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회 근로자문화예술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최원규 씨와
근로복지공단 복지계획부 고금용 과장
미술을 전공했지만 취업 후 붓을 내려놓은 지 어언 20여 년.
직장인으로 하루하루 성실하게 지내다
문득 옛 시절 꿈을 취미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캔버스 앞에 다시 앉으니 오래전 습작했던 경험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는 최원규 씨.
일과 삶 사이, 새로운 꿈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근로자문화예술제 국무총리상 수상이라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다시 붓을 들다 온라인 인쇄회사에서 품질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최원규 씨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일이다. 현재 직장으로 이직한 후 정시퇴근이 가능해지면서 오래도록 미루어왔던 취미생활에 개인 시간을 할애해보기로 했다. 직장인 취미 미술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직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동작업실을 두고 습작하는 모임이 있었다. 그렇게 그의 일상에 다시 그림이 찾아왔다.
“미술 쪽에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당시만 해도 미대를 졸업하고 나면 진로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결혼도 하고 부양할 가족이 있는데 제 꿈만 좇을 수는 없으 니까요. 그래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못다 이룬 꿈이 가끔 꿈틀거리기도 했다는 최원규 씨. 그래도 온라인 인쇄회사에서 품질 관리 업무를 하면서 나름대로 전공 덕도 보았다고 한다.
“예전에는 회사에서 맡은 업무를 처리하기도 바빴는데, 감사하게도 지금 직장에서는 근로자들이 일과 삶에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배려를 많이 해주세요. 덕분에 저도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퇴근 시간이 일정하니 그림 그리는 스케줄도 자율적으로 안배할 수 있고요.”
장기간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터라 처음 동호회에 나갈 때는 조금 걱정을 하기도 했다는 최원규 씨. 하지만 대학 입시에서 실기 수석으로 합격했던 실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학 시절, 입시 미술학원에서 5년 동안 강사를 했던 경험을 살려 동호인들에게 재능기부로 소묘를 전수하기도 했다. 회사와 집만 오가던 일상에 ‘그림’이라는 새로운 연결고리가 생겼다.
“회사에서 대중교통으로 서너 정거장만 이동하면 동호회 공동작업실에 갈 수 있습니 다. 동호회 이름이 ‘늦바람’인데 직장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취미로 미술을 시작한 분들이 많아요. 동호회 역사도 30년이 되었을 정도로 전통이 깊고요. 지금 25명이 활동하고 있는데, 서로 응원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화폭에 담은 어머니 소묘도 하지만 그는 주로 수채화를 그린다. 순간적인 감상이나 감흥보다 삶에서 부딪히는 장면 속에 담긴 또 다른 의미를 화폭에 담는다. 지난 몇 년 동안 최원규 씨가 집중했던 주제는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암 투병을 하다 2년 전 작고한 어머니를 추억하면서 연작을 그렸다. 연작 가운데 하나인 <엄마의 밤>이 근로자문화예술제 회화 부문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통한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최원규 씨. 동호회는 물론 회사에서도 그의 수상 소식을 듣고 진심 어린 축하를 전해왔다.
“그림을 다시 그리고 몇 년이 지나니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다 3년 전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근로복지공단에서 근로자문화예술제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첫 출품을 했을 때 입선하고 한 해 쉬고 이번에 다시 도전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상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를 주제로 한 그림이라서 더욱더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이었어요.”
국무총리상을 받은 <엄마의 밤>은 병상에 누워 있는 어머니의 일상을 표현했다. 심사위원들은 회화 부문에 접수된 작품의 면면을 보면서 “주제와 구도, 색채감을 우수하게 표현한 작품을 수상작으로 정했다”고 심사평을 남겼다. 최원규 씨는 어머니를 주제로 한 연작을 계속해서 그려 나갈 계획이다. 앞으로 1~2년 안에 개인전을 열고 싶은 바람도 있다. 언젠가 개최할 첫 개인전 타이틀도 ‘어머니의 밤’으로 정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면서 어머니를 떠나 보내고 가라앉았던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차근차근 작품을 모아가는 중입니다.”
근로자에게 의욕을, 직장생활에 활력을 근로복지공단과 고용노동부, KBS한국방송에서 주최하는 근로자문화예술제는 1980년에 시작해 어느덧 41회를 맞이한 전통 깊은 예술제다. 최원규 씨가 수상한 미술 분야 외에도 가요, 연극, 문학, 영상 등 다양한 부문이 개설되어 있으며, 참가신청일 기준 근로자라면 누구든지 작품을 출품할 수 있다. 복지계획부 고금용 과장은 근로자문화예술제가 “국내에서 예술인이 아닌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거의 유일한 전국 단위 공식 문화예술제”라고 이야기한다.
“근로복지공단에서 하는 일이 고용보험이나 업무상 재해 입은 근로자들을 위한 재활과 사회 복귀를 돕는 데 집중되어 있는데요. 근로자들이 꿈을 펼칠 장이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이 행사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가자들이 출품한 작품 하나하나를 보는 일이 저에게도 큰 보람입니다.”
2019년 4,260명이 참가한 근로자문화예술제는 2020년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한계 속에서도 3,777명이 참여했다. 미술 분야에는 1,261점이 출품되었다. 전례 없는 코로나19 상황으로 가요 분야에서는 온라인 심사를 전면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가요제와 연극제 결선은 무관중 으로 진행했다.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제이기에 담당자로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은 참가 자격 확인. 더불어 공정한 심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심사위원 위촉에도 관심을 쏟았다. 더불어 40년 넘게 지속된 근로자문화예술제의 필요성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도 마음 한편에 두었다. 최원규 씨에게 근로자문화예술제는 인생의 또 다른 터닝포인트다. 직장생활에 매몰 되어 있던 일상에 새로운 변화의 계기일 뿐만 아니라, 동기부여까지 된다는 것. 그래서 더욱더이 행사가 계속 유지되어 더 많은 근로자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지나고 보니 그림을 직업으로 삼았다면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그림을 그렸을 것 같아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림을 병행하니 오히려 온전한 제 그림을 자유 롭게 그릴 수 있어요. 근로자들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찾아주고, 꿈을 향한 동기를 전해주는 근로자문화예술제가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