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모르던 조지아라는 나라

‘조지아’라는 나라는 조금 낯선 게 사실이다. 보통 조지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미국의 조지아주를 떠올리거나 커피 브랜드 조지아를 연상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조지아라는 국명이 현대사에서 제대로 등장한 건 1991년이기 때문이다. 조지아는 ‘구(舊) 소련’ 즉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을 구성하던 공화국의 하나였다가 구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해 단일 국가를 이루었다. 오랜 시간 조지아는 구 소련이라는 범주 안에서 그만의 고유성과 우수성이 잘 드러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야 그 빛을 발하고 있다.세계 지도에서 조지아를 찾으려면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북쪽으로는 러시아, 남서쪽으로는 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 동쪽으로는 아제르바이잔과 접해 있는 지역을 살펴보면 된다. 조지아는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에 위치하며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코카서스(Caucasus) 3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조지아의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0.3배 정도이고 인구는 약 370만 명에 달한다. 한편, 조지아는 그들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약 5세기부터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들의 알파벳인 므흐레티는 33개의 글자로 독특한 곡선 모양이 인상적이다. 조지아만의 또 다른 차별점 중 하나는 바로 종교이다. 조지아는 4세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여 조지아 정교회가 되었고 이것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기독교 국가임을 인증한다. 조지아인들에게 종교는 삶 그 자체로 인식된다. 오랜 시간 동안 외세의 침략 속에서도 지켜낸 믿음이기에 자부심과 신앙심이 굳건하다.

트빌리시 Tbilisi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수도, 트빌리시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는 여행의 출발점이자 낯선 조지아와 친해지는 계기가 되는 장소다. 이곳은 중세 시대의 모습을 곳곳에 간직하고 있는 도시로, 수도라고 하면 연상되는 거대함이나 복잡함보다는 오랜 시간이 깃든 묵직한 힘이 느껴진다. 도시는 므츠바리강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나뉜다. 특히 남쪽은 구도심으로 관광지가 여기에 많이 모여 있다. 나리칼라 요새는 구도심의 상징이다. 언덕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는데, 트빌리시 스카이라인을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새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외새의 침입을 막기 위해 4세기 즈음 지어졌다. 사실 조지아는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에 위치해 끊임없이 주변 강대국의 위협을 받았다. 그 길고 험난했던 시간을 나리칼라 요새는 그대로 품고 있다. 나리칼라 요새 근처에는 거대한 상이 우뚝 솟아 있다. 조지아의 어머니 동상으로 약 20m에 달하는 높이를 자랑하며 트빌리시 건국 1,5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인 1958년 만들어졌다. 이 상을 만든 조각가는 조지아 민족의상을 입은 여성을 모델로, 돌이 아닌 알루미늄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온화한 어머니가 아니라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또한 이 조지아의 어머니 동상은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와인 잔을 들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 의미인즉, 친구로 방문한 이에게는 와인을 대접하고 적으로 찾아온 이에게는 검으로 응대한다는 조지아의 전설을 반영한 것이다. 조지아는 오랜 시간 동안 부침을 겪으면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타인을 향한 친절한 마음도 잊지 않음을 이 동상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조지아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구시가지를 걷다가 평화의 다리에 다다르면 이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마치고 오늘의 조지아를 만나게 된다.

나리칼라 요새 Narikala Fortress

2010년 이탈리아 건축가가 만든 이 다리는 보행자용으로 총 길이 150m에 달한다. 강철과 유리의 혼합 구조로 낮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현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밤이 되면 3만 개의 LED 조명이 켜지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드러낸다. 낮과 밤의 다른 모습에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명소다. 평화의 다리를 지나면 자유광장을 만날 수 있다. 이 광장은 조지아의 현대사가 응축된 현장이기도 하다. 1989년 4월 9일, 이 광장에서 조지아인들은 구 소련 정권에 저항하는 평화시위를 벌였으며 군대가 이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십 명의 사망자와 수백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러한 저항의 움직임을 통해 1991년 조지아는 비로소 독립을 이뤄냈다. 또한 2003년에 11월 3일, 부정선거와 부패 그리고 독재로 비판받던 당시 대통령 에두아르드 세바르드나제를 반대하는 평화시위도 이 광장에서 일어났다. 이때 조지아인들은 무기를 들지 않음을 보여주는 비폭력의 상징으로 장미를 들었고 이것을 ‘장미혁명’이라 부른다. 이와 같이 자유광장은 조지아인들에게 뜻깊은 명소로 여전히 다양한 행사와 축제가 자주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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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빌리시에서 꼭 가봐야 할 또 다른 명소 성 삼위일체 대성당(Holy Trinity Cathedral)

전 세계 정교회 교회 중 세 번째로 큰 성당. 조지아 정교회의 독립 1,500년과 예수 탄신 2,000년을 기념하고자 1989년부터 기획에 들어가서 1994년 공사를 시작해 2004년 완공했다. 반짝이는 황금 돔과 황금 십자가가 인상적이다.

