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맺힌 아침 이슬에 미끄러지다
젊은 날 애써 일군 사업을 접고 방황하던 김수일씨를 다시금 붙잡아준 일은 조경업이었다. 조경회사 대표였던 지인의 권유로 발 디딘 조경업은 활달하면서도 도전적인 일을 좋아했던 그의 적성에 딱 맞았다. 주변 풍경을 디자인하는 조경은 단순히 나무를 심는 것만이 아니라, 나무와 풀, 돌 등 다양한 소재를 손수 다루고 가꾸는 창의적인 일이었던 까닭이다. 한때 분재에 취미를 두었던 터라 일하는 재미는 더했다. 더구나 여러 명이 팀을 이루어 일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소나무 한 그루도 그냥 심기만 하지 않습니다. 수학은 정해진 답이 있어도 조경은 답이 없습니다. 작업자가 곧 답이지요. 기초적인 기술은 정해져 있지만, 실전에서는 작업자의 감각과 스타일이 크게 반영됩니다. 그래서 잘 다듬은 나무를 보면 뿌듯함이 전해옵니다."
보람과 재미가 있다 보니 다른 길을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부지런히 기술과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충청권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15년 동안 일했다. 높은 곳에 올라가 일하는 일이 많기에, 언제나 안전은 빼놓지 않고 챙겼다. 그런데도 사고는 순식간이었다. 나뭇가지를 잘라내는 전지작업을 하면서 위치를 이동할 때는 한쪽에 채웠던 안전벨트를 풀고 다른 쪽에 다시 채우는데, 그 사이 발이 미끄러져 추락하고 말았다. 이른 아침 나무에 맺힌 이슬 탓이었다.
"작업하면서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다양하게 안전장치를 합니다. 그런데도 사고는 예상하지 못하게 일어나더군요. 이런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다시 일어서기 위한 노력
그때가 지난해 12월 16일. 2미터 높이에서 아래로 떨어진 그는 2번째 허리 척추와 발뒤꿈치에 골절을 입었다. 작업하던 곳 근처에 있던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허리와 발뒤꿈치에 부상이 생긴 그가 일터로 돌아가려면 집중 재활이 필요했다. 그렇게 지난 2월 24일에 근로복지공단 대전병원을 찾았다.
"이전에는 '산재'라고 하면 근로자가 다쳤을 때 치료를 받은 후 그 비용을 처리해주는 것으로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휠체어를 타고 움직여야 했는데, 꾸준히 재활을 받다 보니 이제는 목발을 짚고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김수일 씨는 근로복지공단 대전병원에 입원해 재활 특진 프로그램을 통해 집중 치료를 받아왔다. 재활 특진은 일종의 맞춤형 재활 치료 프로그램으로, 근력 강화 훈련을 비롯해 관절 범위 확장 운동과 열·전기 치료 등을 병행한다. 치료사와 함께하는 운동 외에도 환자 스스로 재활에 전념할 수 있는 자가 운동 치료법도 알려준다.
"계속 누워 지내다가 운동을 하려고 하니 마음처럼 되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전병원 재활치료사분들의 지도 덕분에 허리에 무리 가지 않게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방법을 알고 나니 TV를 보면서도 자가 운동을 할 수 있겠더군요."
병원에 머물며 꾸준히 재활하다 보니 차츰 몸이 회복되었으나, 종종 걱정스러운 마음이 밀려들기도 했다. 특히 발뒤꿈치는 사람이 걷고 움직이려면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되는 부위. 아무래도 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무사히 회복해 일상생활에서는 불편이 덜하다고 해도, 일터로 복귀할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다. 그때 대전병원의 심리치료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되었다.
"혹시나 다시 걷지 못하게 될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심리치료사분이 '잘하고 있다'며, '이제 시작'이라고 격려해주시니 저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직업복귀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직장복귀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김아영 과장은 적극적으로 재활을 이어가는 김수일 씨의 노력을 응원했다.
"오전에 집중치료를 받으면 보통 오후에는 침대에 누워 계시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그런데 김수일 님은 치료 후에도 자가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직업에 복귀하기 위해 애를 많이 쓰고 계십니다. 동료 분들과도 사이가 좋으셔서 매일 전화 통화로 격려를 받으신다고 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더욱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조경업 종사자 김수일 씨와 대전병원 재활지원부
근로자의 삶과 가까운 곳을 지키며
김수일 씨처럼 재활과 직업복귀 의지가 높은 근로자들이 힘을 얻을 수 있는 배경에는 근로복지공단 대전병원 재활지원부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다. 대전병원 재활지원부는 산재관리간호사, 산업위생사, 행정직 등 다양한 직제로 구성된 부서. 산재보험과 관련한 근로자의 삶 가까운 곳을 지키며 질환 및 사고 이후 필요한 통합적인 서비스를 지원한다. 재활지원부 천성희 부장은 "최초 요양부터 요양 후 직업 복귀까지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전한다.
"우리 병원 재활지원부는 2020년 4월에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산재근로자의 필요에 맞는 정보를 드리면서 알맞은 때에 치료와 요양을 받으실 수 있게 안내를 해드리고 있어요."
산재근로자마다 상황이 다르기에 그에 따라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달라지게 마련. 그래서 재활지원부원들은 근로자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미처 말하지 못한 속마음까지 이해하고자 표정 하나도 섬세하게 살핀다.
"경험이 쌓여서인지 근로자분들의 표정만 봐도 치료를 잘 받고 계시는지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나 마음가짐도 다르기에 그분의 눈높이에 맞게 지원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재활 후에 사회에 복귀하는 분들이 '치료 잘 받고 갑니다' 하고 인사를 해주실 때면 일하는 보람을 느낍니다."
남다른 의지로 재활에 주력하는 김수일 씨를 보면서도 재활지원 업무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는 재활지원부. 앞으로는 실무 역량을 강화해 더욱더 완성도 높은 재활 프로그램을 구성하겠다는 의지도 다진다. 한편으로 재활 기간이 남은 김수일씨에게도 "잘 할 수 있다"는 응원을 전했다.
"앞으로 남은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어느새 절반 이상 목적지에 다가왔습니다. 긍정적인 모습에 저희도 의욕과 용기를 얻습니다."
차근차근 재활을 이어가고 있는 김수일 씨는 요즘 자주 예전 일을 떠올린다. 땀 흘려 일한 후 동료들과 든든하게 저녁을 먹고 어울려 술 한 잔을 기울였던 일상의 행복. 머지않아 좋았던 시절을 다시 누릴 수 있도록, 대전병원 재활지원부 역시 계속 힘을 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