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함께
마음에도 치료가 필요하기에
- 한국가족상담연구소 김희경 상담사와 산재노동자 최태섭 씨
마음 따라 몸이 간다는 말도 있고, 몸 따라 마음이 약해진다는 말도 있다.
그런 만큼 건강한 심리 상태에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일상이 뒤흔들릴 정도의 신체적 부상을 당하면 마음상태가 평소 같지 않은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치료를 받는 산재노동자들에게 심리상담을 지원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단순히 내 마음에 있는 고민을 털어놓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차분하게 되돌아보고 마음의 힘을 키우는 것까지가 심리상담의 목적인 것.
그런 점에서 최태섭 씨의 상담기는 그 자체로 근로복지공단 심리상담의 좋은 예다.

sub_writer_deco김희정사진 전예영

 

외상 후 스트레스,
서서히 녹여나가다
최태섭 씨가 사고를 당한 것은 2016년 3월. 사다리에서 떨어지면서 대퇴부와 고관절 부위가 부러지는 사고를 겪었다. 수술을 받았지만 고관절에 괴사가 일어나면서 인공관절 수술까지 받아야 했고, 2018년까지 세 번의 수술을 받다 보니 불안감은 날로 커져만 갔다. 이런 최태섭 씨에게 상담프로그램을 제안한 것은 근로복지공단의 담당 직원. 불안한 마음도 도움을 받고, 멘토링을 통해서 그 상담 경험을 나누는 것도 좋지 않겠냐는 말에 최태섭 씨도 결심을 굳혔다.
“처음에는 상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몰랐는데, 이야기를 잘 들어주셔서 생각보다 더 편하게 상담을 받았어요. 억지로 제 이야기를 캐내는 것도 아닌데 말이 술술 나오더라고요. 하다 보니 옛날 일도 거부감 없이 말하게 되고요.”
이렇게 최태섭 씨가 마음을 열고 말을 하게 된 데에는 한국가족상담소 김희경 상담사의 철저한 준비도 있었다. 단 10번 진행되는 상담인 만큼 상담자와 공감대를 쌓고 마음의 힘을 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리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정보로 상담자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보통 저희 상담소를 찾아오시는 분들은 심리적 갈등의 어려움을 안고 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산재노동자 분들은 신체적 고통이 동반된 어려움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런 점에서 상담소가 실질적으로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항상 알고 있는 것도 일의 시작이에요. 근로복지공단 담당 직원 분께서 사전에 최태섭 씨의 상황과 주의해야 할 부분 등에 대해 꼼꼼하게 알려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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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때 말하는 사람이 편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나간 일은 똑같아도
바라보는 내 자신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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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족상담소라고 하면 어쩐지 가족상담이나 부부상담만을 위주로 찾아야 할 것 같은 인상이 든다. 그러나 협력사업으로 근로복지공단 산재노동자 심리 재활 상담과 자살유족 심리 상담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최태섭 씨와 김희경 상담사의 인연이 닿았다.
“최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자주 하는 말씀이 자기가 인생을 잘 못 살아서 이런 일을 겪는다는 것이었어요. 그런 가운데에서도 지금의 상황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도 보이고 산재노동자들의 멘토 활동을 하시면서 자기가 경험한 어려움을 발판 삼아 다른 사람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주려는 태도가 인상적이었죠.”
최태섭 씨는 그 이전까지 나름대로 성공적인 삶을 살다가, 몇 년 사이에 예외적인 상황을 겪은 상황이었다. 그간 추진력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자신의 한계를 느끼면서 더욱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
“이혼을 해서 혼자 살고 있었고, 사업을 실패한 뒤 일을 하다가 다친 상황이라 정말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어요. 혼자 움직이기가 이렇게 힘든데, 내가 내 의지대로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정말 자주 들었어요.”
이런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된 것은 꾸준하게 상담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통해서였다. 특별히 문제가 있어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니라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 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것도 더 쉬워졌다. 스스로를 다독이고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계획을 세우려는 최태섭 씨의 자세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사고를 당한 것이 본인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으로 분리하면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번 상담의 중요한 과정이었어요. 사실 힘들게 수술하고 몸이 고단한 상황에서는 스스로가 정서적으로 자신을 지지하지 않으면 마음이 힘들거든요. 또 삶을 돌아보면서 가족안에서 요구 받았던 역할과 정서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들여다보며 마음 속 가족과 화해하는 시간도 가지셨고요.”
상담과정을 마친 뒤 최태섭 씨가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는 점은 사람을 상대하면서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때 말하는 사람이 편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 이를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최태섭 씨의 상담 과정동안 김희경 상담사가 진심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을 느꼈기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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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최태섭 씨의 상담 과정동안
김희경 상담사가 진심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긴 겨울이 지나고,
다음 봄을 기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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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일의 상담을 마지막으로 최태섭 씨와 김희경 상담사의 심리 상담도 끝이 났다. 몸도 마음도 나아지면서 상담 후반쯤에는 다시 일을 시작해 멀리 가서 일하느라 다소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다는 것이 유일한 애로사항이었다고. 이전에는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심리적 고통도 함께 따랐지만, 이제는 그저 안고 가야할 또 다른 요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2019년 11월까지는 일을 했는데, 3개월 정도 일을 쉬고 가까운 데도 여행하면서 시간을 보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더 쉬게 되어버렸네요. 사실 제 나이 때는 일을 하고 싶어도 쉽지 않고 남들보다 에너지도 더 쏟아서 하게 되는 부분이 있긴 하거든요. 그렇게 힘을 쏟다 보니 가끔은 쉬면서 시간을 만들었을 때 여행을 통해 많은걸 느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이제는 정말 제 마음이 많이 편해진 것 같아요.”
김희경 상담사도 뿌듯함을 느끼기는 매한가지다. 산재를 당하면 몸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정서적 지지를 보내는 일 역시 항상 간단하지만은 않기에 더 보람이 느껴지기 마련. 특히 최태섭 씨의 마지막 상담에서 그가 했던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고.
“최태섭 씨가 상담을 마무리 하면서 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간 느낌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이제는 세상을 즐거운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고도 하셨고요. 그러면서 세상을 사는 나 자신을 위해서 파이팅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행복하게 생활하시길 응원하게 되었어요. 저와 저희 센터 역시 산재노동자분들과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앞으로도 도움을 드릴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