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만남
“정상도 산을 오르내리는
과정의 하나일 뿐이에요.”
- 「아무튼, 산」 장보영 작가
얼마 전 ‘아무튼, 산’을 펴낸 장보영 작가는 25살에 지리산을 오른 후부터 산에 매료되었다.
국내의 크고 작은 산들뿐만 아니라 히말라야 등 세계의 유명한 산들을 등반했고,
이제는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을 하며 산을 다양하게 즐기고 있다.
산이 삶이 된 장보영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sub_writer_deco김주희사진 한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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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재는 책을 쓴 작가지만, 첫 직장은 출판사에서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어요. 졸업 후엔 전공을 살려서 중견 출판사에 편집자로 일하게 되었죠. 처음엔 직장인이 됐다는 생각에 마냥 즐거웠어요. 직장인이 되니까 날마다 내가 할 수 있고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게 좋았었죠. 그런데 그 시간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어요. 일 년 정도 지나자 반복되는 날들이 무료하게 느껴졌고 내가 만난 세상을 내 언어로 표현하고 싶다는 갈증이 쌓여갔어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을 때 운명처럼 산이 다가왔어요.

Q) 힘든 시기에 왜 산이었을까요?

문득 산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나이게 했던 모든 것을 넘어서야지만 내가 원하는 것에 가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할까요. 시작은 지리산이었는데요. 사실 아는 산이 지리산밖에 없어서 결정한 것도 있지만, 지리산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어요. 사진으로 본 지리산은 정말 장관이었죠. 말 그대로 산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았고 산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초보였지만 지리산 화대종주를 할 계획을 세우게 되었어요.

Q) 산에 올라본 경험이 없는 초보인데, 지리산 화대종주가 쉽지 않았을 듯해요.

화대종주는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45km에 이르는 주능선 위 봉우리들을 연달아 오르내리는 길이에요.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 당시 싸이월드 산악회에 가입을 했죠. 마침 화대종주를 함께할 산행 멤버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지원을 했는데, 지리산은 등산을 많이 해본 사람에게도 매우 혹독한 산이라며 거절을 당했어요. 그래서 에잇, 혼자라도 가보겠다는 생각에 등산장비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다시 연락을 받았죠. 한 자리가 비었다면서 함께하겠느냐고요. 당연히 함께하겠다고 하고, 바로 짐을 꾸려서 처음 본 사람들과 지리산에 올랐는데... 정말 들었던 것처럼 혹독했어요. 하하. 초보인 저를 배려해서 비교적 쉬운 산행코스로 변경했는데도 말이죠.

Q) 처음 올라본 지리산은 어떻던가요?

근육통으로 욱신거리는 다리로 사흘 동안 끊임없이 산을 오르내리고 침낭에서 잠을 청하고... 정말 힘들었지만 지리산에 올라 처음 마주한 일출, 늦은 밤 올려다 본 짙은 하늘과 무수한 별들은 무척 아름다웠어요. 정상에 올라 다른 산의 능선을 바라보면서 여기가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지리산을 종주한 후에도 제 생활엔 큰 변화가 없었지만, 제 마음 깊숙한 곳에는 새로운 꿈이 자라고 있었어요.

Q) 산을 하나도 모르던 초보에서 히말라야 등반까지 하게 되셨죠. 그 과정이 궁금해요.

지리산을 종주한 후엔 주말을 이용해서 전국의 국립공원 산들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산도,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좋았죠. 산을 오를수록 그 다음에 오를 산이 또 있다는 게 더 기대되고 기뻤어요. 그러다가 점점 더 높은 산에 오르고 싶어졌고 히말라야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산을 오르다보니 히말라야에 다녀왔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거든요. 히말라야라고 하면 마치 남극이나 북극처럼 머나먼 느낌이었는데, 같이 산을 다니는 사람들이 갔었다고 하니 저도 못갈 이유가 없었죠. 그때부터 히말라야에 푹 빠져서 살았어요. 일을 하는 중간에도 히말라야 사진을 한 번씩 볼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지내다 퇴사를 결심하고 일주일 만에 퇴직금으로 네팔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어요. 2달 일정이었지요.

Q) 히말라야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있어요. 쉽게 상상이 안 되는데, 히말라야 트래킹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히말라야도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칸첸중가, 로체 같은 트레킹 코스가 있어요. 그 중 안나푸르나에 오르겠다고 계획했어요. 가장 긴 라운딩 코스가 보름 정도 걸리는데 저는 길게 2달을 잡았죠. 그런데 안나푸르나에 오르니 길이 계속 이어졌어요. 이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보이고... 물가가 저렴해서 퇴직금이 남아있으니 돈이 떨어질 때까지 가보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산을 한 번 이어보자는 생각이었죠. 계속 여비를 환전하면서 안나푸르나에 이어 인도의 히말라야로 넘어갔어요. 네팔의 히말라야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죠. 그렇게 2달이었던 일정이 6개월로 늘어났어요.

Q) 그토록 바라던 히말라야를 마주한 느낌이 어땠나요?

컴퓨터 모니터로 봤던 히말라야는 동경할 수밖에 없는 이미지였어요. 만연설과 광활한 자연 속에서 자유로워 보이는 사람들... 저도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었죠. 비장한 마음으로 갔는데, 현실은 너무 춥고 아프고 힘들었어요. 제 자신이 못나고 초라해보였죠. 산은 정말 냉정한 자연이었고, 나는 그 아래 정말 작고 보잘것없는 한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처음의 호기로움은 많이 사라지고 많이 울고 아파했었죠. 제 한계를 느꼈던 것 같아요.

