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따라 맛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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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끈 질끈,
녹차향 어린 길에 오르다
보성
녹차다원에서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시작하는 것은 4월 20일 전후, 곡우를 앞둔 시기다.
곡우 이전과 이후로 녹차의 품질을 다르게 치는데 가장 좋은 품질로 치는 우전차, 곡우에 딴 곡우차를 출하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지나고 나면 녹차잎은 활짝 피어나며 은은한 향을 사방으로 퍼트린다.
싱그러운 5월부터 햇볕이 한층 노릇노릇 해지는 9월 초순까지, 보성의 차밭은 싱그러운 자태를 완연히 드러낸다.

글. 김그린 여행작가

보성 차밭의 상징, 대한다원 1농장
보성이 차의 고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푸른 녹차밭을 배경으로 여는 5월의 다향제, 12월부터 1월 사이에 열리는 차밭빛축제와 같은 지역 행사도 있겠지만, 광고나 드라마, 영화 등으로 나온 녹차밭의 이미지도 작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대한다원 1농장은 보성과 차밭을 강력하게 연결시킨 1등 공신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녹차밭의 유연한 곡선,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뽑히는 삼나무길, 안개가 아직 가시지 않았을 때의 풋풋한 차밭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비춰지면서 대한다원은 한국의 첫 번째 관광형 다원으로 뿌리를 내렸다.
보통 다원이라고 하면 차나무만 가득 심겨져 있는 것을 생각하기 쉽지만, 대한다원의 가치는 드넓은 녹차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바다전망대 근방에는 편백나무가 산책로를 따라 심겨져 있고, 매표소에서 중앙 광장까지 올라가는 길에는 삼나무길이 하늘을 향해서 가지를 쭉 뻗고 있다. 그 외에도 단풍나무 숲, 대나무숲, 주목나무 숲 등 다양한 수종의 관상수를 심었다.
이렇게 다양한 수종을 심은 것은 녹차의 품질을 저해하는 찬바람을 막고 적절한 수준의 그늘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겨울은 따스해야 하지만 적절한 그늘이 있어야 잘 자라는 차나무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한껏 느끼기 위해서는 그 나름대로 각오가 필요하다. 대한다원 1농장은 계단식 차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말인즉슨 여러 산책로들이 언덕길로 조성되어 있다는 것. 등산화까지는 아니더라도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운동화를 신고 나들이를 나오는 것이 좋다.
대한다원 1농장의 특징은 ‘관광형 다원’으로 선언한 만큼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사람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대한다원에서 재배한 찻잎을 이용해 만든 음식이나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비롯해 차 시음장, 주차장, 화장실 등의 설비가 갖춰져 있다. 산책로의 난이도가 다양한 데다 군데군데 쉴만한 벤치가 놓여 있어 가족여행지로도 나쁘지 않다. 전체 코스는 등산코스로 불릴 만큼 길고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지만, 노약자들도 어렵지 않게 걸을만한 산책로도 함께 조성되어 있어 부담이 덜하다.
특히 방문을 추천하는 시간대는 이른 오전이다. 햇빛이 물안개를 비추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고, 차밭에 촉촉한 이슬이 맺힌 싱그러운 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가 높이 뜨며 안개가 씻겨 내려가면 윤기 나는 찻잎에 햇살이 반사되어 빛나는 모습까지 만날 수 있어 사진을 취미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놓치기 싫은 장관이 펼쳐지기도 한다.
물과 땅과 차나무가 어우러진 광경을 보고싶다면
대한다원 1농장의 풍경을 짤막하게 표현하자면 ‘숲 안에 폭 안긴 녹차밭’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대한다원 1농장에서는 바다전망대에 오르지 않는 한 보성이 남쪽으로는 남해를 끼고 있는 해안가 지역이라는 것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편의시설이 잘 되어있는 관광농원보다 사람들이 적은 한적한 차밭 풍경을 보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겹쳐 각광받고 있는 곳이 두 군데 있다.
바로 봇재다원과 대한다원 2농장이다. 양쪽 다 입장료가 없고 규모도 상대적으로 아기자기해 녹차밭에 오래 머물러 있기 힘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기 좋은 곳이다. 봇재다원은 정상 전망대에서 보면 영천저수지와 저 멀리 율포 바다가 내려다 보여 아스라한 경치를 즐기기 좋다. 곡선미가 돋보이는 굴곡진 차밭도 사진으로 남겨둘만한 멋을 풍긴다.
반면 대한다원 2농장의 풍경은 그야말로 면의 아름다움이라 할 만하다. 다른 두 다원처럼 크게 언덕배기인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사유지이기 때문에 다른 곳처럼 잠시 쉬어 갈만한 카페나 편의시설 등은 없지만 시원하게 펼쳐진 녹차밭 사이에 들어선 나무들, 하늘과 똑 닮은 색의 율포 바다가 눈을 씻어주는 듯한 쾌감을 준다. 걷는데 자신 있는 사람이라면 대한다원 1농장 근처에서부터 이어진 다향길 1코스가 율포솔밭해안까지 이어지니 한뼘한뼘 가까워지는 바닷가를 눈에 담으며 걸어가 보는 것도 좋겠다.

보성의 맛

녹차냉면

전국 제 1의 녹차산지라는 위명에 걸맞게 녹차를 응용한 다양한 요리를 찾아볼 수 있다. 녹차떡갈비나 녹차 비빔밥, 혹은 녹차를 먹여 키운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구워먹는 고기구이집 등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녹차가루를 섞어 만든 면으로 시원하게 말아낸 녹차냉면은 보성을 대표하는 별미 중 하나다. 후식으로서의 녹차요리가 아니라 식사로서의 녹차요리를 먹어보고 싶다면 시도해볼 만하다.

짱뚱어탕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덕분일까, 보성 벌교리의 꼬막은 전국적 진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날씨가 더워지는 6월부터는 짱뚱어, 맛조개 등 다른 해산물의 제철이 돌아온다. 특히 짱뚱어탕은 전라도 지역의 토속 음식으로 약간 매콤하면서도 뜨끈하게 위장을 감싸니 여름철 보양식으로도 그만이다. 부들부들하게 끓인 우거지와 진한 된장의 맛이 구수한 국물과 어우러지니 추어탕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한번 도전해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