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읽어드립니다
왜 달리는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 조지 쉬언 <달리기와 존재하기>

sub_writer_deco한재우

 

내 참된 목표는 아프지 않겠다거나 병에 걸리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나는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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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쉬언은 미국의 심장병 전문의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평가하길 ‘가늘고 소심하며 절대로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라고 했다. 그의 아내조차 남편을 일러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단언할 정도였다. 이렇게 바깥보다는 내면을 향한 시선이 강했던 조지 쉬언은 갑자기 많은 사람들로부터 ‘무인도에 떨어져도 함께 있고 싶은 사람’으로 꼽힐 정도로 찬사를 받게 된 것은 마흔 중반에 시작한 달리기 덕분이었다.
운동화를 꺼내 신은 계기는 흔히 그렇듯 건강이었다.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 직업인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대학시절에 했던 운동인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목표가 생기자 강한 몰입이 이어졌다. 5년 뒤 조지 쉬언은 1마일을 5분 만에 달릴 수 있었다. 60여 회에 걸친 마라톤 완주와 3시간 1분의 최고 기록도 달성했다. 그런 중에 1968년부터 한 지방신문에 달리기에 대한 칼럼을 썼는데, 그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달리기에 대한 의학적인 조언과 함께 그가 달리기를 계속하는 이유에 대한 생각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적어도 나는 삶의 리듬을 찾으려고 할 때,
영혼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할 때 달리기보다 더 좋은 방법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언제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고 느낄까. 삶이 혼란스러운 근본적인 이유는 돈이 없거나 건강을 잃어서가 아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한 원인이 될 수는 있겠지만 원인의 전부일 수는 없다. 핵심적이며 절대적인 원인은 질서의 부재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 이번 생을 시작해서 마칠 때까지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모르는 것. 질서가 없으면 목표가 없고, 목표가 없으면 온 마음을 쏟아부을 대상이 없다. 전심을 다하지 못할 때 내 안의 에너지는 흐름을 잃는다. 활력이 없는 삶, 존재가 흐려진 삶, 곧 왜 사는지 모르는 삶이다.
조지 쉬언은 그 해답을 달리기에서 찾았다. 우선은 매일 달린다고 결심하는 것이 먼저다. 매일 달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매일 연습을 해야 한다. 연습은 집중이다. ‘한 걸음 한 걸음, 한숨 한숨, 한 마일 한 마일을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가운데 매 순간해야 할 일이 생긴다. 혼란이 사라지는 것이다. 일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이보다 더 단순한 방법이 어디 있으랴. 일상에 질서가 생기면 삶에 리듬감이 느껴진다. 리듬감은 즐거움이자 기쁨이다. 사는 맛이다. 내일의 소풍을 기대하며 잠드는 아이처럼, 내일의 달리기를 기대하며 잠들 수 있다면 매일이 천국까지는 아닐지라도 그 비슷한 것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세상에 시시한 일이란 없다.
시시한 사람이 존재할 뿐이다.
<달리기와 존재하기>는 운동에 대한 철학 에세이다. 글 안에는 플라톤이니 오르테가니 키에르 케고르니 하는, 딱딱한 장르만큼이나 딱딱한 이름들이 수시로 등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운동과 철학’이라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는 재미는 상당하다. 마치 조깅할 때 조금만 더 달리고 싶은 욕심처럼, 책의 다음 문단을 조금만 더 읽고 싶은 마음이 솔솔 올라온다. 주의력을 잡아끄는 특별한 흡입력은 아마도 조지 쉬언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집중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선이 자신의 내면을 향해 있는 사람, 조지 쉬언은 달리는 내내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누구도 대신 대답해 주지 않는 질문, 언젠가는 스스로 도달해야 하는 질문이다. 몸을 단련한다고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답을 향한 힌트는 얻을 수 있다고 조지 쉬언은 말한다.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자신에게 맞는 스포츠가 무엇인지 먼저 알아내라.
달리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달리기를 시시하게 여기지 않을 때우리는 존재의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열정이란 말의 라틴어 어근은 ‘신이 자신의 내면에 가득하다.’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부엌으로 가라. 거기에도 신은 계신다.’라고 했다. 두 다리를 움직이는 그 간단한 일을 온 힘을 다해 제대로 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자기 자신에 도달할 수도 있음을 <달리기와 존재하기>는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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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읽어드립니다>에서는 ‘재우의 서재’ 대표 한재우 작가가 독자 분들이 읽으면 좋은 책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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