메테히 교회(Metekhi Cathedral)

5세기 경, 조지아의 수도를 므츠헤타에서 트빌리시로 이동한 후 왕궁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요새에 지은 교회이다. ‘메테히’는 ‘왕궁 곁에 있다’는 의미로 세월의 부침에 따라 교회였다가 극장이었다가 감옥이었다가 수차례 그 쓰임이 바뀌었다가 이제 다시 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조지아의 어머니 동상 Kartlis Deda
주소 Sololaki Street On the top of Sololaki hill, Tbilisi Georgia
이용 시간 24시간
이용 요금 무료

와인과 함께하는 사랑의 도시, 시그나기

트빌리시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 시그나기는 조지아 여행을 계획할 때 빼놓지않는 도시다. 이곳은 중세 시대 실크로드 교역의 중심지로 타국에서 온 상인들의 휴식처 역할을 담당해 동서양의 진귀한 물건이 가득했다. 그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나 지금은 ‘사랑의 도시’로 불린다. 그 이유는 조지아의 국민 화가로 칭송받는 니코 피로스마니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기차역의 잡부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부업으로 상점의 간판을 만들었고 여기서 남은 물감을 활용해 자신의 작품을 그리곤 했다. 당시 많이 가난했던 것. 그런데 어느 날 그는 프랑스에서 온 배우를 만나 한눈에 반했고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수중의 모든 돈을 털어 온 거리를 장미로 장식했다. 그의 지극한 정성에 그녀의 환심을 사기도 했지만 결국 그녀는 떠나며 결말을 맞았다. 이 슬픈 사랑 이야기는 러시아 노래 ‘백만송이 장미’의 모티브가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어 인기를 모았다. 이와 같은 전설 덕분에 시그나기는 사랑의 도시로 불리는 것. 물론 이것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이곳에서는 24시간 동안 혼인신고를 할 수 있단다. 그래서 이 또한 사랑의 도시로 불리는 이유가 되었다고.

평화의 다리 The Bridge of Peace
주소 Tbilisi 0162 Georgia
이용 시간 24시간
이용 요금 무료

자유광장 Freedom Square
주소 Freedom Square, Tbilisi Georgia
이용 시간 24시간
이용 요금 무료

시그나기의 진짜 유명세는 와인으로 비롯된다. 조지아는 동유럽 최대 와인 생산국이자 와인의 탄생지로 꼽힌다. 포도 재배에 이상적인 온화한 대륙성 아열대 기후로 기원 전 6000년부터 포도를 재배해 와인을 만든 것으로 기록된다. 그 흔적은 점토 항아리 크베브리를 통해 규명되었고 2013년 크베브리를 이용한 조지아 전통적인 와인 양조법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에 이른다.본론으로 돌아와, 시그나기에서는 조지아 전통 와이너리를 다수 만날 수 있다. 이곳은 해발 800m 고지대로 양질의 와인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으로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끈다. 시그나기는 작은 도시로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오래전 성벽을 지었고 그 벽의 일부가 아직도 남아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게 한다. 특히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정취를 더한다. 시그나기는 보통 트빌리시에서 당일치기로 방문하기도 하고 하룻밤 정도 묵으며 와이너리 투어 겸 여행을 하는데, 전통 방식으로 와인을 만드는 과정을 경험하고 시음까지 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와인은 잘 익은 포도를 으깨 점토 항아리에 넣어 발효를 시키는 것으로 그 풍미가 더 진하다. 재미있는 건, 조지아의 대표 와인 중 하나로 평가되는 ‘피로스마니’는 앞서 언급한 화가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조지아에서는 와인을 만들 포도 재배 농장마다 담장에 장미를 심는다고 한다. 장미가 포도나무의 상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 아마도 이러한 전통과 전설이 잘 어우러졌기에 오늘날 시그나기는 사랑의 도시, 와인의 도시가 되어 진한 향기를 전하고 있는 것이리라. 수세기 동안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성벽을 따라 걸으며 시그나기의 이러한 일화들을 떠올려 본다면 여행의 여운은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다.

