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림으로 만든 새로운 시작
- 근로복지공단 대전지역본부 이은숙 과장과
산재노동자 장석준 씨 이야기
기다림의 가치라는 것은 상대적이다. 기다림의 결실을 본인이 보지 못할 수도 있고, 그 결과물이 노력에 비해 작을 수도 있다.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이 통하고
서로의 힘이 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당연하지 않은 일이다. 얼굴 보기도 꺼려했던 사람에게 먼저 전화를 걸고,
어떤 말을 하든 다 싫다고 쳐내던 사람을 의지하기까지의 과정, 그 과정을 이룬 것은 오롯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기다림이었다.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이 통하고
서로의 힘이 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당연하지 않은 일이다. 얼굴 보기도 꺼려했던 사람에게 먼저 전화를 걸고,
어떤 말을 하든 다 싫다고 쳐내던 사람을 의지하기까지의 과정, 그 과정을 이룬 것은 오롯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기다림이었다.
스스로를 돌보는 힘이 다시 돌아오기까지
근로복지공단 대전지역본부 이은숙 과장은 2018년 1월 장석준 씨와 아산충무병원에서 가진 첫 만남을 기억한다. 병원 1층에서 처음 장석준 씨를 만났을 때,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왜 왔냐고 묻는 그의 모습은 과연 다음 만남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했다. 다른 사람이 일으킨 교통사고 때문에 왼쪽팔을 절단하게 된 장석준 씨의 마음은 그 스스로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침잠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심리상담이나 멘토 연결 등을 말씀드렸는데, 다 싫다고 하셨어요. 산재노동자 분들을 상담하다보면 심리적인 치료를 먼저 하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시고, 신체적 회복을 먼저 하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신데, 장석준 씨는 후자셨어요. 그래서 다른 것보다 의수 제작을 먼저 연결해 드렸죠.”
의수를 제작하기 위해 2018년 4월, 장석준 씨는 이은숙 과장과 함께 인천병원을 방문했다. 평소 스스로 모든 일을 해왔고, 앞으로도 경제 활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의수 제작의 필요성을 공감한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 가서 만난 다른 산재노동자를 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산재로 팔을 잃은 자신을 마주한 것 같은 심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아채고 다독여 준 것은 이은숙 과장이었다. 덕분에 장석준 씨는 의수 제작을 완료한 후 적응훈련까지 받을 수 있었다.
“의수를 차기 어려워서 웬만하면 잘 안 나가긴 해요. 그래도 친목회는 나가는데, 처음에는 내가 다친 것을 말하기도 어려웠어요. 그런데 요새는 마음이 좀 차분해져서 내가 이러저러하게 다쳤노라고 먼저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말하지 않으면 의수 덕분에 다친 걸 잘 모르더라고요.”
의수제작 이후 장석준 씨의 마음도 한결 풀렸다. 이은숙 과장과의 거리감도 줄어들었고, 이런 저런 절차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직접 연락도 하기 시작했다. 본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이은숙 과장이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실감한 것이다.
“
낯선 환경에서 감정 기복이 컸던
장석준 씨에게
집중상담은 그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출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상담사 역시 장석준 씨에게
꾸준한 관심을 쏟으며
방문상담을 진행했다
”
본인의 마음을 바라보고 한 발짝 더 나가기
의수 제작을 지원받은 뒤 새롭게 시작한 것은 근로복지공단의 멘토링이었다. 멘토는 오른쪽 팔을 절단한 뒤 대전 동구청에서 민원상담원으로 일하는 분이었다. 의수제작을 위해서 7월 말까지 인천병원에 있다 이은숙 과장이 대전지역본부로 발령을 받으면서 장석준 씨도 대전병원으로 옮겼었는데 그 곳에서 멘토링을 시작한 것.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지내는 것이 심리적으로도 힘들었던 차에, 의지할만한 동무가 생긴 것이다. 소소한 생활팁이나 일상에 대한 어려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긴 것도 장석준 씨에게는 한층 반가운 일이었다.
