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따라 맛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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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에서 맡아보는 초봄의 기운
태안 바다여행
태안 바닷가의 풍경은 물이 들고 날 때가 퍽 차이가 난다.
아침나절에는 물이 쫙 빠진 채 갯벌이 숨구멍을 퐁퐁 피워 올리는 것을
보았다가 오후에는 물이 어느새 남실거리는 바다인 양 시침을 뚝 떼곤 한다.
계절따라 바뀌는 물때만큼 다채로운 것이 태안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각 포구에서 계절의 선물을 실어다 나르는 활기찬 모습,
모래 갯벌이 광막하게 드러나면서 자그마한 게와 조개들이 옴죽거리는 모습이며,
밀물이 들이찼을 때 둥실 떠오른 두개의 달까지.
하룻밤을 묵어도 넘치게 담아올 수 있는 경치들이다.

글 김그린 여행작가

물과 바람과 숲이 만들어낸 곳, 신두리 해안사구
갯벌로 가득한 태안 일대에서 모래 언덕이 널찍하니 펼쳐져 있는 곳이 있다. 북서풍이 불면 바람을 온 몸으로 맞을 수 있는 곳, 바로 신두리 해안사구다. 태안 일대의 갯벌은 주로 모래로 이루어져 있는데, 파도에 밀려 올라온 모래가 겨울철의 매서운 북서풍을 맞고 바닷가로 올라와 쌓인 것이 신두리의 해안사구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래 언덕에 다양한 풀과 나무가 자라면서 모래가 흩어지지 않고 계속 쌓이게 되었고 새롭게 모래가 쌓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산이나 해저와는 다른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생태계를 보여주는 예가 신두리 해안사구 뒤편에 형성된 두웅습지다. 두웅습지도 사구가 형성되기 전에는 바닷가의 일부였지만, 모래가 쌓이며 해수와 담수 사이의 방파제가 되었고, 이 담수가 해수와 섞이지 않고 고이게 되면서 그대로 습지를 이루게 된 것이다. 사구와 습지라는 형태가 상반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자체로 정반합을 이루는 자연의 원리가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바닷바람으로 인해 형성된 곳이니 만큼 신두리 해안사구에는 바람이 가득하다. 특히 겨울철에는 저 멀리 이국에서 날아온 북풍이 몸을 정면으로 내리치듯이 꽂히는데 어떻게 이 많은 모래들이 그렇게 쌓일 수 있었는지 납득이 갈 정도다. 모래가 눈에 들어갈까 살짝 무섭기도 하지만, 바람에 따라 일렁이듯이 바뀌는 사구의 지형변화를 가장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반면 봄 가을철은 신두리 해안사구를 가로질러 난 산책로를 만끽하기 좋은 시즌이다. 모래 위로 나무 데크길이 깔려있어 한 발짝만 벗어나도 오래도록 쌓여온 고운 모래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충동은 해수욕장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곱게 잠재워두는 것이 좋다. 200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면서 함부로 모래를 채취하거나 침입하는 것이 금지된 곳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손이 쉽게 닿으면 안 되는 곳에서도 사구의 지형마다 악착같이 피어오르는 풀과 꽃들은 해안사구의 지형과 어우러져 독특한 야생미를 풍긴다.
사구와 습지라는 형태가 상반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자체로 정반합을 이루는 자연의 원리가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독특한 장소를 뽑자면 산책로의 B코스에서 만날 수 있는 순비기 언덕과 염랑게달랑게 구역이다. 염랑게달랑게 구역에서는 유난히 동그르르하게 말린 모래 경단을 찾아보기가 쉽다. 갯벌에서 사는 엽낭게와 달랑게가 먹이를 먹은 흔적이 남은 것이다. 둘 다 모래를 잔뜩 집어삼킨 뒤 자기가 좋아하는 먹이만 그 속에서 빼먹고 모래를 다시 동그랗게 뱉어놓는데, 이렇게 뱉어놓은 모래는 다른 모래에 비해 한층 가벼워서 바람에 밀려 모래톱에 쌓이기도 쉽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게들이 실제 먹이를 섭취하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엽낭게는 몸통과 다리에 옅은 갈색 반점이 흩어져있고, 달랑게는 몸 양쪽 집게발의 크기가 다른 것이 특징이라고 하니 두 눈 크게 뜨고 찾아볼 일이다.

모래경단이 오종종하게 쌓인 구역을 벗어나면 순비기나무가 여러 그루 자라는 언덕이 나온다. 순비기나무는 춥고 염분이 섞인 토양지대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모래를 붙잡아 두면서 사구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항시 모래바람을 맞을 터인데도 반지르르하니 두꺼운 잎을 자랑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맑고 산뜻함을 느끼게 해준다.
쪽배가 있어도, 없어도 달은 빛을 밝히니
밀물일 때는 아무도 못 들어가는 섬이 되지만 썰물일 때는 만인에게 열린 암자가 있다. 태안군 바로 옆, 안면도 초입에서도 바라볼 수 있는 간월암이 그 곳이다. 원래는 밀물일때도 신자나 스님들이 들락날락할 수 있게끔 쪽배와 밧줄이 매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그 쪽배도 치운지 오래다. 밀물이 차면 잠시나마 세속과 떨어지게 되는 곳이라 물때를 잘 맞춰서 가야 발 끝이라도 걸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사찰이 아니라 암자인 만큼 좁은 섬에 딱 들어앉을 만한 만큼 소소한 규모의 건물이지만, 바다의 풍경을 뜰로 끌어들이기에는 모자람 없는 크기다. 무학대사가 달을 보다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내려오지만, 아직도 여러 스님들이 용맹정진하며 깨달음을 향해 달려가는 살아있는 수행의 장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때 한국 불교의 맥을 이었던 만공선사가 암자를 중창하며 성철스님을 비롯한 여러 스님들이 참선을 위해 찾는 곳으로 다시금 일어났다. 일출과 일몰, 밀물과 썰물이 오며가며 시간의 흐름을 오롯이 담아내는 곳이라 더욱 차분하게 자신을 관조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사진으로만 남겨두기에는 아까울만큼 아름답다.

태안의 맛

쭈꾸미 샤브샤브

쭈꾸미 머리에 밥알이 꽉꽉 찼을 때의 쫀득하고 고소한 맛은 1년을 기다려 먹을 만한 맛이다. 신선한 쭈꾸미야 회나 탕탕이로 먹어도 될 만큼 쫀득하니 씹는 맛이 좋지만, 잘 우려낸 육수에 데치듯이 익혀 먹으면 시원하고 깔끔한 국물맛이 바닷바람에 시달린 몸에도 스며드는 느낌이 드는 별미다. 쭈꾸미 다리는 빨리 먹어도 쭈꾸미 머리는 진득하게 육수에 넣고 끓여야 잘 익고 고소한 맛이 한층 배가된다.

암꽃게

봄에는 암꽃게, 가을에는 수꽃게가 제철인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보통 4월부터 본격적으로 태안에서 알배기 꽃게가 출하가 되는데 간장게장이나 게국지, 게 찜 등 다양하게 먹기 좋다. 그 중에서도 게국지는 태안과 서산 일부 지역에서만 먹는 향토음식이다. 그 한정된 지역에서도 쓰는 젓갈이나 꽃게 손질방식이 다 다르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어디에서나 봄철에는 알이 꽉 찬 꽃게를 게국지로 만들어 주니 태안에 왔다면 한번 먹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