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숲은 찬연하다.
대지에서 끌어올린 생명의 수액이 나무 끝까지 솟구친다.
거목이 빽빽이 들어선 숲에 정오의 빛이 깃든다.
숲은 빛에 화답하듯 짙푸른 청록으로 물결친다.
폐부 깊숙이 싱그러운 초록 에너지를 마신다.
숲에 머물기 좋은 5월, 완주를 찾았다.
글. 사진. 임운석 여행작가
숲이 건네는 작은 위로, 완주 공기마을 편백나무숲
세상이 퍽 시끄럽다. 신문 지문에는 미담보다는 낙담할 글이 더 많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코로나19,
기다림은 지쳐가고 숨 한번 제대로 쉬기도 어렵다. 이럴 때는 숲길 산책이 제격이다. 완주 공기마을
편백나무숲은 깊고 호젓해 나 홀로 산책으로 호사를 누리기 좋다.
공기마을, 이름이 예쁘다. 산소가 퐁퐁 솟아나는 공기 좋은 곳이라 그리 부를 것 같지만, 아니다. 마
을 뒷산 옥녀봉과 한오봉에서 내려다보면 마을의 모양이 밥그릇, 즉 공기를 닮아서 이름이 그렇다.
공기마을은 2011년 영화 <최종병기 활>에도 등장했다. 주인공 남이(박해일 분)와 청나라 쥬신타(류
승룡 분)의 박진감 넘치는 추격 장면을 여기서 촬영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곧게 뻗은 편백 사
이로 두 주인공은 쫓고 쫓기며 긴장감을 높였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촘촘한 숲 덕에 영화의 스릴감
은 배가했다. 영화 속 인상적인 장면을 그려낸 숲이 바로 공기마을 편백나무숲이다.
인적이 드문 산촌에 편백숲이 조성된 것은 1970년대 정부의 산림녹화사업에 따라 마을 주민들이
편백 10여만 그루를 심으면서부터다. 묘목이었던 편백 군락은 반백 년의 세월을 거쳐 울창한 숲으
로 성장했다. 이후 편백이 뿜는 피톤치드가 건강에 좋다며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오더니 숲에 산
책로와 주차장이 생겼다. 편백숲에 조성된 산책길은 총 8km로 넉넉잡아 반나절이면 숲 전체를 돌
아볼 수 있다.
공기마을 편백나무숲 초입은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를 바 없다. 조용하고 여유롭다. 뚜벅뚜벅 발을 내
디뎌 숲으로 향한다. 숨 가쁘게 고도를 높이는 산길이 아니어서 좋다. 느린 걸음과 맞추어 심장 박동
수도 편안하다. 폭신한 흙길 양쪽으로 편백이 빼곡하게 서 있다. 막상 숲속에 들어서면 요란한 볼거
리는 없다. 그러나 온몸의 신경세포가 숲에 반응한다. 각종 전자 미디어에 지쳤던 눈은 청록빛에 활
기를 되찾고, 온갖 오염된 공기로 막혔던 콧속은 뻥 뚫리는 기분이다. 수분 밸런스가 딱 맞는 숲의
공기는 잠들었던 피부를 깨운다. 딱딱한 콘크리트에 지쳤던 발바닥마저 흙길에 환호하며 꿈틀거리
는 것 같다. 맘껏 여유를 부리는 것도 잠시, 어느새 발걸음을 재촉하는 자신을 확인한다. 코스를 완
주하면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여정을 즐기기보다 목적지에 집착하는 게 사람의 심리인가 보
다. 10여 분 남짓 걸었을까. 웅장하게 펼쳐진 편백 군락이 눈에 들어온다. 숲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오솔길은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양 갈래로 갈라졌다. 오른쪽에 ‘치유의 숲’이란 팻말이 서 있다. 오
늘만큼은 숲을 거닐기보다 숲에 머물고 싶다. 숲이 주는 선물, 치유를 누리고 싶어서다.
숲 왼쪽엔 비탈진 나무들 사이사이에 나무데크가 여럿 설치돼 있다. 잠시 데크에 누워 우듬지가 향
한 곳, 하늘을 올려다본다. 촘촘한 나뭇가지 사이로 찬연히 부서지는 햇살, 파편처럼 흩어진 빛 조각
들이 편백잎에 걸려 대롱대롱 빛을 발한다. 나무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살균력 강한 피톤치드를
내뿜는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을 지킬 면역력이 바닥난 상태다. 쉽게 상처받고 그것
도 모자라서 다른 이들에게 고스란히 상처를 전가한다. 그러니 숲에서만큼은 타인에게 향하던 시선
을 하늘로 향해볼 일이다. 하늘을 향한 사람의 마음은 비 갠 뒤 맑은 하늘처럼 깨끗할 테니.
머무는 것만으로 특별해지는 공간, 아원고택
노령산맥의 끝자락 종남산(608m) 아래, 조금은 특별한 한옥, 아원고택이 있다. 방문객은 이곳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때때로 음악회에 참석하며, 차를 마시고 자연 풍광에 녹아들 시간을 갖는다.
물론 하룻밤 머물 수도 있다. 공기마을 편백나무숲에서 즐겼던 그 여유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아원고택은 입구부터 범상치 않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듯 물이끼 자국이 선명한 노출 콘크리
트벽이 가로 놓였다. 아랫단으로 담쟁이가 두르고 그 위로 기와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좁은 콘크리
트벽을 따라 내려가면 출입문이 나온다. 전통 고택으로 가기 위해서 현대의 시간을 통과한다는 의
미일까. 좁고 긴 통로를 따라가면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널찍한 갤러리 로비가 나타난다. 이 갤러
리를 지나야 비로소 한옥으로 가는 길이다.
