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함께
내 손으로 만들어가는 희망, 섬세하고 정교하게 빚어나가다
- 대전병원 의료사회복지사 이수연 대리와 산재노동자 이응식 씨
우리 몸은 소중하지만 그 소중함을 깨닫기란 쉽지 않다.
어딘가 아픈 곳이 생기거나 다치고 나서야 몸의 어느 한 부분도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특히 손과 같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부위를 다친 경우엔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물론 심리적인 위축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인생을 개척하려는 용기와 이를 도와줄 수 있는 전문가들의 도움이다.
예상치 못했던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하고 큰 아픔을 겪은 이응식씨와
근로복지공단 대전병원 재활치료사 의료사회복지사 이수연 대리는 이러한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함께 힘을 내었다.

sub_writer_deco김주희사진 황성규

 

건설 현장의 사고, 인생의 궤도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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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건설 현장, 특히 고층 건물을 올리는 현장에서 펌프카는 빠질 수 없는 건설 기계다. 물과 잘 섞은 시멘트나 콘크리트를 펌프카의 파이프를 통해 고층에서 안정적으로 타설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타설 작업이 끝난 뒤에 내용물이 파이프 안에 엉겨 붙지 않도록 고압 호스로 물을 쏘아 청소하는 것도 펌프카 기사의 업무 중 하나다. 그 일상적인 과정에서 이응식 씨가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할 거라고는 본인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온갖 일을 하다가 정착한 것이 펌프카 기사였어요. 1년에 8개월만 일해도 돈을 괜찮게 버니 오랫동안 일을 했죠. 그날도 물 호스로 파이프를 청소하는데 수압이 약해서 잔여물이 잘 나오지 않았어요. 원래 나뭇가지로 실린더 안의 잔여물을 빼려고 했는데, 나뭇가지가 없어서 손가락을 넣었다가 기계 오작동으로 실린더에 손가락이 잘린 거죠.”
왼손의 손가락이 4개나 잘리는 큰 사고였던 만큼 수술도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2019년 12월 4일 사고를 당해 7차례의 수술을 받으면서 상처 부위는 어느 정도 안정되었지만, 손가락의 시리고 아픈 증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일하던 회사에서 병원비도 주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가슴을 쓰라리게 했지만, 그의 마음을 한층 무겁게 만든 것은 평생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건축 장비 기술을 더는 쓸 수 없다는 점이었다. 아픈 손을 생각하면 몸이 떨리고 눈물만 났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든 적도 있어요. 어머니는 아예 오지도 못하게해서 지금까지 제 손을 못 보셨죠. 수부재활심리회복프로그램을 이수연 대리님이 추천하셨을 때도 내적 갈등이 심했어요. 저한테 두 번 연락이 왔을 때도 이런 걸 내가 왜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세 번째로 전화가 왔을 때는 ‘그래,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심리적 어려움과 손 기능의 회복을 노리다
대전병원 재활전문센터 수부재활심리회복프로그램은 최근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미래형 3D펜과 3D프린터, 자연의 목공을 융합하여 수부손상환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종결 후에라도 취미로, 더 나아가 새로운 직업모색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활동이다. 이응식 씨에게 이 프로그램을 권유했을 때 이수연 대리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걱정이었다. 수부환자에게 재활치료의 일환으로 공예에 도전해보라고 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부정적이던 이응식 씨는 프로그램에 참여할수록 즐거워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환자들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확인하고 자존감을 유지하도록 계획을 수립하는 게 제 업무 중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래서 이응식 씨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쉽게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내면서 작품들을 하나씩 완성해 나가시는 게 참 고마웠어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나 다친 손 상태를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지요. 본인의 치료 계획을 세우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지만 앞으로 다른 환자들을 대할 때도 어떻게 하면 좋겠다 라는 이정표가 되어주셨어요.”
3D펜은 점, 선, 면이 모여서 입체적인 물체를 만들 수 있는 반면에 3D프린터는 소프트웨어에 입력된 설계를 출력해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기계다. 각각 다른 방식의 세밀한 작업을 통해 저하된 손 기능을 자극하고 자신이 물건을 만들었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는 점이 재활치료에 적합했다. 반면 목공은 목재를 가공하고 조립하는 과정에서 실물의 감촉을 느끼며 작업을 하는 세밀한 과정이 손 기능 회복에 도움을 주었다. 처음 하는 작업이 생소하고 좌절감만 들지않을까 걱정했던 이응식 씨도 한 회 한 회 참가하면서 걱정이 녹아내리는 듯한 감각을 맛봤다.
“일주일에 두 번씩 펜이나 다기능거치대, 소품바구니 등을 만들면서 우울함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어요. 방에서 텔레비전만 보는 것보다 훨씬 즐거운 취미가 되었죠. 가족들이 일을 나가면 집에 혼자 있으니까 힘들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내 손만 보는 것 같아 사회생활도 꺼려졌는데 밖으로 나갈 용기가 나더라고요.”
또 다른 진로의 고려, 재활 프로그램에서 미래를 보다
이응식 씨가 재활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이수연 대리가 느낀 점은 이응식 씨가 매우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이라는 점이었다. 손의 통증도 여전하고 날씨가 변하면 상처가 시리기도 했지만, 3D펜을 이용하는 모습만 봐도 세밀한 작업에서 집중력을 발휘하는 점이 남달랐다. 손의 기능이 얼마나 돌아왔는지 가늠해보기도 좋았다. 3D펜을 사용하다가 목공으로 넘어갔을 때는 이러한 강점이 한층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재료를 다듬고 깎아내는 과정에서 손의 힘뿐만이 아니라 온몸의 힘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마무리까지 꼼꼼하게 해낸 것이다.
“손의 통증이 간헐적으로 발생될 때도 있고 힘도 들었지만, 다양한 작업에 몰두하면서 내 손가락의 일부가 없어졌다는 것을 잊어버릴 때도 있었어요. 가족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었는데요. 작업치료를 해주시는 선생님이 정교하게 물건을 만드는 솜씨가 늘었다고 칭찬해 주셨을 땐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다른 운동치료를 할 때는 손의 감각을 세밀하게 인지하기가 힘들었지만, 사포로 목공예품을 문지르는 마무리 과정에 들어갔을 때는 달랐다. 어떤 손가락이 뭉뚝하게 느껴지는지 어떤 손가락은 목공예품의 고운 나무결을 민감하게 인지하는지 알 수 있었다. 꾸준한 반복 운동을 하다보니 이를 통해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용기를 낼 수도 있었다. 가족들이 작품을 받고 멋있다고 말할 때는 인정을 받는 기분이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우는 등 심리적 안정에도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이응식 씨가 꿈꾸는 것은 전문적으로 목공을 배운 뒤 공방을 차리는 것이다. 가장으로서 다시 어떤 일을 할까 고민도 많았지만, 전문적으로 배워서 남들이 하지 않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목공에서 강점을 지닐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다양한 질감의 나무들을 깎아내고 개량 옻칠까지 하며 색을 입혀내는 과정을 오롯이 해냈다는 것도 있지만, 컵받침이나 미니 다육이화분, 스툴, 다기능 거치대 등 남들이 쉽게 하지 않는 다양한 작품을 한 것도 자신감의 원천이 되었다.
“처음에는 하기 싫었고 마지못해 시작했지만 프로그램이 끝나는 날 ‘이 프로그램을 참여하지 않았다면 엄청 후회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끝까지 참여하게끔 해주신 이수연 대리님에게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른 수부환자 분들도 꼭 참여하셨으면 좋겠어요.”
이수연 대리도 이번 재활프로그램을 통해 여러모로 느낀 점이 많다. 처음에는 프로그램을 제안하면서 심적으로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이응식 씨가 힘들다는 내색 없이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이뤄내는 것을 보면서 큰 배움을 얻었다.
“이응식 씨가 처음에는 긍정적인 반응이 아니셔서 솔직히 걱정을 했었는데 끝까지 힘들다는 내색 하나 없이 웃으면서 참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다른 환자 분들도 용기를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Interview

