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영혼을 씻는 맑고 흰 풍경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 여행지에서 설경을 마주한 이는 안다. 모든 것이 하얗게 눈으로 덮이는 풍경이 순간 영혼을 맑게 정화시킨다는 것을. 엉킨 실타
래 같은 감정도 금세 잊게 만들고 깨끗한 마음을 되찾아주는 마법의 시간. 거기에 로컬푸드로 차려진 정성 가득 한 끼와 차와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정겨운
이웃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장기화하면서 정신적 신체적 피로가 높아진 현대인에게는 자연 안에서 오롯하게 회복하는 쉼이 필요하다. 그저 드
라이브하며 창 밖으로 보이는 자연경관만 봐도 좋을 만큼 겨울이 아름다운 장수로 미식 여행을 떠나보자.
설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을 손꼽자면 강원도 대관령, 제주 한라산에 이어 장수를 들 수 있다. 전라북도에서 가장 높은 곳,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 동쪽
으로는 경남 함양과 나뉘고 서쪽은 진안, 북쪽은 무주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해발 400~500m의 너른 분지에 장안산, 백운산, 팔공산, 덕유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예부터 기암괴석, 수려한 계곡이 많아 명승지로 주목받았다. 덕유산 자락을 두고 마주한 경남 거창의 산세가 직선적이고 터프하다면 장수의
산세는 둥글고 포근한 느낌이다.
인구 2만 3,000여 명이 채 되지 않는 소도시 장수. 이곳은 1년 중 기온 차가 가장 큰 지역으로 과수 농업이 잘되는 곳이다. 長(긴 장)자와 水(물 수)자 지명
의 장수는 금강의 수원지로 산과 계곡에 물이 풍부하다. 꽁꽁 언 계곡과 주변의 산세가 어우러지니 곳곳이 산수화로 차고 넘치는 풍경이다. 이런 풍경을 마
주하면 옛 문인들이 붓을 잡는 이유나 지금의 우리가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그 마음이 같다는 것을 새삼깨 닫게 된다.
발견하고 음미하는 자연 속 미식 행복
모든 생명이 튼튼해지는 해발 500m고지, 장수는 붉은 열매의 파라다이스다. 산간 지대의 높은 일교차로 탐스러운 열매들을 단단하고 당도가 높게 길러냈 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풍부한 산촌의 식재료를 가진 장수군의 대표 특산품은 사과와 오미자, 토마토, 한우, 약용작물, 표고버섯, 파프리카다. 모두 높은 고도의 기후로 식재료의 조직이 치밀하고 향과 맛이 진하다. 장수의 미식 여행을 시작하기 전 로컬푸드 마켓에 들려 사과 주스와 오미자 주스를 시원하게 마셔볼 것. 여행이 시작되기도 전에 에너지가 샘솟는다.
장수 농부의 만찬 ‘장수밥상’
백마지기 농사를 짓고 10남매의 밥상을 차려냈던 이장님 부부의 자애로운 손맛 담긴 농가 맛집. 손수 키운 제철 식자재와 산과 들에서 직접 캔 나물을 다
듬고, 말리고, 발효시켜낸 기다림과 정성이 깊은 맛으로 완성됐다. 안주인의 탁월한 미적 감각으로 꾸며낸 시골집의 우아함을 즐기고 있노라면 20첩 반상
이 눈과 입을 사로잡는다.
따뜻하게 내주는 식전 차는 식욕을 돋게 하고 제철에 손질해둔 두릅, 방풍, 고사리, 취나물 등 나물과 장아찌가 제철의 향을 오롯이 품고 밥상 위를 수놓는
다. 정성스럽게 손질한 영광 굴비는 내장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만큼 안주인만의 내공의 비법이 담겨있다. 사실 손길이 가장 많이 간 음식은 참외와 깻
잎장아찌인데 참외장아찌는 아삭하고 맛있는 맛을 내는 숙성 시기를 맞추는 것이 까다롭다고. 잎사귀가 누렇게 익을 때 수확해 만든 깻잎장아찌도 풍부한
맛을 자랑한다. 이제 장수 밥상의 백미를 맛볼 차례. 장수 한우로 만든 고추장 육회와 겨우내 말려둔 시래기에 된장으로 맛을 낸 장수 한우 전골은 어머니
의 손맛이자 심신에 기운을 채우는 보약이다. 사실 이곳은 식당이라기보다는 농촌 로컬 푸드의 맛을 선보이는 농가 밥상 체험 장소이기에 하루에 최대 5팀
만 예약받아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사전에 꼭 예약하고 방문해야 한다.
여행자의 쉼터, 숲속 카페 ‘긴물찻집’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야만 닿을 수 있는 긴물찻집. 손수 지은 흙집 속 행복한 부부가 향기 좋은 야생 수제차를 만든다. 쑥,
생강나무, 작설차, 고욤잎, 서리 맞은 뽕잎 등 평소 접할 수 없는 귀한 백 가지 산야초 순을 뜯어 차로 덖어 사계절을 낸다. 직접 로스팅한 원두에 커피를 내
리고 인근 산속에서 철철이 피는 도라지, 맨드라미, 오이꽃을 따다 고르곤졸라 피자의 토핑으로 낸다. 한여름에는 직접 담근 오디청과 팥소로 만든 수제 오
디 팥빙수가 인기다.
필자에게는 장수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여행의 목적이 되는 카페다. 찻집 안 목탄 난로의 타닥타닥 장작불 소리가 공간의 속삭임이 될 때 100가지 새순으
로 만든 긴물차 한 잔을 마시면 어느새 몸과 마음은 온기로 가득해진다. 찻집을 나설 때 무심코 올려 본 하늘은 쏟아질 듯 별빛으로 가득하다. 아무것도 아
닌 날에 강렬할 만큼의 여운이 남아 다시 올 것을 다짐하게 되는 것. 그것이 여행의 낭만이다.
긴물찻집은 산 중 제일 높은 곳에 있어 폭설이 잦은 1월은 문을 닫는다. 봄소식이 오는 2월부터 재개장하니 방문전 전화 문의는 필수.
방화동 자연휴양림과 장수목장의 승마체험
방화동 자연휴양림은 언택트 여행으로 숲속 도보 여행과 차박을 즐기는 이들에게 안성맞춤 코스다. 장안산 기슭에 조성되어 있으며, 덕산계곡에서 방화동
계곡으로 연계되는 코스에 자연학습장, 모험 놀이터, 산림욕장 등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깨끗한 계곡을 따라 조성된 방화생태길은 울창한 숲의 절경과
계곡의 청량한 물소리를 들으며 편히 걸을 수 있다. 저렴한 가격의 숙박시설과 오토캠핑장, 물놀이장, 목재문화체험장과 체육시설이 있어 가족과 친구들
과 휴가를 보내기 좋다.
장수목장에서의 승마 체험도 즐겨보자. 장수는 말 산업 특구로 지정되어 승마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대한민국 내륙 최대 경주마 생산지인 장수는 실
내마장 및 야외 마장, 말 수영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혈통 좋은 종마가 관리되고 있다. 특히 승마의 대중화를 위해 전국 최고의 시설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승마를 체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