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운치가 더하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한국 포크송의 전설, 김광석을 다시 그리다
대구 신천대로를 따라 늘어선 옹벽 아래 좁은 골목길이 있다. 그 길은 대구의 3대 전통 재래시장 중 하나인 방천시장으로 이어진다. 방천시장은 1960년 이후 곡물을 파는 시장으로 유명했고 1,000여 개의 가게가 문전성시를 이루며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원도심에서 외곽으로 도시 중심축이 옮겨가자, 시장은 나날이 쇠퇴했고, 존립 자체가 어려워졌다. 오가는 사람도 드물던 이곳이 지금은 연간 150만 명이 찾는 핫플로 등극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생긴걸까? 비밀은 바로 테마 거리에 있다.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 대중가수의 이름을 딴 거리가 생긴 것이다. 한국 포크송의 전설, 故 김광석의 삶과 음악을 테마로 조성한 벽화 거리이다. 2010년 대구시는 전통시장 살리기와 더불어 문화거리를 구상하던 중이었다. 젊은 문화예술인들의 전폭적인 참여에 힘입어 '김광석 다시 그리기길'이 탄생했다. 여기서 '그리기'란 '그린다'라는 의미와 '그리워하다'라는 중의적 표현이다.
이곳에 김광석 거리가 조성된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김광석 거리가 있는 대구 대봉동 방천시장 인근에서 태어나 다섯 살까지 살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교편을 접고 사업차 상경하게 되자 그 역시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이주했다. 재미있는 여담도 있다.
사실 김광석 거리는 처음에 '양준혁 거리'로 조성될 뻔했다. 야구선수 양준혁은 방천시장 출신으로 대구 상고를 졸업하고 삼성 라이온즈 대표선수였다는 점에서 강력한 후보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김광석의 음악이 쓸쓸한 골목 분위기와 어울리고, 수많은 히트곡이 있어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해 결국 김광석 거리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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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이 남긴 육필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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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생애를 들여다 보는 김광석스토리하우스
손영복 작가의 작품 _사랑했지만_ 뒤로 김광석 다리 그리기 길이 이어진다.
한국 포크계의 전설이 남긴 작품들
김광석은 누구인가. 진정성 있고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로 수많은 명곡을 남긴 한국 포크계의 전설이다. 그의 주옥같은 작품은 시대와 세대를 아울러 수많은 이를 감동시켰다. 짝사랑할 때 <사랑했지만>, 입대할 때 <이등병의 편지>, 이별했을 때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서른 살에는 <서른 즈음에>, 우울할 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좌절을 극복할 때는 <일어나>, 인생의 황혼기에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등등.
김광석은 삶의 소소한 장면마다 그에 걸맞은 노래를 대중에게 선사했다. '노래하는 철학자', '노래하는 시인', '가객'이라는 애칭을 얻으며, 김광석은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음악으로 치유하고자 했다. 그의 음악이 대중에게 사랑받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감성을 촉촉이 적시는 노랫말이고, 두 번째는 내유외강과 같은 잔잔한 곡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허무한 것 같지만 카랑카랑한 힘이 돋보이는 목소리이며 마지막은 무대를 휘어잡는 조용한 카리스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동물원' 등에서 보컬을 지낸 뒤 솔로로 나선 그는 연이은 앨범에서 성공적인 히트를 거둔다. 성공 뒤에는 타고난 재능도 한몫했지만,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음악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 특히 소극장 라이브 공연을 통해 관객과의 교감에도 전력을 다했는데, 1995년 대학로 학전소극장에서 마침내 1,000회 기념 공연이라는 금자탑을 이뤘다. 이후 그는 한국 포크계의 통기타 가수로서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은 자신의 노래 '서른 즈음에'처럼 짧았으며, 외로웠고, 헛헛했다. 그토록 원하던 음악적 성공을 이룬 뒤, 세상의 부조리와 인생의 허무함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탓일까. 1996년 1월 6일, 33년의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흑백사진관 초록우체부 1호점은 김광석 거리에 있다.