“삼계탕이 먹고 싶어서 식당을 간 적이 있었어요. 근데 한손으로만 닭고기 살을 발라내려니까 자꾸 뚝배기가 움직여서 마음대로 안 되고 짜증만 나서 먹지도 않고 계산만 하고 나왔거든요. 그런데 멘토를 만나서 그 이야기를 하니까, 물수건을 펴서 그 위에 그릇을 올려놓으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말 뚝배기가 안 움직여서 먹기도 수월하더라고요. 그런 일상적인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는 팁을 많이 알려주니 좋았죠.”
그동안 거절했던 집중심리상담을 시작하면서 이은숙 과장도 한층 장석준 씨의 심리적 장벽을 넘어설 수 있었다. 낯선 환경인 대전병원에서 감정의 기복이 컸던 장석준 씨에게 집중상담은 그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출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상담사 역시 장석준 씨에게 꾸준한 관심을 쏟으며 방문상담을 진행했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이은숙 과장에게 상황을 알려준 상담사의 노력 덕분에 이은숙 과장도 그때그때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그렇게 참여한 집중심리상담이 10여회를 넘으며 장석준 씨의 마음도 한층 안정을 되찾았다.
“제가 담당한 분 중에서도 장석준 씨는 정말 자기 관리를 잘 하시는 분이세요. 제가 공단에서 강연을 할 때나 다른 산재노동자 분과 이야기를 할 때 장석준 씨 이야기를 꼭 하거든요. 집을 잘 정리하시고 밖으로 나갈 때도 본인을 항상 청결하고 깔끔하게 관리하시고요. 이렇게 깔끔하게 본인을 가꿔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다른 분들도 멘토링을 통해 이런 점을 배우면 좋지요. 지금 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 일하려고 실습만 남겨두셨는데, 실습을 마치고 나면 워낙 본인을 깔끔하게 잘 관리하시니까 취업도 잘 되실 것 같아요.”
아프기 전의 나, 아픈 후의 나를 함께 아우르기
오랜 시간을 트럭운전사로 살았다가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한 뒤 1년 3개월. 장석준 씨는 조금씩 과거의 자신을 현재에 덧씌우고 있다. 여기에 트럭운전사라는 직업 대신 장애인 활동보조인이라는 새로운 진로 계획도 한창 진행 중이다.
“다치기 전에는 드럼을 치는 게 취미였어요.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드럼 연주를 한 적도 있고요. 또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해서 이런저런 상품을 타온 적도 있었고요. 그런데 의수 제작을 위해 인천병원에 있을 때 친하게 지낸 사람들이랑 잠깐 외출해서 드럼연주를 했었거든요. 다친 팔에 집게를 연결해서 드럼스틱으로 쳤는데, 그게 그렇게 행복하더라고요. 예전만큼 잘 하지는 못하겠지만 한번 해볼까 싶기도 하고요.”
이은숙 과장도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처음 만나서 어색한 냉기만 흘렀던 예전과 지금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이전의 자신과 이어주는 취미의 연결고리를 통해 한층 더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석준 씨는 사고 당시 팔이랑 허리까지 다치시면서 장애 3급이 나오셨어요. 앞으로 장애인활동보조인으로서 다른 장애인들을 돕게 되면 스스로도 느끼시는 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와는 별개로 취미로 했던 활동을 유지하는 건 개인의 스트레스를 푸는것에도 큰 도움을 주잖아요. 그만큼 좋아하시던 일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취업도 취미도 챙기시면서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시길 바래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란 누구에게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상대방을 바라보는 눈빛과 미소, 말 한 마디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힘든 시간을 겪었지만 보이지 않게 힘이 되어준 이은숙 과장, 그리고 그런 이은숙 과장을 잘 따라가며 장애를 극복해나가고 있는 장석준 씨. 비록 마음을 열기까지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지만, 앞으로 이어질 행복한 미래를 위한 기다림이었음을 이제는 두 사람 다 알고 있다.
“
다치기 전에는
드럼을 치는 게 취미였어요.
다친 팔에 집게를 연결해서
드럼스틱으로 쳤는데,
그 게 그렇게 행복하더라고요.
예전만큼 잘 하지는 못하겠지만
해볼까 싶기도 해요.
”
“
취미로 했던 활동을 유지하는 건
개인의 스트레스 유지에도 큰 도움을 주잖아요.
그만큼 좋아하시던 일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취업도 취미도 챙기시면서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시길 바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