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실한 마음이 통하다
- 산재노동자 주춘자 멘토와 김가온 멘티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래서인지 주춘자 씨와 김가온 씨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마음이 통했다.
두 사람 모두 일터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로 손을 다쳤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함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멘토와 멘티 관계로 만났지만, 현재 두 사람은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주춘자 씨와 김가온 씨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마음이 통했다.
두 사람 모두 일터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로 손을 다쳤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함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멘토와 멘티 관계로 만났지만, 현재 두 사람은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다.
갑작스러운 사고, 그리고 특별한 만남
무더운 여름날, 한 카페에서 주춘자 씨와 김가온 씨가 만났다. 산재노동자 멘토링프로그램이 지난해 끝난 후 오랜만에 만났다는 두 사람은 반가온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전화나 문자로 연락은 자주 했지만 직접 보니 너무 좋다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멘토님이 정말 보고 싶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이에요. 때론 선생님 같고 때로는 언니 같은... 예전엔 멘토님이 일하시는 대전동구청에 연락도 없이 찾아가 놀라게 해드리곤 했는데, 지금은 제가 간호조무사 공부를 하면서 못 뵈었어요. 평일엔 교육 때문에 통 시간이 나지 않거든요.”
김가온 멘티는 지난해 7월, 공장에서 근무하는 도중에 파채기계에 손가락이 빨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했다. 음악을 전공하고 피아노 레슨을 하며 학생들을 가르쳐 오다 머리도 식힐 겸 단순한 업무를 해보자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고는 늘 그렇듯 예고 없이 일어났고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제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손가락을 다쳤으니 피아노를 칠 수도 없고... 병원에 도착해서 제발 손가락만 살려달라고 했었죠. 수술 후엔 피아노를 칠 수 없으니 자신감도 떨어지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 우울증도 심해지면서 이 세상에 나 하나 없어진다고 무슨 문제가 생기겠나라는 생각까지 들었죠.”
그런 그녀를 찾아온 건 주춘자 멘토였다. 그녀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장애가 있는지 알아채기 어렵다. 하지만 주춘자 멘토에게도 아픔이 있었다. 36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어린 남매 세 명을 홀로 키우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다가 돈가스 기계에 손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주춘자 멘토 역시 세상을 등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온 씨를 병원에서 만났는데 표정이 어두워 보였어요. 제 젊을 때 생각이 났죠. 저도 40대에 사고를 당하고 정말 힘들었거든요. 시도 때도 없이 가슴에서 뜨거운 바람이 불고 피를 토할 것 같이 억울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당시엔 멘토링프로그램이 없어서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었어요. 혼자 견디려니 많이 힘들었죠. 그래서 가온 씨에게 제가 당시에 듣고 싶던 말, 받고 싶었던 위로를 해주고 싶었어요.”
새로운 직업으로, 새로운 삶을
첫 만남에서부터 두 사람은 오래 만나온 언니동생처럼 마음 속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눴다. 힘든 표정의 김가온 멘티에게 주춘자 멘토는 자신의 이야기부터 풀어놓았다. 자연스럽게 김가온 멘티도 아무한테도 하지 못했던 말들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같이 울고 같이 웃으며 몇 차례 멘토링 시간을 가질수록 김가온 멘티의 표정은 밝아졌다. 그런 김가온 멘티를 보며 주춘자 멘토는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꼈다고.
“가온 씨가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할지 굉장히 불안해했어요. 나 같은 사람도 살았는데, 왜 못하냐고. 나도 혼자 아이들 3명을 키웠다고 다독거렸죠. 멘토링이 끝나고 간호조무사 시험도 준비하고, 가끔 전화해서 어떻게 지내냐고 하면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서 좋아요. 참 예뻐요.”
김가온 멘티가 간호조무사를 준비하게 된 것도 주춘자 멘토의 영향이 컸다. 주춘자 멘토는 산재를 당한 후 힘든 상황 속에서도 컴퓨터를 배워 자격증을 취득한 후 2014년부터 동구청 민원실 행정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가끔 동구청에 멘토님을 만나러 가면 그렇게 밝게 일하시고 계실 수가 없어요. 긍정적인 기운을 주위에 퍼트리세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포기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간호조사무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제 전공을 살려 음악 심리치료 분야도 함께 공부하려고 해요. 이제 곧 요양병원으로 실습을 나가는데 편찮으신 분들을 대상으로 음악 심리치료를 하고 싶어요. 저도 멘토님에게 받은 만큼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할 수 있겠죠?”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
주춘자 멘토가 2015년부터 멘토링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만난 멘티들만 52명이다. 만나는 횟수도, 시간도 정해져 있지만 주춘자 멘토는 자신의 시간을 더 내어 함께 영화도 보고, 식사도 함께 한다. 집 밖에 나오기 싫어하는 산재노동자들을 이끌고 산에 오르기도 한다. 자녀들은 왜 그렇게까지 멘토 역할을 하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자신이 힘들 때를 떠올리면 차마 외면할 수 없다.
