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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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서 일상으로 돌아오게 한 도움의 손길
근로복지공단 관악지사 석호필 과장과
산재노동자 최종호 씨 이야기
일상의 무게라는 것은 정작 그 일상을 잃었을 때 가장 체감하기 쉽다.
너무나도 익숙해 변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생활리듬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변경되었을 때,
사람들이 하는 선택지도 다 다르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새로운 일상을 찾아서 모험을 떠나고,
어떤 사람은 그 익숙함을 다시 쟁취하기 위해 고난을 헤쳐 나가기도 한다.

글. 김주희 / 사진. 조민기

32년의 성실함, 고난을 만나다
한 사람의 습관이 형성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들이기 쉬운 습관은 한 달만에도 정착이 되지만 난이도가 높은 습관일 경우에는 200일 넘게 걸리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최종호 씨의 이력은 성실함을 넘어 인생을 함께 해온 동반자적인 느낌까지도 준다. 한 회사에 입사해 32년간 기술자로 일해 온 경험은 흔한 말로 ‘인이 박이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정도다. 모자 뒤편에 둘레를 조절하는 ‘비조’라는 부자재를 염색하며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던 그는, 규칙 준수를 일상으로 여겨온 만큼 일하며 다친 적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6개월 전 당한 사고는 그야말로 예상 밖의 일이었다.

일하면서 나름대로 규칙을 지키고 조심한다고 생각했는데, 조그만 기계에 에러가 나면서 사고를 당했어요.
그 때 손목이 절단되면서 장애를 갖게 되었죠. 지금도 그 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자꾸 기억에서 잊으려고 하는 편이죠.

약 20여일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만나게 된 사람은 근로복지공단 관악지사의 석호필 과장이었다. 사실 근로복지공단에서 일하는 근무자와 산재노동자의 입장에서 친근감과 신뢰를 쌓는 것이 쉽지는 않다. 산재노동자를 지원하고 돕는 입장이지만, 어디까지나 근무자의 입장에서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산재노동자의 마음과는 다를 수 있는 것이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호필 과장의 인간적인 면모가 최종호 씨에게도 와 닿아 마음을 열 수 있었다.

“병원에서 20일 정도 치료를 받고 나서 집 근처로 병원을 옮겼는데 그 때 제 담당이 되셨어요. 그런데 업무적인 부분보다도 인간적인 부분에서 의지를 할 수 있게 도와주시더라고요. 사실 처음에 다치는 순간에는 회사 복귀나 뭐 그런 건 생각이 하나도 안날 정도로 충격이 컸는데, 그런 점에서 많이 신경써주셨어요.”

가족 중에도 장애를 가진 이가 있기 때문에 산재노동자의 어려움을 더 잘 알고 있다는 석호필 과장은 최종호 씨에게 편하게 다가가려고 애썼다. 그런 마음씀씀이가 최종호 씨에게도 전해진 것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어느새 전화 한 통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관계가 됐다.

보통 손목이 절단되거나 하는 중재해를 입으면 심리적인 위축이 오기가 쉬워요.
그래서 초기에는 상담센터에서 받을 수 있는 심리상담이나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운동치료 등 말씀드렸죠.
최종호 씨 경우, 심리적인 부분은 본인이 노력을 많이 하셨어요.

의수 제작부터 회사 복귀까지, 러닝메이트로 달리다
석호필 과장이 산재노동자들을 대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다양한 지원 혜택을 적기에 안내하고, 산재노동자가 필요한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혜택이 마련되어 있더라도 산재노동자가 이를 모른다면 받을 수 있는 것도 지나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연금을 신청하거나 요양기간별로 필요한 일을 살피기 위한 관리인을 등록하는 것도 당사자는 놓칠 수 있는 다양한 혜택을 챙기고자 하는 조치다.

“보통 손목이 절단되거나 하는 중재해를 입으면 심리적인 위축이 오기가 쉬워요. 그래서 초기에는 상담센터에서 받을 수 있는 심리상담이나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운동치료 등을 말씀드렸죠. 최종호 씨 경우에는 상담센터는 다니지 않으셨지만 대신 심리적인 부분은 본인이 노력을 많이 하셨어요.”