 


수부재활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대전병원 재활전문센터는 충청권의 산재환자를 위한 의료, 사회, 심리, 원직장복귀 등 포괄적인 재활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수부집중재활치료는 대전병원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프로그램으로 많은 산재환자들이 이를 통해 회복한 후 성공적인 사회복귀를 하고 있다.
수부재활심리회복프로그램을 기획한 대전병원 재활전문센터 이상숙 센터장을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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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병원 재활전문센터 이상숙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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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어떻게 수부재활심리회복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셨나요?
손은 전체 몸의 크기에 대비하여 크기는 작지만 가장 많은 뼈와 관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세한 동작 수행을 위해서 다양한 훈련이 요구됩니다. 작업수행(task-based program)을 통한 수부기능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치료실 밖에서 작업수행을 통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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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부재활심리회복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위한 과정은 어떠했나요?
‘공생’ 어울림 랩의 유니버셜 보조도구 및 3D프린팅 보조도구들이 저희 수부환자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또한 목공 및 3D프린팅 프로그램들이 수부환자 분들의 재활을 돕기 위한 맞춤형 보조도구 제작 및 사회연계프로그램으로 적합할 것으로 생각되어 3D펜, 3D프린터, 목공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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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부재활심리회복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어떤 성과가 있었나요?
수부치료는 손이 담당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기능을 개선시키기 위해 다양한 기법을 적용해야합니다. 3D펜·목공프로그램을 통해 환자분들은 남아있는 손의 기능을 최대한 이용하여 작품을 완성하고, 완성품을 보고 성취감을 느끼며 사회 복귀에 대한 자신감과 희망을 고취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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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부재활심리회복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는 산재환자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전체 산재환자 가운데 30% 정도가 수부를 다친 분들이십니다. 신체부위 중에서도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수부를 다치면 많은 불편을 느끼게 됩니다. 이로 인한 마음의 상처와 불안감은 감히 헤아릴 수 없겠지요. 하지만 약간의 일상생활보조도구를 사용하거나 남은 손의 기능을 잘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면 일상생활과 사회로의 복귀가 멀고 어려운 길이지만도 않습니다. 대전병원 수부재활심리회복프로그램을 통하여 새로운 도전을 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