“가온 씨를 포함해서 지금까지 만난 멘티들과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해요. ‘잘 지내세요?’, ‘마음은 좀 편해지셨어요?’라고 묻는데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거든요. 저를 반가워하는 목소리에서 ‘그래도 내가 한 일이 헛되지는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한 쪽 손을 다쳤지만 산재를 당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면서 여생을 살고 싶어요.”
그런 주춘자 멘토를 보며 김가온 멘티가 “저한테도 전화 자주 해주실 거죠?”라며 장난스럽게 묻는다. 그러면서 주춘자 멘토에게선 다른 심리상담전문가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게 있다고 말한다.
“산재를 당하고 개인상담을 받았는데 좀 불편했던 기억이 나요. 처음 상담시간에 상담 안 하겠다고 차라리 정신과 약을 달라고 했을 정도니까요. 횟수가 좀 지나면서는 조금 견딜만했지만, 제 속마음을 100% 보여주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주춘자 멘토님에게는 동병상련의 감정이 있어서인지 제 자신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었죠. 멘토링프로그램 횟수가 더 길면 좋겠어요. 공단의 다른 프로그램들도 많은 도움이 되지만 멘토링프로그램이 마음을 회복하는 데는 가장 효과적인 것 같아요.”
멘토링프로그램을 하는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져온 인연을 이야기하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밝은 기운이 느껴졌다. 어느 누구 한 명이 마음을 열지 않을 수도 있고, 또 형식적인 만남으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예쁜 마음으로 만든 인연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
저도 멘토님에게
받은 만큼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살아보니까 생각지 못했던 좋은 일이 생기더라고요. 힘들게 키운 세 명의 아이들이 이제 결혼도 하고 취업도 했어요. 그 아이들이 저에게 엄마가 밝아져서, 그리고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하더라고요. 가온 씨도 지금은 힘들고 벅차게 느껴지는 일들이 있겠지만, 분명 살기 잘했다고 생각할 순간이 올 거예요. 가온 씨가 마음의 상처 없이 예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다른 사람을 조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감사’라는 마음이 생기고 저 자신을 사랑하게 된 시간이 된 것 같아요. 멘토님께 잘 사는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요. 다른 산재노동자 분들도 꼭 그러셨으면 좋겠습니다.”
■Mini Interview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로 인한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사회·직업복귀에 성공한 산재노동자(멘토)가 요양 중인 산재노동자(멘티)를 대상으로 위기극복 노하우를 공유하는 ‘산재노동자 멘토링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주춘자 멘토와 김가온 멘티를 연결해준 근로복지공단 대전지역본부 이은숙 과장에게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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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링프로그램의 특·장점은 무엇인가요?
산업재해를 겪은 산재노동자(멘토)가 요양 중인 산재노동자(멘티)에게 자신의 경험 등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공감대 형성 및 심리적 지지에 도움을 준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사회·직업에 복귀한 산재노동자가 어려움을 극복했던 방법, 경험 등을 멘티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하여 요양 중인 산재노동자가 복귀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주춘자 멘토와 김가온 멘티를 어떻게 매칭시켜주셨나요? 그 이유는?
김가온 멘티의 경우 가정사의 문제, 경제적 어려움, 산재로 인한 심리적 좌절 등을 겪고 있는 상태였으므로 무엇보다 심리적 지지가 중요했습니다.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고 산재를 경험한 주춘자 멘토와 같은 여성 멘토의 서비스 제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멘토링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는 산재노동자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미 산업재해를 겪고 사회 및 직업에 복귀하신 분의 다양한 사례를 경험할 수 있는 멘토링프로그램을 통해 성공적인 사회·직업복귀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멘토링프로그램을 지원받은 후 멘토로 신청해 활동하시는 산재노동자 분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바통을 이어받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내가 받은 혜택을 또 다른 산재노동자에게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하시는 게 아닐까 합니다. 관심이 있다면 적극 참여해 주세요. 언제든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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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링프로그램의 특·장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