노래가 물결처럼 흐르는 거리
가을의 길목에 들어선 김광석 거리는 특유의 정취로 가득하다. 골목 입구에는 활짝 웃는 브론즈 작품으로 재탄생한 김광석 조형물이 방문객을 반긴다. 미소년 같은 웃음 속에 굵은 주름들이 자글하다. 골목에는 '사랑했지만', '먼지가 되어',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거리에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일어나' 등 그의 노래가 신천의 물결처럼 흘러간다. 감성적이고 호소력 짙은 그의 목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지면 왠지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는 것은 그의 노래에 담긴 인생의 희로애락 때문이 아닐까.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삶의 행복감과 미지의 불안감이 교차하는 듯하다.
김광석 골목은 350m 남짓으로 길지 않다. 이 길에는 다양한 작가들이 참여하여 그의 노래를 모티브로 70여 점 이상의 다채로운 벽화를 그려냈다. 그중 박재근 작가는 벽화 제목과 소재를 김광석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가 그것인데 모델은 방천시장 상인 부부라고 한다.
방문객들은 골목을 걷다가 실물 크기로 제작된 김광석 조형물과 사진을 찍는다. 실제 김광석이 그랬듯 이 조형물도 흔쾌히 어깨를 내어주고 환하게 웃는다. 164cm의 작은 키 덕분에 누구와 어깨동무해도 어색하지 않다. 벽면 한편에 자물쇠도 걸어놓았다.
이등병의 편지에서 모티브한 입영열차, 포토존으로 유명하다.
사랑과 추억을 간직하고픈 이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 뒤로 야외공연장이 있다. 버스킹 공연과 김광석 추모 공연 등 다양한 문화공연이 열린다. '응팔이' 세대를 위한 추억 소환 아이템들도 많다. 갤러그, 테트리스 등 쪼그려 앉아서 해야 제맛인 게임들이 가게 앞에 줄 서듯 자리한다. 교련복과 검정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가게, 액세서리,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들도 문전성시다. 포장마차 주인행세를 하는 김광석의 벽화도 있다. 황현호 작가의 '석이네 포차'가 그것이다. 손님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술안주를 건네는 표정이 인상적이다. 포장마차 벽화 옆에는 조선일보에 연재된 박광수 작가의 '광수생각' 중 김광석을 주제로 한 작품을 그대로 벽화로 옮겼다. 사람들이 왜 김광석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그의 음악을 왜 듣고 부르는지 그 이유가 두 편의 만화에 잘 담겨 있다.
교복을 빌려입고 사진을 찍는 포토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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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세대에게 익순한 카세트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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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 벽화는 여러 포토존 가운데 핫한 스폿이다.
형, 소주 안주로 제일 좋은 게 뭔 줄 알아요?
그건 말이예요. 김광석의 노래예요. 소주 안주로는 김광석 노래가 최고라고요.
김광석 거리 끝자락에 '김광석 스토리하우스'가 있다.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로 '추모존', '내청춘이력서존', '내노래존', 'ICT영상청음존'으로 꾸며놓았다. 자필 악보와 수첩 등 김광석의 삶과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유품들이 1,000여 점에 이른다. 전시된 사진 중에는 코흘리개 어린 시절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하던 중·고등학생 시절, 어린 딸과 함께 찍은 사진 등 가족이 아니면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평소 철학에 심취하던 그였기에 남겨진 메모에는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숱한 상념들이 빼곡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행복과 불행에 대해서 김광석은 한없이 고뇌했던 것 같다. 감수성 짙은 노랫말은 그의 상념과 고뇌에서 잉태한 창작물이었던 게다.
첨단시설과 |
김광석 거리가 있는 대구에는 2,000평 규모의 재활전문센터를 갖춘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