간질뿐만 아니라, 폐암이나 악성 중피종을 포함한 악성 종양 등 ‘직업과 관련되어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질환의 진단, 관리기준 및 관리체계’ 등을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해

업무상 질병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은 이렇다. 업무상 질병으로 근로복지공단에 요양 신청된 호흡기 질환 중 근로복지공단 지사에서 직업환경연구원으로 자문 의뢰할 경우, 역학조사를 통해 업무관련성 여부를 심의하고 있다. 연구위원들은 요양 신청한 근로자를 면담하고 의무기록을 검토하여 직업력과 질병력을 확인하는 한편, 요양 신청된 질병이 불분명하거나 다른 질병의 가능성이 있으면 특진을 하여 정확한 진단을 한다. 사업장을 방문하여 작업환경을 확인하고, 유해물질의 측정 및 분석을 통해 노출평가를 한다. 필요에 따라 본인 혹은 동료 근로자의 생체시료를 분석하고, 국내·외 문헌을 검토한다. 이를 토대로 작성한 역학조사 보고서를 분야별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업무상질병심의위원회에 제출하여, 업무상 질병 여부를 판단한 후 해당 근로복지공단 지사에 회신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자료와 정황자료의 수집과 취합, 이를 통한 근거있는 판단이다.

“결국 ‘이 직업으로 이 질병이 생길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이를 위해서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전문성’이고요. 이를 위해 근로자의 전 생애에 걸친 정보를 모으고 실제 작업환경에 나가 조사를 실시하고, 각종 문헌과 사례를 참고해서 결과를 도출합니다.”
– 최병순 연구원장

역학조사를 통해 업무관련성 여부를 밝혀내는 활동은 유해물질의 새로운 노출 경로를 밝혀내거나 작업 안전환경의 허점을 찾는 등 작업환경 개선의 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한 예를 들자면 진폐나 폐암을 일으키는 결정형 유리규산이라는 물질이 있는데, 석재 가공작업이나 건축현장에서 콘크리트를 파쇄하고 갈아내는 할석작업에서 많이 노출된다. 2018년경에 스테인리스 가공업체에서 광택을 내는 작업에서 규조토를 사용하는데 이를 취급하던 노동자에서 급성 규폐증이(수정) 발생한 적이 있었다. 원인을 알아보니 규조토 내 함유된 결정형 유리규산에 고농도로 노출되어 급성 규폐증이 발생하였다. 스테인리스를 많이 쓰는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수 있는 문제로, 이처럼 유해물질의 새로운 노출경로를 찾아내는 것은 직업환경연구원 같은 전문기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외에도 집단 불산 노출로 인한 불산중독 사례를 조사하다 출고 알람이 누락된 것을 알아내거나 반도체에 사용되는 식각 가스에 노출되어 흡입성 폐독성에 걸릴 사례를 통해 특정 계절에 작업장의 위험 요소를 찾아내는 등 실제로 작업장의 환경 개선을 끌어낸 사례들이 많다.

오늘날 사회·경제적 환경의 변화로 광업체 종사 근로자가 급격히 감소하고 산업 전반의 작업환경이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진폐증을 포함한 직업성 폐질환과 직업성 질병이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전문인력이 부족하고 제도가 미흡하여 직업성 질병 분야 연구는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의뢰는 늘어나는 상황에서 27명의 연구원이 전국의 모든 직업성질환에 대한 임상연구와 업무상 질병 역학조사 및 진폐사망 여부에 대한 자문 등을 수행하느라 현재, 적체된 의뢰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직업환경연구원은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자문연구기관으로서, 현재 적체된 의뢰를 처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의뢰받은 사안에 따라 처리 시간은 차이가 큰데, 빠르게는 한 달부터 오래 걸리면 2~3년이 걸리는 건들도 있습니다. 희귀병이나 사업장이 사라져서 실제 환경 조사가 어려운 경우 등 여러 가지 변수가 많습니다. 직업과 질병의 연관성이 있는 경우도 그렇지만 연관성이 없다고 해도 그 ‘여부’가 빨리 결정이 나야 근로자들도 후속 조치를 취하실 수 있겠지요. 앞으로도 전문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신속하고 정확하게 연구·조사를 진행하고, 공정한(수정)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전문성을 바탕으로 직업과 질병의 연관성을 밝혀냅니다”

    최병순 원장

    직업성질병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징검다리를 도로로 연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업과 질병에 대한 연관성이 눈에 보인다면 우리가 필요하지 않겠죠. 객관적인 자료로 판단을 내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을 채워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업무상 질병 여부를 조사하고 판단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심의나 결정 기관은 아니기 때문에 보통 기관이나 단체의 의뢰를 통해서 연구조사를 진행하는데, 앞으로도 전문성을 가지고 답을 줄 수 있는 연구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전문가들의 협업으로 원인을 찾습니다”

    업무관련성평가부 김대호 부장

    저는 직업환경연구원의 업무관련성평가부장으로, 전국 지사에서 의뢰한 업무상 질병 역학조사와 진폐로 인한 사망 여부 자문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업무상 질병 역학조사를 실시하면 산재요양 신청한 질병이 업무와 관련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신청인이 근무하였던 사업장을 조사하여 유해물질 노출 여부, 노출 수준 등을 파악합니다. 이는 직업환경의학적인 전문성뿐만 아니라 산업보건학적인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들의 협업으로 조사가 이루어집니다. 업무를 하다 보면 근로자들이 유해물질에 노출된 경로를 밝히게 되고 그것이 작업환경의 개선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업 중 질병을 얻은 근로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전반적인 환경 개선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고는 합니다.

  • “최고의 직업성질환 연구기관을 만듭니다”

    발병기전연구부 백진이 전임연구원

    업무관련성 전문조사를 위한 폐기능검사를 수행하고, 산업현장에서 근로자들에게 노출되는 인자들에 대한 독성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산업재해 신청자들의 정확한 폐기능검사를 통해 업무관련성 전문조사의 신뢰도와 정확성을 향상시키는 것은 산재기금이 효율적으로 운용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더불어 학술대회 연구발표를 통해 연구결과를 인정받을 때 직업성질환 연구 분야에 있어 ‘우리 연구원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은 인원이지만 각자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 든든하고 자부심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