시그나기 Signa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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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음식, 이것만은 꼭 맛보세요! 힌칼리(Khinkali)

고기로 속을 채운 만두로 육즙이 풍부하며 버섯이나 감자 등으로 속을 채운 채식 버전도 있다. 포크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힌칼리 한쪽을 잡아 육즙부터 먹는 것이 포인트.

하차푸리(Khachapuri)

치즈로 속을 채운 빵으로 형태와 속 재료는 지역별로 다양하다. 화덕에 구워서 향이 좋으며 치즈가 많이 들어간 경우에는 피자와 같은 느낌이다.

로비오(Lobio)

으깬 콩에 견과류나 양파, 마늘과 향신료 등을 넣어 만든 조지아식 스튜다. 그 자체로도 맛있지만 하차푸리와 같은 빵과 같이 곁들여 먹으면 더 좋다.

치히르트마(Chikhirtma)

계란을 풀어 걸쭉하게 만든 칠면조 또는 닭고기 육수의 전통 수프로 진한 풍미가 일품이다. 조지아인들의 해장 메뉴이기도 하다.

므츠바디(Mtsvadi)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양고기 등을 작은 덩어리로 잘라 소금, 후추, 와인 등에 재워 쇠꼬챙이에 꽂아 굽는 바비큐 요리로 러시아의 샤슬릭과 비슷하다.

힌칼리 Khinkali

하차푸리 Khachapuri

만년설 봉우리 아래 펼쳐진 신화 같은 풍경, 카즈베기

조지아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풍경 중 하나는 바로 일년 내내 만년설이 펼쳐지는 코카서스 산맥을 바라보는 것이다. 천천히 걸으며 그 그림 같은 풍경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고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카즈베기는 트빌리시에서 157km 떨어져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기도 하거니와 그 풍경 또한 아름다워 추천할 만하다. 사실 카즈베기의 정식 명칭은 스테판츠민다이나 오래전부터 카즈베기로 불렸기 때문에 여전히 그렇게 불리고 있다. 이곳은 트레킹의 성지로 세계 각지에서 많이 찾는다. 11월부터 2월까지는 겨울철이라 날씨가 온화한 6월부터 8월이 가장 성수기다. 카즈베기의 중심인 카즈베기산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어 제우스로부터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았던 프로메테우스가 갇혀 있던 곳이라고 한다. 신화 속 주인공들이 이곳에서 살아있었던 것. 그렇기에 조금 더 신비롭게 느껴진다. 카즈베기산 높이는 해발 5,047m에 이르며 조지아에서는 세 번째, 코카서스 산맥에서는 일곱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스테판츠민다 Stepantsminda

해발 220m에 자리한 츠민다 사메바 교회는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로도 불리는데, 14세기에 지어졌으며 카즈베기산과 어우러져 성스러움을 더한다. 이 교회는 언덕 꼭대기에 원뿔형의 지붕이 우뚝 솟아 있어 멀리서도 한눈에 발견할 수 있다. 과거 조지아가 구 소련에 속해 있던 시절인 1988년에 츠민다 사메바 교회 바로 옆에 케이블카 노선을 건설했지만 이곳 사람들이 신성한 장소를 더럽힌다며 케이블카를 없앤 일화도 유명하다. 푸르른 초원과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는 카즈베기를 걷는 내내 끊이지 않는 광경이다.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코스를 정해 트레킹을 하길 권한다. 만약 여유가 있다면 카즈베기에 하룻밤 머물며 해 지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된다. 카즈베기가 노을로 붉게 물드는 장관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이 되지 않는다.

신의 축복을 받은 비옥한 땅과 따뜻한 사람들

조지아는 손님을 맞이하는 부분에 있어 한국과 닮은 구석이 많다. 온 마음을 다해 극진히 대접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데, 일례로 잔칫상을 차릴 때 ‘식탁 바닥이 보이지 않게' 차려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조지아 신화에 따르면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코카서스 산맥의 높은 봉우리에 걸려 저녁 식탁의 음식을 쏟았다고 한다. 그래서 조지아는 신의 축복을 받아 풍요로운 음식 문화를 자랑한다는 것. 조지아는 오랜 시간을 품은 골목을 걷고 그러다 우연히 만나는 카페에서 차 한잔을 하고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현지 음식을 먹으며, 그렇게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여행하기 좋다. 어디서든 기대 그 이상의 따뜻함을 만날 수 있으니 철저한 계획은 잠시 내려 두어도 된다. 푸르고 너른 자연과 함께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롭고 느긋한 기분을 만끽할 것이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그 감흥을 짧은 글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반복된 일상에 지쳐가던 영혼이 회복되는 곳, 바로 이곳 조지아다.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 Gergeti Trinity Church