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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현장을 통솔하는 공장장이자, 30년 이상 기술을 닦아온 베테랑으로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그런데도 사고는 순간이었다. 전에 겪어보지 못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좌절과 절망이 교차하는 과정을 견디면서 꿋꿋하게 재활에 나선 덕분에, 임대규 씨는 사고 후 5개월 만에 일터로 복귀했다.

정리. 정라희 사진. 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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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못한 사고 앞에서

산재의 위험은 베테랑도 피할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작업을 준비하기 위해 직원들보다 한 걸음 앞서 향한 현장. 장갑을 끼면서 전기실에 들어가는데 순간적으로 바닥에 미끄러졌고, 이미 돌아가고 있던 모터에 손이 떨려 들어갔다. 바로 기계를 멈췄지만 이미 상처를 크게 입은 후였다. 절단된 손가락을 직접 수습해 바로 병원으로 향했지만, 수술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제까지는 어디선가 산재 소식이 들려도 남의 일이려니 했어요. 하지만 제가 다쳐보니 알겠더군요. 사고를 입은 직후에는 오히려 무덤덤했는데, 수술 후 종이컵 하나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어요. 그때는 저도 마음이 확 닫히더라고요.”

품질 관리에서 생산까지 현장에서 기술력으로 인정받아온 30년 자부심이 흔들리는 것만 같아 좌절감이 밀려왔다. 가족들에게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자신도 알 수 없는 분노가 들끓었다. 기대를 접고 냉담해진 그를 다시 일으킨 이는 다름 아닌 아내였다. 가장의 자존심에 홀로 끙끙 앓던 그를 대신해 근로복지공단에 전화를 걸어 상담 예약을 했다.

“아내가 ‘혼자서 힘들어하지 말고 근로복지공단에 가보자’고 말을 꺼냈습니다. 면담할 때도 아내와 함께 갔어요. 덕분에 조경숙 차장님에게 상담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5월 21일에 사고를 당하고 근로복지공단의 문을 두드렸을 때가 6월 말. 당시만 해도 경기도 파주는 조경숙 차장의 담당 지역이 아니었지만, 인연이 되려고 하니 임대규 씨의 상담을 맡게 되었다. 사실 첫 상담을 할 때만 해도 임대규 씨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고 후 한 달이 지나는 동안 수술받은 병원에서는 일반적인 물리치료 외에 ‘운동을 꾸준히 하라’는 조언만 반복했기에,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꺾여 있던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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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심어준 집중재활치료

그로부터 반년여가 지난 지금, 첫 대면 상담 당시 마음이 닫혀있던 임대규 씨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고양지사 재활보상부 조경숙 차장이 상담을 진행하며 가장 관심을 기울인 부분은 역시 치료였다. 용접과 제관 업무를 주로 수행했던 임대규 씨가 사업장으로 복귀하려면 손가락 기능이 더 회복되어야 했다.

“초반에는 수부 전문치료를 하는 병원과 연계했다가 수부 집중 재활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으로 한 차례 더 옮겼습니다. 무엇보다 선생님께서 직장에 복귀하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하셨어요.”

조경숙 차장은 재활특진을 지원하는 동시에 근로복지공단 인천병원으로 전원 신청을 했다. 더불어 집중 재활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를 연계했다. 임대규 씨는 8월부터 10월까지 12주 동안 매일 출근하듯 파주와 인천을 오가며 집중 재활치료를 받았다. 병원에서도 먼 거리를 오가며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 임대규 씨의 의지에 보답하듯 더욱더 치료에 전념했다.

“처음에는 인천까지 가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자주 만나는 물리치료사가 저와 종교가 같아 대화하면서도 힘을 많이 얻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그리고 며칠 시간이 흐르면서 움직이지 않던 손가락이 조금씩 구부러졌다. 어느 순간에는 주먹도 쥘 수 있게 되었고, 컵을 들고 놓는 것도 자유로워졌다. 더불어 사회 심리 재활 서비스를 받으며 조금씩 직장 복귀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해갔다. 그보다 먼저 산재치료를 받은 멘토를 만나 공감대를 형성하며 멘토링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보조기를 착용하고 일상을 소화하는 중이다.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섬세한 동작은 아직 어렵지만, 달라진 생활에도 점차 적응해가고 있다.

“집에 파라핀 치료기를 사다 놓고 꾸준히 재활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틈날 때마다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운동을 하고요. 불편하다고 해서 손을 자주 쓰지 않으면 오히려 기능이 퇴화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이 과정을 어떻게 이겨나가느냐가 중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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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희망이 큰 사람을 만든다

직장 복귀에 대한 강한 의지로 적극적으로 재활치료에 나선 덕분에, 임대규 씨는 집중 재활프로그램을 마친 직후인 11월 1일에 다시 회사로 출근할 수 있었다. 임대규 씨를 지원한 경험은 조경숙 차장에게도 남다른 보람을 안겨주었다. 희망을 잃지 않고 모든 프로그램에 성실하게 임하면서 회복해가는 임대규 씨의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적인 휴먼 다큐멘터리였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도 당사자가 싫다고 하면 어쩔 수가 없지요. 사고 이후에 마음이 더욱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분들도 있으시거든요. 임 선생님께서 모든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니 저도 덩달아 도와드리고 싶은 의지가 샘솟았습니다. 일하다 보면 근로자분과 진심이 통하는 순간이 있는데, 임 선생님께서 이번에 저에게 그런 희망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조경숙 차장은 좌절의 순간에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선 임대규 씨를 통해 ‘큰 희망이 큰 사람을 만든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조 차장은 이 사례를 맞춤형 통합서비스 우수사례 발표회에서 소개해 내일찾기 서비스 부문 대상을 받았다. 생산 과장으로서, 공장장으로서 현장을 총괄하던 임대규 씨가 돌아오자, 직장에서도 매우 반가워했다. 임대규 씨처럼 기술력을 지닌 베테랑 직원은 사업장에서도 놓칠 수 없는 인력이다. 임대규 씨 역시 일하는 보람을 새롭게 느끼고 있다. 오래도록 숙련한 기술을 통해 만든 신제품이 소비자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때의 뿌듯함은 일해본 사람만 안다.

“제가 딸이 셋인데, 막내가 늦둥이라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이에요. 막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일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회사에서도 정년 이후까지 임금피크제를 통해 근속해주길 바라고 있고요. 저 역시 다양한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퇴직 이후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사고 이후 임대규 씨는 예전보다 더욱더 강한 안전주의자가 되었다. 더불어 누구라도 산재를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위기는 있어도 절망은 없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그 역시 하루하루 새로운 희망을 충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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