Q) 6개월이라는 긴 히말라야 트래킹에서 깨닫게 된 게 있을까요?

그전에 산에 오를 때는 항상 사람들과 함께였어요. 저 혼자였던 건 히말라야가 처음이었죠. 혼자 트래킹을 하면서 앞뒤로 아무도 없을 때가 있었는데 보통 사람들이 ‘내가 나를 만난다’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저는 그때 처음 그걸 느꼈어요. 온전히 나 자신을 만나는 공간이었죠. 살면서 그런 곳이 많이 없는데, 히말라야에서 내가 몰랐던 나, 내가 몰라줬던 나를 자꾸 만나게 되었고 그 시간이 무척 좋았어요. 사실 네팔로 떠나오기 전까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면서 나를 희생하는 느낌이었어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어서 나를 뒤로 미뤄둘 때가 많았죠. 그런데 히말라야에서 내가 어떤 걸 좋아했고 어떤 건 싫어했고, 어떤 걸 할 때 가장 행복하고 어떤 걸 못 견디는지 알아갈 수 있었어요. 거창한 말이지만 본연의 나, 순수한 나를 만날 수 있던 공간이었고 치유의 시간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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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처음 히말라야에 다녀오고 5년 후에 다시 가셨다고 들었어요.
5년 후의 히말라야는 또 다르던가요?

처음 걸었던 길을 되짚어 가면서 내가 5년 전에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걸었는지, 지금 나는 이런 걸로 힘들어하고 또 이런 걸 기대하는구나 되돌아보는 시간이었어요. 한 달 동안 다녀왔는데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 사람이 그리워지거든요. 다녀오고 나서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고 집중하게 되었어요. 삶에 충실하게 되고, 애틋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산을 찾지 않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정말 소중한 시간들이에요.

Q) 수많은 산을 올랐지만, 프랑스의 몽블랑 트래킹은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왔어야만 했어요. 7개월가량 준비를 하면서 갔던 곳인데, 정상에 오르지 못했을 때는 어땠나요?

정상의 의미는 네팔에서도 많이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무엇이든 이분법으로 ‘과정’과 ‘목표’가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 같아요. 점이 계속 모여서 선이 되는 것처럼 ‘정상’도 하나의 점일 뿐이에요. 안나푸르나를 오를 때도 ‘정상의 멋진 나’를 생각하면서 갔었어요. 그런데 안나푸르나에서 사람이 올라갈 수 있다는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보니 주변에 더 높은 산이 있더라고요. 결국 그곳은 내가 올랐던 곳에서 가장 높은 곳, 스쳐가는 곳일 뿐이었어요. 정상이라고 해서 깊은 감동을 받지 못했고 시시하고 허탈했었죠. 그때 내가 지나온 과정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어요.

Q) 대부분 정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달성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요.

맞아요. 몽블랑에서 저는 정상을 가지 못했으니 아직도 직접 본 정상의 모습이나 느낌을 몰라요. 내려가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네팔에서의 경험이 있었기에 괜찮았어요. 힘들게 올라가서 정상에 섰을 때 환희보다는 허탈함이 더 크다는 걸 알았죠. 정상에 뭔가가 있을 거야, 다를 거야 이런 건 없었어요. 사실 정상도 끝이 아니거든요. 올라온 만큼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끝이 아니고, 가장 높은 곳일 뿐이에요. 정상만을 바라보면서 올라갔다 해도 다시 내려갈 힘을 남겨놓지 않으면 내려갈 수 없는 것처럼... 그런 것에 대한 큰 의미 부여에서 놓여난 것 같아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산이 있으세요?

인터뷰할 때 가장 어려운 질문이에요. 마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런 것처럼요. 모든 산은 저만의 매력이 있어요. 뒷산에도 아기자기한 멋이 있고 지리산 같이 유명하고 큰 산은 이래서 명산이구나 라는 매력이 있어요. 하지만 현재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 일본에 갔을 때 산을 깨끗하게 잘 지켜나가면서 즐기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장비나 옷차림도 간소하게 하고 산을 즐기는 소박한 모습이 좋았어요. 산악잡지 같이 산으로 파생된 문화도 많고요. 저도 우리나라에 그런 산악잡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사명을 갖기도 했었어요.

Q) 산에선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나잖아요. 우리의 삶과 비슷한 것 같아요.
삶에서 예측하지 못한 일들을 겪고 힘든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요?

산을 삶에 비유하고는 하지만, 삶이라는 건 주름이 더 깊겠죠. 단순히 산을 오르고 이런 것에 현재 삶이 힘든 분들을 감히 비유할 수 있을까 싶어요. 그 삶은 정말 지독하고 힘들거예요. 어떤 위로를 할 수 있을까 쉽게 그려지지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린다면, 산의 오르막은 정말 힘들어요. 언제 오르막이 끝날까, 끝은 날까...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지만, 계속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능선에 올라와 있고 능선이 계속되면 정상에 올라요. 그리고 또 내리막도 만나게 되지요. 힘들지만 내게 주어진 상황을 견디고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 지나가는 것 같아요. 삶에서 어려운 부분을 만났을 때 고통이 굉장히 크겠지만 묵묵히 견디고, 연대하는 가족과 동료들과 함께 산을 넘는 것처럼 견뎌내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