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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제조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현장에서 부지런히 일한 근로자들의 땀이 있다. 과거보다 사업장 환경이 개선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제조 현장에는 위험 요인이 존재한다. 제조업 생산직으로 근무하던 남영철 씨에게 닥친 사고 역시 순식간에 일어났다. 근로복지공단의 심리 상담과 트라우마 상담 지원은 사고 이후 마음을 다스리는 작은 씨앗이 되었다.

글. 정라희 사진. 강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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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생산현장에서 닥친 사고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에서 제조업에 종사했던 남영철 씨가 컴퓨터 케이스와 자동차 LPG가스통 부품 등을 생산하는 업무를 시작한 때는 2017년 11월이었다. 일손이 넉넉하지 않았던 소규모 현 장이었기에, 3년 동안 근무하면서 일당백으로 다양한 업무를 맡았다. 자동화 라인의 프레스나 미 세절단기 등 여러 기계를 다루며 생산성을 높였다.

“당시 다니던 회사는 비수기와 성수기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편이었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는 1월부터 몇 개월간은 특히 업무가 많았고요. 특히 지난해에는 5월까지도 일이 밀려 있었지요.”

재직하던 회사의 정상 근무 시간은 오전 7시 30분에서 오후 4시 30분. 하지만 쏟아지는 생산 일 정에 납기를 맞추려니 어쩔 수 없이 저녁에도 연장근무가 이어졌다. 그리고 방심하는 사이 안전 관리에도 소홀함이 생겼다. 조작 오류로 프레스 기계가 연속 모드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사고는 그야말로 순간적으로 일어났다.
손이 프레스 기계에 두 번이나 눌리는 큰 사고. 그 길로 관리자들이 119를 불렀고, 남영철 씨는 앰 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때가 지난해 5월 12일. 근로복지공단 안산지사 최예은 주임은 남영철 씨가 수술을 받던 날 병원에 방문해 가족과 첫 대면 상담을 진행했다. 수술을 받은 남영철 씨는 재활 치료를 거쳐 근로복지공단 재활공학연구소에서 지원하는 보조기기 사업을 통해 제작한 의수를 착용하고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다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몸을 다쳐서 오는 고통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마음의 괴로움도 컸다. 문득 떠오르는 사고 현장에서 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종종 남영철 씨의 마음에 파도를 일으키는 나날이 많았다.

“사고 이후에 성격이 많이 달라졌어요.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나는 일도 많았고요. 작 은누나가 저를 보살핀다고 근처로 이사를 왔는데, 누나에게 심리적으로 크게 의지해서인지 서운한 감정도 자주 생기더라고요.”

그래도 살아 있으니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공단이 지원하는 집단상담 프로 그램인 ‘희망찾기’가 세상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었다. 최예은 주임이 남영철 씨를 지원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도 심리 상담이었다. ‘희망찾기’는 사고를 겪은 재해자들의 마음에 남은 심리적 충격은 물론 치료 과정의 막막함을 함께 나누며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자리다.

“어느 날 병원 원무과에서 심리검사를 해보면 좋겠다고 신청서를 건네주더라고요. 그때 저를 포함해서 병원에 있던 다섯 명이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수업 두 번째 시간에 화분을 심었는데,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변미정 강사님께서 수업 말미에 ‘화분에 이름표를 붙여주라’ 고 하시더군요.”

프로그램을 진행한 날짜나 가족의 이름을 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남영철 씨는 자신의 화분에 ‘친 구’라는 이름을 붙였다. 산재를 입고 다른 이들은 가늠하기도 어려운 고통을 홀로 견뎌야 하는 가 운데, ‘친구’라는 이름표를 붙인 작은 화분 하나가 그의 마음에 작은 위로를 주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면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다친 건 다친 것이니 어떻게 재기할 수 있을지 기회를 찾아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식물도 잎이 꺾이더라도 다시 싹을 틔우는 것처럼, 제2의 인생을 시작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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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심리상담을 통한 트라우마 치료의 길

비슷한 아픔을 겪은 재해자들과 교류하면서 마음을 다독였으나, 남영철 씨는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사고 당시의 충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먼저 최예은 주임에게 트라우마 치료와 관련한 치료 지원을 문의했다. 남영철 씨는 공단이 지원하는 ‘다차원 심리검사’에서 60점 이상을 받아 집중심리상담 자격에 해당했다.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어떤 지원을 해드려야 하나 계속 고민하면서 여러 경로를 통해 관련 기관을 검색했습니다. 열심히 찾다 보니 경기도 시흥에 트라우마 전문 상담기관인 직업트라 우마센터가 있더라고요. 남영철 씨를 비롯해 다른 재해자분들도 상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협약을 맺어 사회심리재활 프로그램을 받으실 수 있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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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철 씨의 상담을 진행하며 재해자의 트라우마 극복에 관심을 둔 최예은 주임은 꾸준히 관련 정 보를 업데이트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가트라우마센터와 협약도 맺었다. 국가트 라우마센터는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트라우마 경험자의 심리적 안정과 사회 적응을 지원하기 위 해 2018년 4월에 개소한 곳이다. 재해자의 트라우마 극복에 초점을 두고 사회심리재활 프로그램 을 지원한 이 사례로 최예은 주임은 ‘2020년 재활 우수사례 내일찾기 부문’에서 은상을 받았다. 최예은 주임은 남영철 씨의 지속적인 요청이 다른 재해자들에게도 트라우마 치료의 문을 열어주 었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네 차례에 걸친 사회심리재활 프로그램을 통해 남영철 씨 역시 전보다 한결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저 나름대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해봤지만, 잠을 자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깜짝 놀라는 현 상이 종종 일어났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을 처방받기도 했는데, 한 번에 극복하기는 어려웠어요. 사회심리재활 상담을 받는 동안 상담사 선생님께서 신경을 많이 써주셨습니다. 앞으로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전문 상담을 받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나누면서 트라우마를 극 복할 방법도 함께 고민해주셨고요.”

1년 가까이 치료와 심리상담을 병행하면서 마음을 다스려왔음에도, 앞날을 생각하면 여전히 막막 한 감정이 앞선다. 이제껏 제조 현장에서 일해왔기에, 진로를 바꾸어 사무직에 간다고 해도 적성에 맞을지 염려스럽기도 하다. 그런데도 남영철 씨는 갑작스럽게 닥친 사고 앞에 마냥 좌절하기보다, 자신의 사고를 기점으로 제조 현장의 안전관리 감독이 더욱 강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설령 초보자 가 일하더라도 사고 위험 없이 안전한 현장. 때때로 어려움이 찾아와도 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으로, 남영철 씨는 내일을 위한 한 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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