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읽어드립니다
젊은 천재의 분야에서 거둔 평범한 늦깎이의 성공
- 히로나카 헤이스케 <학문의 즐거움>

sub_writer_deco한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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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리켜서 두뇌가
명석하다고 말해주시는 것은
대단히 기쁩니다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학문의 즐거움>은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자서전이다.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노벨상에는 수학 분야가 없다. 대신 수학 분야에서 노벨상과 비견되는 권위를 가진 것이 필즈상. 이 상은 4년에 한 번씩 수여되는데 40세를 넘지 않은 사람에게만 준다는 특별한 조건이 붙어 있다. 헤이스케가 ‘특이점 해소’라는 논문으로 필즈상을 받은 나이는 37세로, 거의 최고령에 가까운 나이였다.
필즈상 수상자가 됨으로써 세계적인 석학의 반열에 오른 것이기는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남다른 천재’와는 퍽 달랐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했고, 대학교 3학년 때 이르러서야 뒤늦게 수학을 전공하려는 결심이 섰으며,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주위의 특출한 학생들을 보며 끊임없이 자신의 평범함을 확인해야했다. 세계적인 업적을 이룰만한 기미도, 번뜩이는 타고난 재주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는 결국 필즈상 수상자와 하버드대 교수라는 최고의 자리에 섰을까. 그것은 그가 학문과 삶을 대하는 남다른 태도를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역경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소박한 끈기다.
한 인간의 가치는 역경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가 하는 데서 나타난다.
헤이스케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역경을 대하는 자세를 배웠다. 상인이었던 헤이스케의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인물로서 직물 도매상과 공장을 경영하며 부를 쌓았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점령한 뒤에 만주를 침략하던 즈음의 일이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는데, 전쟁 후의 인플레이션과 농지개혁까지 겹쳐 그 많던 재산은 순식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인상적인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모든 것이 사라진 직후에도 헤이스케의 아버지는 그다지 당황하거나 좌절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렇지 않은 듯 이른 아침에 도시락을 싸들고, 자전거에 직물을 실어 행상을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인생은 결코 햇살만 계속될 수는 없다. 사업이든, 학문이든 마찬가지다. 역경은 뜻밖의 경우에 닥치기 마련이나, 그것에 제대로 대처하기는 쉽지 않다.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어제의 영광에 집착하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은 지혜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주인 나리’에서 하루아침에 ‘행상하는 처지’로 바뀌었지만 아버지의 당당함만은 그대로였다. 헤이스케가 뒤늦은 출발, 잘 나가는 동료들, 논문이 풀리지 않을 때의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노력할 수 있던 것은 역경에 굴하지 않는 자세 덕분이었다.
나는 한 가지 문제를 택하면 처음부터 남보다
두세 배의 시간을 들일 각오로 시작한다.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난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도무지 노력을 안했다. 왜 공부를 하지 않느냐고 질책했을 때, 그가 아무렇지 않은 듯 ‘나는 바보니까요.’라고 대꾸했다. 할 말이 없게 만드는 답이었다. 다른 핑계거리를 댔더라면 계속 추궁을 할 수 있었겠지만 스스로 ‘바보’라고 자인하는데, 무의미한 분노와 짜증은 접어두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의 경험이 헤이스케에게는 큰 깨달음으로 찾아왔다. 연구를 하다보면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수시로 생긴다. 막혀서 풀리지 않는 경우도 있고, 지금까지 쌓아온 노력이 헛수고인 경우도 있다. 화가 치밀어오를 무렵 헤이스케는 스스로 되뇌었다. ‘나는 바보니까요.’
바보니까 틀릴 수도 있다. 바보니까 한 번에 안 되는 건 당연하다. 시행착오 없이 척척 해내고자 하는 건 욕심이다. 헤이스케는 이런 자세를 ‘소박한 마음’이라고 불렀다. 소박한 마음으로 임할 수만 있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없다. 그 상태에서 그저 끈기 있게 노력할 뿐이다. 뒤늦게 자신보다 뛰어난 동료들을 무수히 보았던 헤이스케는 아예 처음부터 자신의 평범함을 인정해버렸다. 남들보다 두세 배쯤 시간을 들일 각오를 가지고 그저 묵묵히 연구에 매진했다.
흔히들 수학은 젊은 천재의 학문이라고 한다. 영국의 전설적인 수학자 하디는 ‘50세 이후로 새로운 정리를 발견한 수학자를 본 일이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수학이라는 분야에서, 천재도 아니었고 상대적으로 젊지도 않은 나이에 탁월한 성과를 낸 헤이스케를 보면서 어디에서든 성공을 향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역경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소박한 끈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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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재우의 서재> 대표
유튜브 <재우의 서재>를 통해 감동 깊게 읽은 책을 나누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