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처를 아물게 한 소중한 인연
-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 이일용 과장과
산재노동자 염상기 씨 이야기
대부분의 산재노동자들은 사고 당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을 질끈 감게 될 만큼 큰 고통에 시달린다.
장애와 통증, 상처 받은 마음 등으로 인해 일상에 복귀하는 것이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라며 자신을 다잡고 또 다잡은 이가 있다. 바로 산재노동자 염상기 씨다.
아직도 ‘극복 중’이라고 말하는 그는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 이일용 과장을 만나며 조금 더 밝아지고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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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프로그램, 장애신청, 병원치료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지원제도를 안내했지만,
결국 직장에 복귀해 다시 일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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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기 씨를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나요. 근무를 하시다 손을 다쳐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최초 상담을 갔었어요. 산재노동자 분들이 공단 직원을 만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은 데 염상기 씨는 받아주셨어요. 덕분에 다른 환자 분들 면담하러 갈 때도 꼭 들려서 안부를 여쭤봤었죠. 제게 마음을 열어주셔서 공단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을 안내해 드리는 게 훨씬 수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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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났던 곳으로 복귀하는 게 꺼려졌어요. 기계만 보면 두렵고 끔찍했던 사고 당시가 떠오르니까요. 같이 일한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갖고 도와주려고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평소 쓰던 오른팔 손가락이 절단됐기 때문에 예전만큼 일을 해내지 못할 거란걱정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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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복귀를 위해 염상기 씨와 사업주 분을 설득하고 입장 차를 조율해 나갔습니다. 사업주만 7차례 상담을 진행하면서 염상기 씨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어요. 면뽑는 일을 다시 하긴 어렵지만, 육수를 내는 일이나 청소, 캐셔 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했거든요. 다행히 염상기 씨도 다시 일하겠다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셨고, 사업주도 복직이나 보상 문제에 적극적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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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난 당시에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비관을 많이 했어요. 여기서 처음 하는 이야기지만… 세상을 떠나고 싶은 충동도 몇 번이나 있었죠. 사고만 떠올려도 정신이 혼란스럽고 힘들었어요. 계속 통증이 있다 보니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어느 날은 벽에다가 다친 손을 긁어보기도 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그래, 죽을 게아니라면 비관하지 말자, 내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다’라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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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인 산재노동자는 30대 초반에 사고를 당하셨어요. 방황을 많이 하셨죠. 지하철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뭘 보냐?’면서 싸우실 정도로 마음의 상처가 심하셨어요. 하지만 공단에서 지원해드린 심리상담을 받고 본인도 노력을 많이 하시면서 현재는 새로운 일을 하시며 지내고 계세요. 염상기 씨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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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60대를 바라보지만, 그 분은 한창 젊은 나이에 사고를 당했으니 얼마나 절망스러웠겠어요. 그런 그 사람도 이겨냈는데 저도 이겨내야죠. 처음엔 지하철이나 버스 탈 때 손을 감췄는데 이제는 어느 순간부터 내놓고 다녀요. 무의식중에 사람들이 제 손을 볼 수도 있는 건데, 괜히 저 혼자 의미를 부여하며 의식을 했던 거죠.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내가 열심히 일하다가 다친 건데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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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19년 째 공단에서 일하고 있어요. 저는 산재노동자에게 원직 복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어요. 하지만 염상기 씨의 사례를 겪으면서 원직복귀에 중점을 두다 보면 산재노동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부족할 수 있다고 느꼈어요. 산재노동자에게는 다친 곳으로 복귀를 하는 거거든요. 다친 곳에 가기 싫고 두려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죠. 염상기 씨 덕분에 산재노동자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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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앞으로 어떻게 살까?’라는 것보다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게 마음 아팠거든요. 지금 100% 극복한 건 아니지만 ‘그래, 이렇게라도 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 거예요. 다친 후 정말 많이 힘들었던 시간들을 이일용 과장님이 함께 해주며 마음을 잡을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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