“과장님을 만난게 사고를 당한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였어요. 그 때 통증도 심해서 잠도 못자고 우울증도 겪었어요.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심리상담도 가봐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집에 머무르면서 있다 보니 나가기가 싫더라고요. 그렇게 한주 한주 미루면서 있었는데, 결국에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니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남이 도와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심리상담은 받지 않았어요. 대신 과장님이 심적으로 많은 신경을 써주시고 전화도 자주 해주셨는데, 그게 많이 위안이 되었어요.”

장애라는 것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평생 익숙해져야 하는 대상에 가깝다.
특히 비장애인으로서 몸을 쓰는데 익숙했던 만큼 본인의 부상이나
기능적인 장애에 익숙해지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의수를 처음 달며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석호필 과장이 함께 했다. 전동의수를 달면 금방 자기 손처럼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스스로 팔을 움직일 때는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지만, 의수는 그 무게가 고스란히 팔에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최종호 씨는 손목이 절단되며 팔의 관절이 1센티 가량 잘려나간 상태였는데, 의수를 끼워도 잘 빠지곤 했다. 업무적으로 세밀한 손작업이 필요하지 않았기에 일반의수를 제작하게 됐다.

“지금도 의수를 쓰면서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어요.
뭐가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아서 보통은 장갑을 껴야 하는데,
딱 맞는 장갑을 끼어도 그게 일하는 데에는 불편하거든요.
또 3~4시간 정도 끼면 불편함이 있기도 하고요. 마음처럼 되지 않으니
가끔은 속에서 화가 욱하고 올라오기도 하는데,
그래도 스스로 가라앉히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요.”

다시 직장으로 복귀할 기회도 생겼다. 성실하게 근무하던 것이 습관이 된 터라 집에 혼자 남아 있는 것이 오히려 힘들게 느껴지더라는 최종호 씨. 먹고 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본인의 성실성을 발휘할만한 장소가 필요했다. 회사 입장에서도 최종호 씨만큼 전문성과 노하우를 갖춘 직원을 구하기가 어려웠던 만큼 복귀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회사에 없었더라면 아마 복귀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사장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며 연락을 주시니 마음이 다잡아지더라고요.
사실 일상에서 제일 괴로울 때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입니다.
잠에서 딱 깼을 때 내 손에 대해서 실감을 하게 되는 것도 있고요.
그런데 출근해서 일을 하다 보면 오히려 장애나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없어지거든요.
그렇게 괴로움을 잊고 일을 하다 퇴근을 하면 집에 가족들이 있잖아요.
내가 결혼을 늦게 해서 아직 딸도 20대 중반이고, 군대를 간 아들도 있어요.
퇴근을 하면 그래도 가장으로서 가족에게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하지요.
제가 장애를 입고난 후 가족들이 정말 큰 도움을 줬어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죠.”

새로운 일상, 함께 발맞춰 만들어나가다
보통 사람들은 산재노동자들이 그들의 장애를 극복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석호필 과장의 설명은 다르다. 장애라는 것은 극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평생 익숙해져야 하는 대상에 가깝다. 특히 비장애인으로서 몸을 쓰는데 익숙했던 만큼 본인의 부상이나 기능적인 장애에 익숙해지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6개월이 길다면 길지만, 중상 뒤에 본인의 일상에 회복하기까지는 결코 오랜 기간이 아니에요.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는 자각을 가지고 있어도 주변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에는 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일도 흔합니다.
그런데 최종호 씨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다시 일어서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요.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거든요.”

반면 최종호 씨는 만나는 것만으로도 심적으로 도움을 주고 희망을 안겨준 석호필 과장과 앞으로도 인생의 인연으로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도움을 청할 때마다 두세 가지 방법을 제시하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석호필 과장의 노고를 알기 때문이다.

“사실 과장님의 업무는 산재노동자들을 계속 만나는 일이잖아요.
일반사람을 대하는 일도 힘든데, 다치고 아픈 사람들을 지원하고 마을을 어루만져주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셔서, 그런 노력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한층 마음을 굳게 먹고 있습니다.
과장님,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