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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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아물게 한 소중한 인연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 이일용 과장과
산재노동자 염상기 씨 이야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그때 왜 조금 더 조심하지 못했는지, 왜 하필 기계 오작동은 그때 일어난 건지…
대부분의 산재노동자들은 사고 당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을 질끈 감게 될 만큼 큰 고통에 시달린다.
장애와 통증, 상처 받은 마음 등으로 인해 일상에 복귀하는 것이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라며 자신을 다잡고 또 다잡은 이가 있다. 바로 산재노동자 염상기 씨다.
아직도 ‘극복 중’이라고 말하는 그는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 이일용 과장을 만나며 조금 더 밝아지고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글. 김주희 / 사진. 강태규

갑작스러운 사고… 원직으로 복귀하다
염상기 씨와 이일용 과장을 만난 건 신촌에 있는 수지접합 전문병원이었다. “안녕하세요”라고 밝게 웃으며 다가오는 염상기 씨를 보는 순간, 긴장했던 마음이 탁 풀어졌다. 산재노동자에 대한 선입견일 수 있지만, 갑자기 얻은 장애로 인해 인터뷰에 호의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이 컸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에게 산재를 당했던 당시를 떠올리고 이야기를 풀어놓기란 어려운 일일 테다. 그런 마음을 잘 아는 이일용 과장이 “잘생겨서 인터뷰 오셨나 보네~ 나보다 염상기 씨가 더 젊어 보이면 어떡하죠?”라며 먼저 농을 던진다. 염상기 씨도 웃으며 “에이~ 뭐가 먹고 싶어서 그래?”라며 맞장구를 친다. 그들은 업무를 떠나 형,동생 사이가 된 듯 살갑고 편안해 보였다.


심리상담프로그램, 장애신청, 병원치료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지원제도를 안내했지만,
결국 직장에 복귀해 다시 일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염상기 씨를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나요. 근무를 하시다 손을 다쳐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최초 상담을 갔었어요. 산재노동자 분들이 공단 직원을 만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은 데 염상기 씨는 받아주셨어요. 덕분에 다른 환자 분들 면담하러 갈 때도 꼭 들려서 안부를 여쭤봤었죠. 제게 마음을 열어주셔서 공단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을 안내해 드리는 게 훨씬 수월했어요.

이일용 과장이 염상기 씨에게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원직 복귀였다. 심리상담프로그램, 장애신청,병원치료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지원제도를 안내했지만, 결국 직장에 복귀해 다시 일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원래 직장에서, 원래 하던 일을, 원래 일하던 사람들과 한다면 훨씬 적응이 빠를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염상기 씨는 직장 복귀를 망설였다.

사고가 났던 곳으로 복귀하는 게 꺼려졌어요. 기계만 보면 두렵고 끔찍했던 사고 당시가 떠오르니까요. 같이 일한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갖고 도와주려고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평소 쓰던 오른팔 손가락이 절단됐기 때문에 예전만큼 일을 해내지 못할 거란걱정도 있었어요.

염상기 씨가 일했던 곳은 메밀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 그는 매일 국수 면을 기계에서 뽑아내는 일을 했다. 경력이 오래되고 조심성도 많던 그에게 2017년 7월 7일 일어난 사고는 평범했던 일상을 앗아갔다. 익숙했던 면 기계는 트라우마처럼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 그런 그를 설득한 건 이일용 과장이었다.

직장복귀를 위해 염상기 씨와 사업주 분을 설득하고 입장 차를 조율해 나갔습니다. 사업주만 7차례 상담을 진행하면서 염상기 씨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어요. 면뽑는 일을 다시 하긴 어렵지만, 육수를 내는 일이나 청소, 캐셔 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했거든요. 다행히 염상기 씨도 다시 일하겠다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셨고, 사업주도 복직이나 보상 문제에 적극적이셨어요.

마음의 상처가 아물어가다
그렇게 다시 직장으로 돌아간 염상기 씨는 이전과 같은 일은 아니지만 자신이 필요한 곳에서 제 몫을 다해 나갔다. 그러다가 올해 1월, 수술한 손이 덧나는 바람에 재수술을 받고 휴직을 하게 됐다. 휴직 중인 지금도 계속 원래 직장에 다녀야 하는지 고민이 많지만, 이것마저 해내지 못하면 어딜 가든지 어렵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있다. 하지만 직장복귀를 했어도 장애로 인해 상처 받은 마음의 치료는 쉽지 않았다

사고가 난 당시에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비관을 많이 했어요. 여기서 처음 하는 이야기지만… 세상을 떠나고 싶은 충동도 몇 번이나 있었죠. 사고만 떠올려도 정신이 혼란스럽고 힘들었어요. 계속 통증이 있다 보니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어느 날은 벽에다가 다친 손을 긁어보기도 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그래, 죽을 게아니라면 비관하지 말자, 내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다’라고 생각했죠.

그런 그를 도운 건 이일용 과장이었다. 같은 아픔을 가진 게 아니기 때문에 중간자 역할일 수밖에 없다는 이일용 과장은 염상기 씨에게 멘토를 연결시켜줬다. 염상기 씨와 마찬가지로 음식점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손을 다친 산재노동자였다.

멘토인 산재노동자는 30대 초반에 사고를 당하셨어요. 방황을 많이 하셨죠. 지하철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뭘 보냐?’면서 싸우실 정도로 마음의 상처가 심하셨어요. 하지만 공단에서 지원해드린 심리상담을 받고 본인도 노력을 많이 하시면서 현재는 새로운 일을 하시며 지내고 계세요. 염상기 씨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염상기 씨는 멘토링을 통해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기에 이야기를 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다. 통증이 언제까지 가는지,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질적인 경험을 통한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저는 60대를 바라보지만, 그 분은 한창 젊은 나이에 사고를 당했으니 얼마나 절망스러웠겠어요. 그런 그 사람도 이겨냈는데 저도 이겨내야죠. 처음엔 지하철이나 버스 탈 때 손을 감췄는데 이제는 어느 순간부터 내놓고 다녀요. 무의식중에 사람들이 제 손을 볼 수도 있는 건데, 괜히 저 혼자 의미를 부여하며 의식을 했던 거죠.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내가 열심히 일하다가 다친 건데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
조금은 편안해진 모습의 염상기 씨. 힘든 기억을 떠올려야 함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 그를 보는 이일용 과장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 있다. 그리고 염상기 씨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19년 째 공단에서 일하고 있어요. 저는 산재노동자에게 원직 복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어요. 하지만 염상기 씨의 사례를 겪으면서 원직복귀에 중점을 두다 보면 산재노동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부족할 수 있다고 느꼈어요. 산재노동자에게는 다친 곳으로 복귀를 하는 거거든요. 다친 곳에 가기 싫고 두려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죠. 염상기 씨 덕분에 산재노동자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감사해요.

이일용 과장의 말을 들으며 조금은 쑥스러운 듯 웃은 염상기 씨도 이일용 과장에게 그동안 쉽게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 속 말들을 꺼낸다.

사실 ‘앞으로 어떻게 살까?’라는 것보다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게 마음 아팠거든요. 지금 100% 극복한 건 아니지만 ‘그래, 이렇게라도 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 거예요. 다친 후 정말 많이 힘들었던 시간들을 이일용 과장님이 함께 해주며 마음을 잡을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마워요.”

자신이 해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창업을 고민하며 새로운 출발을 계획하고 있는 염상기 씨와 그런 염상기씨의 앞날을 위해 계속 지원하고 지지하고 싶다는 이일용 과장. 그들은 공단 직원과 산재노동자의 관계를 넘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