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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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이겨내고 다시 만난 봄날,
햇살 같이 따뜻한 동행
근로복지공단 경인지역본부 김인옥 과장과
산재노동자 이영배 씨 이야기
익숙함이란, 마음에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고향을 그리워하고 여행을 떠나서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익숙함이 깨지는 순간, 모든 것이 불편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상황에 또 다시 적응하며 익숙함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업무 중에 손을 다친 이영배 씨도 그러했다.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손가락을 잃은 후 장애에 익숙해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리고 그 힘겨운 길에는 근로복지공단 김인옥 과장이 동행했다.

글. 김주희 / 사진. 한상훈

갑자기 일어난 사고, 그리고 새로운 만남
“지금 운전해서 오고 계신대요. 손을 다치셨지만 직접 운전을 하실 수 있으세요. 다시 운전하는 게 힘드셨겠지만 워낙 심지가 굵은 분이라 금세 적응하시더라고요.”
인터뷰 장소에 먼저 도착해 이영배 씨를 기다리던 김인옥 과장이 상황을 설명한다. 직접 운전을 한다는 부분에서는 표정이 한층 밝아진다. 산재로 오른쪽 손가락을 잃었지만 일상에 적응하고 있는 모습이 고맙고 보람되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그렇게 이영배 씨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김인옥 과장은 그에 대한 칭찬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오후 3시, 약속시간에 맞게 이영배 씨가 도착하자 “어머~ 잘 지내셨어요? 표정이 너무 밝아지셨는데요?”라며 김인옥 과장이 먼저 일어나 반긴다. 치료와 프로그램 지원, 보상 등의 절차가 지난해 여름쯤 마무리된 후 오랜만에 만난다는 두 사람은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다소 내성적인 성격이라는 이영배 씨는 처음엔 인터뷰를 거절하려고 했지만, 김인옥 과장님 연락이라 나왔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제가 이영배 씨에게 인터뷰를 하는 게 과제라고 말씀드렸어요.다쳤을 때의 이야기를 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마음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이영배 씨가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일상에 잘 적응하고 계시지만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이영배 씨가 수술을 마친 후 병원에서였다. 자동차 업계에서 일했던 그는 갑자기 발생한 기계 오작동으로 인해 오른쪽 손가락이 절단되었다. 여러 번 수술을 해야 하는 큰 사고였다. 오십대, 아직은 한창 일할 나이의 그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앞이 캄캄했어요. 사고 소식을 들은 아내도 깜짝 놀란 거예요.
수술에 들어가기 전 전화로 사고소식을 알리며
조금 다쳤다고 얘기했는데…
막상 병원에 와보니 기가 막힌 거죠.
제 손을 보더니 이제는 일하지 말고
쉬라고 하더라고요.

수술을 마친 후 회복기 동안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가족들 앞에서 태연하려고 했지만 계속 반복되는 통증은 그를 힘들게 했다. 예민 해질 수밖에 없었고 식사를 하고 물건을 집는 일상적인 행동도 불편해지자 울컥 화도 치밀어 올랐다. 그런 그에게 김인옥 과장은 ‘희망찾기 프로그램’을 추천했다.

“‘희망찾기 프로그램’이 이영배 씨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걸 꺼려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이영배 씨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어요.
본인이 느끼는 감정도 스스럼없이 말씀하시고,
프로그램에 같이 참여하시는 분들의 리더역할을 하셨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원직복귀에
도움을 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성공적으로 원직에 복귀하다
사고를 당한 후 회복을 하면서 이영배 씨도 다시 일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는 회사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희망찾기 프로그램’과 멘토링을 통해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다친 회사로 복귀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끔찍했던 기억도 떠오르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걱정됐어요. 하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가족을 책임지겠냐는 생각을 하니 용기가 났어요. 처음 출근하고 일주일은 생각이 많았죠. 괜히 윗사람 눈치가 보이더라구요. 실제론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니 적응이 되더라고요. 다 마음먹기 나름인 것 같아요.”
15년 이상 일한 곳이었기 때문에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세밀한 작업을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업무도 사고 이전과 같이 수행하고 있다. 특히 야유회 같은 회사행사에도 빠짐 없이 참여하고 있다. 이 역시 처음이 어려웠지만 한두 번 참여하고 나니 ‘나도 직원인데 당연히 참여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처음엔 직원들이 야유회에 참여하라고 하는데 괜히 민망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뭐든 즐겁게 하려고 해요. 다친 걸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죠. 손이 있든 없든 주위에 피해를 끼치지 않고 제 역할을 다하고 싶어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또 그렇게 하고 있죠.”
이영배 씨의 이야기를 듣는 김인옥 과장이 미소를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담당했던 산재노동자가 아픔을 이겨내고 원직에 복귀한 것만으로도 뿌듯한데, 회사에 잘 적응한 이야기를 듣는 게 즐겁기만 한 것이다. “이영배 씨가 야유회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벅차올랐어요.산재노동자 분들이 원직복귀를 하셔도 동료들과 어울리는 자리를 피하시는 경우가 있거든요. 저는 공단에서 일하면서 수부 쪽 환자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그런데 이영배 씨는 치료기간도 짧았고 원직에 복귀한 후에도 잘 적응하셨어요. 드문 사례라 정말 많이 놀라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정말 보람을 느껴요.”
힘든 시간을 겪었고, 지금도 장애에 적응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영배 씨.그러나 그는 상황을 탓하지도,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저 다 ‘마음먹기 나름’이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갈 뿐이다.
“병원에서 이영배 씨 직원 분을 만났는데, 그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영배 씨가 손을 다쳐 병원으로 이송하는데 오히려 ‘죄송하다’고 말씀하셨다는 거예요. 기계 오작동이지만 내가 다쳤으니 미안하다고요. 그 직원 분이 다친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할 수 있냐며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그분 말씀을 들으니 이영배 씨가 평소에 어떤 분이셨는지 알 수 있겠더라고요. ”
그때의 일화를 전하는 김인옥 과장은 코끝이 찡해져 오는지 잠시 말을 멈추고 이영배 씨를 바라본다. 이영배 씨는 “내가 다쳐서 회사에 폐를 끼쳤으니… 다 미안하죠. 미안한 게 맞죠.”라며 웃어 보인다. 다친 자신보다도 회사와 가족을 먼저 생각했기에 그가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제가 옆에서 봤을 때 이영배 씨가 정말 많이 노력하셨어요. 가족 분들과 소통도 잘 되시고, 이제 회사에도 적응하셔서 안심이 돼요. 그래서인지 저와 연락할 일이 많지 않으세요. 사실 전화가 오면 반갑기도 하지만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되기도 하거든요. 오랜만에 만난 이영배 씨가 잘 지내고 계셔서 너무 좋아요.”
이영배 씨도 김인옥 과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제가 내성적이라 김인옥 과장님한테 안부 전화 한 통을 못하는데… 과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사회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안부인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참 고맙습니다.”
활짝 웃는 두 사람에게 봄날의 따뜻한 햇살이 쏟아졌다. 앞으로의 시간에도 봄날 같은 일들만 가득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