종남산을 앞마당 삼고 하늘과 구름을 벗 삼아 날아오를 듯이 전통 가옥 세 채가 한 폭의 그림처럼 그
곳에 앉아있다. 만사를 제쳐놓고 쉼을 얻는 ‘만휴당’과 안개와 노을이 있는 사랑채 ‘연하당’, 옛이야
기가 있는 안채 ‘설화당’이 그것이다. 한옥 옆에는 미니멀한 누드 콘크리트 건물 모던하우스가 있다.
한옥의 처마 선을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천고를 낮춰서 바짝 엎드리듯 자리한다. 마치 주연을 돋보
이게 하려는 조연처럼. 모던하우스에는 한옥을 감상하기 좋도록 큼지막하게 창문이 나 있는데, 마
치 자연 풍광과 한옥을 액자처럼 끌어 안도록 디자인되었다. 별채인 천목 다실 역시 한옥의 공간미
를 위해 존재하는 현대적인 건축물이다.
그러나 아원고택의 주인은 따로 있다. 바로 압도적인 전망으로 다가오는 종남산이다. 고택을 종남
산을 향하도록 배치한 것도 그 같은 이유에서다. 그런 까닭에 어디에서나 창을 열면 종남산을 조망
할 수 있다. 만휴당 대청마루에 앉아 종남산의 정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사색에 빠져볼 일이다. 이
토록 오랫동안 자연을 마주하며 앉은 적이 있었던가. 접촉이 금지된 비대면 시대에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는 대자연을 온전히 대면하는 기분은 소소한 행복이지만 가슴 벅찬 울림이 있다. 숲속에
있다면 절대 볼 수 없을 산세가 새삼스럽다. 대청마루 앞 네모난 연못에 종남산의 산 그림자가 담긴
다. 물에 비친 산 그림자는 산의 숨겨진 내면처럼 고요하다.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어도 멈춰있지 않아. 생명을 품었기에 계절에 따라 새롭게 변신할 거야.’ 찬
연한 봄빛 가득한 종남산이 말을 건네는 듯하다. 완주에서 만난 숲과 산은 거침없이 내달렸던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라고 조언한다. 목적지 완주도 중요하지만, 삶의 여정 속에 숨어 있는 작은 행복이
무엇보다 소중하니까.
종남산을 앞마당 삼고 하늘과 구름을 벗 삼아 날아오를 듯이 전통 가옥 세 채가 한 폭의 그림처럼 그
곳에 앉아있다. 만사를 제쳐놓고 쉼을 얻는 ‘만휴당’과 안개와 노을이 있는 사랑채 ‘연하당’, 옛이야
기가 있는 안채 ‘설화당’이 그것이다. 한옥 옆에는 미니멀한 누드 콘크리트 건물 모던하우스가 있다.
한옥의 처마 선을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천고를 낮춰서 바짝 엎드리듯 자리한다. 마치 주연을 돋보
이게 하려는 조연처럼. 모던하우스에는 한옥을 감상하기 좋도록 큼지막하게 창문이 나 있는데, 마
치 자연 풍광과 한옥을 액자처럼 끌어 안도록 디자인되었다. 별채인 천목 다실 역시 한옥의 공간미
를 위해 존재하는 현대적인 건축물이다.
그러나 아원고택의 주인은 따로 있다. 바로 압도적인 전망으로 다가오는 종남산이다. 고택을 종남
산을 향하도록 배치한 것도 그 같은 이유에서다. 그런 까닭에 어디에서나 창을 열면 종남산을 조망
할 수 있다. 만휴당 대청마루에 앉아 종남산의 정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사색에 빠져볼 일이다. 이
토록 오랫동안 자연을 마주하며 앉은 적이 있었던가. 접촉이 금지된 비대면 시대에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는 대자연을 온전히 대면하는 기분은 소소한 행복이지만 가슴 벅찬 울림이 있다. 숲속에
있다면 절대 볼 수 없을 산세가 새삼스럽다. 대청마루 앞 네모난 연못에 종남산의 산 그림자가 담긴
다. 물에 비친 산 그림자는 산의 숨겨진 내면처럼 고요하다.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어도 멈춰있지 않아. 생명을 품었기에 계절에 따라 새롭게 변신할 거야.’ 찬
연한 봄빛 가득한 종남산이 말을 건네는 듯하다. 완주에서 만난 숲과 산은 거침없이 내달렸던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라고 조언한다. 목적지 완주도 중요하지만, 삶의 여정 속에 숨어 있는 작은 행복이
무엇보다 소중하니까.
여행 정보
완주는 지역에서 생산한 안전하고 신선한 먹거리로 만든 로컬푸드로 유명하다. 두부를 비롯한 된장, 고추장 등 가공식품은 물론 채소, 과일 축산류 등 신선식품에 이르기까지 품목이 다양하다. 생산자의 이름이 적힌 식재료를 판매하여 더욱 믿음이 간다.
공기마을 편백나무숲 : 전북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 산214-1 아원고택 : 전북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516-7 문의 : 완주군청 문화관광과 063-290-2624 공기마을 편백나무숲 해설예약 문의 063-290-2624 아원고택 063-241-8195
글쓴이 임운석은 한때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이후 직장을 다니던 중 아내와의 배낭여행에서 ‘평생 여 행만 하자’고 약속한 뒤, 직장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문화체육관광부 객원 사진가를 지냈으며, 저서 로는 일상에서 여행의 묘미를 즐기는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작가가 선택한 최고의 여행지를 소개한 <내가 선택한 최고의 여행> 등 다수의 여행서가 있다. 한편 요즘은 KBS 2 TV <굿모닝 대한민국 라이브> 에서 ‘섬, 마이웨이’ 코너를 맡아 진행한다. 한편, 여행 전문 강연가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